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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길] 호랑이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동물원의 호랑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 종일 호랑이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호랑이의 하품에 드러나는 이빨이 몇 개인지 헤아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날이 하루가 아니고 이틀, 한달, 해가 지나 5년이 되자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호랑이의 털 하나 하나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그렇게 눈으로 살피고 머리에 각인된 호랑이를 손 끝으로 풀어낸 만화가, 범처럼 짙은 수염을 길렀던 안수길 작가가 흡사 눈 위에 흔적만 남기고 산중으로 사라진 호랑이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의 나이 이제 43세.

평소 지병이 당뇨였기에 그로 인한 부고 소식이 들리기도 했으나 지인들에게 전해 듣기로, 오늘(15일) 낮 12:35분에 급성 간경화로 인한 수술 중에 별세한 고인은 만화만큼 술을 사랑했었다. 술에 먹힌 술꾼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애정을 풀어내려고 할 때는 술이 백년지기였다. 우리 만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 못지않게 깊었던 만화가였음에도 남 앞에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소리는 천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이지만 나와 달리 고인의 지난 세월은 만화에 푹 빠져 지낸 시절이었을 것이다. 호랑이에 관한한 군계일학이었던 고인의 작품 세계는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도 했지만 좋은 작품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을 증명한 만화가 그를 주목받게 한 [Tora Monogatari](Kodansha, 1998)이다. 일본 <주간 모닝>에 8년 간 연재함으로써 그의 진가가 부동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호랑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조금도 사그러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에게 용감한 호랑이(카이참비)를 통해 교훈적 삶을 보여주고자 했고, 마지막 작품이 된 단편 [습성](계간만화, 2004 여름호)에서는 암컷의 시선을 재미있게 들려줬다. 물론 만화가 데뷔 초기에 그린 [수해(樹海-숲의 바다)](1990)는 일본강점기에 벌채로 어미를 잃은 백두산 호랑이의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단순히 털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력의 호랑이 화가가 아니라 호랑이를 상징으로 '한국의 그 무엇'을 찾아 '공감'하려는 '작가'로서의 의식을 가진 고인이었다.

고인도 처음엔 데뷔부터 하자는 욕심에 중국 황제의 회춘을 그린 [판소리 소녀경](1988)을 연재했었다. 이를 후회한다지만 그는 후회가 아니라 영합하지 않고 자신을 찾음으로서 이미 증명했다. 데뷔한 이후 좀더 편한 길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공사판 노동자, 자장면집 보조를 하면서 만화가가 되려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고자 했던 고인이다.

호랑이의 전생애를 담은 [호랑이 도감]을 완성해야 호랑이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냐는 소박한 꿈을 지녔던 그는 이제 모든 표현이 과거형으로 쓰여진다. '이러 했었고 저러 했었던' 그는 앞으로 '이러 할 것이며 저러 할 것이다'라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당장 고인의 원화가 걸려 있는 '계간만화' 편집부의 한 쪽 벽이 아프게 떠오른다. 시린 초겨울 밤 하늘에도 어김없이 뜬 달에 고인의 얼굴이 겹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절의 아쉬움을 천재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슬픔도 크고, 오래 살았어도 천재가 될 작가, 그가 고 안수길이다.


 

 

 

 

 

 

 

 

 

 

 



2005. 11. 15.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11/15 23:47 | 만화가 코너 | 트랙백(3)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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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정확한 데이터를 찾을 .. at 2005/11/16 10:02

제목 : 만화계의 장인 안수길 선생님 별세
[안수길] 호랑이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호랑이 만화가로도 유명한 안수길 선생님이 (15일) 낮 12:35분에 급성 간경화로 인한 수술 중에 별세하셨습니다. 안수길 선생님이 알려지기 시작한건 일본 <주간 모닝>에 8년 간 연재하면서 호랑이에 한해 대가로 인정받은 호랑이 이야기虎物語[토라 모도가타리](1998 코단샤)때문이었습니다. ......more

