2005년 11월 15일
[안수길] 호랑이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동물원의 호랑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호랑이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호랑이의 하품에 드러나는 이빨이 몇 개인지 헤아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날이 하루가 아니고 이틀, 한달, 해가 지나 5년이 되자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호랑이의 털 하나 하나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그렇게 눈으로 살피고 머리에 각인된 호랑이를 손 끝으로 풀어낸 만화가, 범처럼 짙은 수염을 길렀던 안수길 작가가 흡사 눈 위에 흔적만 남기고 산중으로 사라진 호랑이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의 나이 이제 43세.
평소 지병이 당뇨였기에 그로 인한 부고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지인들에게 전해 듣기로, 오늘(15일) 낮 12:35분에 급성 간경화로 인한 수술 중에 별세한 고인은 만화만큼 술을 사랑했었다. 술에 먹힌 술꾼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애정을 풀어내려고 할 때는 술이 백년지기였다. 우리 만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 못지않게 깊었던 만화가였음에도 남 앞에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소리는 천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이지만 나와 달리 고인의 지난 세월은 만화에 푹 빠져 지낸 시절이었을 것이다. 호랑이에 관한한 군계일학이었던 고인의 작품 세계는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도 했지만 좋은 작품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을 증명한 만화가 그를 주목받게 한 [Tora Monogatari](Kodansha, 1998)이다. 일본 <주간 모닝>에 8년 간 연재함으로써 그의 진가가 부동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호랑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조금도 사그러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에게 용감한 호랑이(카이참비)를 통해 교훈적 삶을 보여주고자 했고, 마지막 작품이 된 단편 [습성](계간만화, 2004 여름호)에서는 암컷의 시선을 재미있게 들려줬다. 물론 만화가 데뷔 초기에 그린 [수해(樹海-숲의 바다)](1990)는 일본강점기에 벌채로 어미를 잃은 백두산 호랑이의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단순히 털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력의 호랑이 화가가 아니라 호랑이를 상징으로 '한국의 그 무엇'을 찾아 '공감'하려는 '작가'로서의 의식을 가진 고인이었다.
고인도 처음엔 데뷔부터 하자는 욕심에 중국 황제의 회춘을 그린 [판소리 소녀경](1988)을 연재했었다. 이를 후회한다지만 그는 후회가 아니라 영합하지 않고 자신을 찾음으로서 이미 증명했다. 데뷔한 이후 좀더 편한 길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공사판 노동자, 자장면집 보조를 하면서 만화가가 되려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고자 했던 고인이다.
호랑이의 전생애를 담은 [호랑이 도감]을 완성해야 호랑이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냐는 소박한 꿈을 지녔던 그는 이제 모든 표현이 과거형으로 쓰여진다. '이러 했었고 저러 했었던' 그는 앞으로 '이러 할 것이며 저러 할 것이다'라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당장 고인의 원화가 걸려 있는 '계간만화' 편집부의 한 쪽 벽이 아프게 떠오른다. 시린 초겨울 밤 하늘에도 어김없이 뜬 달에 고인의 얼굴이 겹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절의 아쉬움을 천재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슬픔도 크고, 오래 살았어도 천재가 될 작가, 그가 고 안수길이다.

그렇게 눈으로 살피고 머리에 각인된 호랑이를 손 끝으로 풀어낸 만화가, 범처럼 짙은 수염을 길렀던 안수길 작가가 흡사 눈 위에 흔적만 남기고 산중으로 사라진 호랑이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의 나이 이제 43세.
평소 지병이 당뇨였기에 그로 인한 부고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지인들에게 전해 듣기로, 오늘(15일) 낮 12:35분에 급성 간경화로 인한 수술 중에 별세한 고인은 만화만큼 술을 사랑했었다. 술에 먹힌 술꾼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애정을 풀어내려고 할 때는 술이 백년지기였다. 우리 만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 못지않게 깊었던 만화가였음에도 남 앞에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소리는 천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이지만 나와 달리 고인의 지난 세월은 만화에 푹 빠져 지낸 시절이었을 것이다. 호랑이에 관한한 군계일학이었던 고인의 작품 세계는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도 했지만 좋은 작품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을 증명한 만화가 그를 주목받게 한 [Tora Monogatari](Kodansha, 1998)이다. 일본 <주간 모닝>에 8년 간 연재함으로써 그의 진가가 부동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호랑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조금도 사그러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에게 용감한 호랑이(카이참비)를 통해 교훈적 삶을 보여주고자 했고, 마지막 작품이 된 단편 [습성](계간만화, 2004 여름호)에서는 암컷의 시선을 재미있게 들려줬다. 물론 만화가 데뷔 초기에 그린 [수해(樹海-숲의 바다)](1990)는 일본강점기에 벌채로 어미를 잃은 백두산 호랑이의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단순히 털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력의 호랑이 화가가 아니라 호랑이를 상징으로 '한국의 그 무엇'을 찾아 '공감'하려는 '작가'로서의 의식을 가진 고인이었다.
고인도 처음엔 데뷔부터 하자는 욕심에 중국 황제의 회춘을 그린 [판소리 소녀경](1988)을 연재했었다. 이를 후회한다지만 그는 후회가 아니라 영합하지 않고 자신을 찾음으로서 이미 증명했다. 데뷔한 이후 좀더 편한 길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공사판 노동자, 자장면집 보조를 하면서 만화가가 되려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고자 했던 고인이다.
호랑이의 전생애를 담은 [호랑이 도감]을 완성해야 호랑이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냐는 소박한 꿈을 지녔던 그는 이제 모든 표현이 과거형으로 쓰여진다. '이러 했었고 저러 했었던' 그는 앞으로 '이러 할 것이며 저러 할 것이다'라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당장 고인의 원화가 걸려 있는 '계간만화' 편집부의 한 쪽 벽이 아프게 떠오른다. 시린 초겨울 밤 하늘에도 어김없이 뜬 달에 고인의 얼굴이 겹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절의 아쉬움을 천재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슬픔도 크고, 오래 살았어도 천재가 될 작가, 그가 고 안수길이다.

2005. 11. 15.
주 모씨.
# by | 2005/11/15 23:47 | 만화가 코너 | 트랙백(3)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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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시는군요.
그런데 정말 내일을 예단하는 것은 오만의 극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 지인은 몇 일 전에 안 작가와 대화하면서도 전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고인 자신도 몰랐겠지요. 살아있는 저로서는 저에게도 저런 일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걸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 루리코 님, 수시아 님도 매 순간이 소중한 추억이 되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올해는 유난히 부고가 많은것 같군요...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