Tracked from 日常茶飯事 at 2005/11/17 17:17

제목 : 고 안수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안수길] 호랑이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외로운 천재는 사장되고 비비기 잘하는 잔머리쟁이들은 배부른 세상이다. 서글프다....more

Tracked from 주 모씨의 만화가게 at 2005/11/18 21:16

제목 : 주 모씨 이글루스, 신문사의 원 소스가 되나?
...라는 제목은 농담이고, 오늘은 기사에 대한 몇 가지 해프닝을 정리해 봤다. 우선 [안수길] 호랑이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포스팅을 보면 안 작가의 캐리커처가 그림으로 올라 있다. 이 사진은 집에 있는 작가의 작품 내지에 있는 그림을 스캔하여 자료로 올린 것인데 자세히 보면 표지를 고정시키기 위한 스카치 테이프......more

Commented by ruriko at 2005/11/15 23:55
세상에, 위대한 거장과 진정한 장인이 한해에 유명을 달리하실줄이야...
Commented by 수시아 at 2005/11/16 00:1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올해는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시는군요.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6 00:36
루리코 님/올해를 결산하는 청탁글을 월초에 마감하면서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지요. '급작스런 부고가 더 있으랴?'
그런데 정말 내일을 예단하는 것은 오만의 극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 지인은 몇 일 전에 안 작가와 대화하면서도 전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고인 자신도 몰랐겠지요. 살아있는 저로서는 저에게도 저런 일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걸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 루리코 님, 수시아 님도 매 순간이 소중한 추억이 되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화실인 at 2005/11/16 02:58
명복을 빕니다. 호랑이 그림이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ㅠㅠ
Commented by 유젠 at 2005/11/16 05:27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로 올해는 유난히 부고가 많은것 같군요...
Commented by 큐이 at 2005/11/16 05:35
한창 만화를 공부할때 안수길 선생님의 호랑이 그림을 보고 적잖히 충격을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달리하시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그저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랄 뿐입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6 19:13
화실인 님/호랑이 그림은 이현세 선생의 '도감'과 박영철 작가의 '디거'는 물론 심지어는 추억 때문에 나오키의 '타이거마스크' 멤피스 해적판도 봤지만 고인의 그림은 2%가 다른 듯 합니다. 그게 5년간의 내공과 하나에 몰입한 장인의 흔적이 아닐까요? 화실인님 작품도 강렬합디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6 19:14
유젠 님/선지국 열심히 드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길.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6 19:15
큐이 님/고인의 그림이 자극이 되셨다는 것은 큐이님의 그림도 남에게 자극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겠지요. 건강하시길.
Commented by 산왕 at 2005/11/16 22:1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6 23:21
산왕 님/그 말 밖에 할 말이 없네요...
Commented by 猫靈 at 2005/11/17 17:18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트랙백 해 갑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17 18:00
묘령 님/닉네임이 팍 와닿는군요...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 묘하게도 오늘 발인에 맞춰 백두산 호랑이 '두만이'와 '압록이'가 한국에 인도됐더군요. 지난번에 중국에서 받는 백두산 호랑이가 번식을 실패하는 통에 이번에 새로 들여온 것이랍니다. 호랑이 작가의 소천을 백두산 호랑이도 알았나 봅니다. 참 묘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Commented by 카오군 at 2005/11/20 11:1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년 sicaf2004떄 사인을 받은적이 있는데, 그떈 이렇게 요절하게 되실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었지요. 진정 사람의 삶은 하늘만이 아는 것인가 봅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1/20 15:55
카오 님/열흘 전만해도 출판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셨기 때문에 더더욱 상상도 못했지요. 사는 것이 마라톤하고 달라서 골인 지점을 알 수가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6/01/04 14:53
안수길님이 타계하셨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6/01/07 22:00
marlowe 님/그만큼 급작스럽게, 조용히 떠나셨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송채성 작가 추모 공모전이 벌써 2회를 맞는군요. 그곳은 살만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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