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4일
살인도 추억이 될 수 있는가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화성연쇄살인사건 마지막 범행인 1990년 11월 15일을 기준으로 오늘(14일)이 지나면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다. 오늘 이후에 그 범인을 찾아 복수한다면 그것은 사적 폭력인 린치(lynch)로 오히려 처벌 대상이 된다. 정상참작은 되겠지만.
장태관 작가가 화실 송사로 인해 만화계를 떠나려고 했을 때 동료 작가의 다독거림으로 재기한 것은 만화 [미궁의 연쇄살인마]이다. 단행본으로 5권 완결된 이 만화의 연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그보다 제목에 대한 해프닝이 있었다. 애초 기획된 제목은 '화성연쇄살인마'였는데 화성분들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기획 때에도 그랬지만 화성과 연쇄 살인을 결부하는 그 어떠한 것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이 화성 분들에게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이 그 범인을 쫒아 산야를 헤매고 공포에 떨었고 그 이전에 잔인하고도 무참한 죽음이 있었다. 그것을 사회가 법으로 합의한 공소시효로 이제 서류철은 문서보관함으로 들어가게 됐다.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여론과 그것이 안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인데 그 살아 있는 자들의 속내는 무참히 죽은 사람들의 생명을 한 번 더 살해하고 있다.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인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15년이란 실제적 기간은 사건 당시의 증거가치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흘러 버려 증거에 입각한 재판에 문제가 발생한다. 증인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증거가 있다하더라도 훼손이 심해 채택될 자료도 변변치 못하게 된다. 다른 이유는 15년 간 범인이 도망다녔으니 그 심적 고통이 실제 처벌받는 것을 상쇄할 만큼 되는 기간이 15년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정도 도망다녔으면 이제는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 봐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이유가 100%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증거와 관련해서 뻔히 알고 있는 범인인데도 고문기술자처럼 배후가 빼돌려 주면서 그 기간을 채운다고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번 째 이유도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입꼬리에 미소를 띠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이라면 15년 동안 발뻗고 잠 잤을 것이니 고통의 상쇄라는 의미도 해당되지 않을 때가 있다. 후자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범인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 존재에게 부여된 '양심'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양심의 무게는 차등이 있다. 어떤 이는 무심결에 과실치사로 아이를 차로 치어 죽였는데 그 죄책감에 자살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고의적으로 남편 눈알을 찌르고 불태워 죽여 보험금을 타내면서도 죄책감 없이 다른 대상을 쫒아 열심이 찔러 댔다.
화성의 그 범인은 고문기술자처럼 자신이 드러난 것도 아니며 죄책감에 고통받을 양심의 소유자라는 확증도 없다. 그에게 있어 공소시효란 어떤 의미일까? 난 여전히 그가 입꼬리에 미소를 띠며 오늘 자정에 소주 한잔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양심의 존재가 가벼워 보이는 범죄자(흔히 잔혹이나 연쇄살인이라 하지만)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법의 자의적 주장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특정한 범죄에는 그 시효를 연장 또는 무기로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이다. 참고로 보도를 보니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에 있어서 미국은 공소시효가 없고 독일은 30년, 일본은 25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자들의 양심도 별반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공소시효 연장에 우물쩡하는 입법추진 주체들의 속내이다. 지난 8월에 의원들 몇이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내용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지만 이후 개정과정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 배경이 참으로 가볍다. 법이란 것이 화성 살인범만 공소시효를 연장하자고 할 수 없으므로 일반적 연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니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만이 아니라 여타 법의 공소시효도 다 연장되어야 한다. 그게 법의 현실이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공소시효 중에는 정치인들이 더 줄였으면 하는 시효들이 널려 있다. '정치자금법'과 '기부행위 금지', '뇌물 수수' 등에 5년의 공소시효가 있고 '부정선거'에도 3년의 시효가 있다. 이것이 이번 개정을 하게 되면 2년씩 늘어 난다. 한 번 걸리면 현재보다 2년을 더 정치에 얼굴 내밀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화성 사건을 타겟으로 개정안을 적용한다면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모든 사건 중에서 새로운 시효를 계산하여 재수사를 해야 한다. 과거의 모든 대상범죄를 소급적용할 지에 대한 논란도 간단치는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법 개정의 간단치 않음을 배제하더라도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시효 연장의 껄끄러움으로 이 개정안 논의가 잠잠한 것이라면 참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연쇄살인범을 방조하고 무참히 죽은 이들을 또 다시 죽이는 짓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2년의 시효 연장이 싫어서 50년 이상의 삶이 날아간 9명의 죽음을 나몰라라 하는 짓과 같다.
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서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한 가닥 희망으로 작용할 지는 미지수이다.
2005. 11. 14.
주 모씨.
장태관 작가가 화실 송사로 인해 만화계를 떠나려고 했을 때 동료 작가의 다독거림으로 재기한 것은 만화 [미궁의 연쇄살인마]이다. 단행본으로 5권 완결된 이 만화의 연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만 그보다 제목에 대한 해프닝이 있었다. 애초 기획된 제목은 '화성연쇄살인마'였는데 화성분들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기획 때에도 그랬지만 화성과 연쇄 살인을 결부하는 그 어떠한 것도 반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이 화성 분들에게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이 그 범인을 쫒아 산야를 헤매고 공포에 떨었고 그 이전에 잔인하고도 무참한 죽음이 있었다. 그것을 사회가 법으로 합의한 공소시효로 이제 서류철은 문서보관함으로 들어가게 됐다.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여론과 그것이 안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인데 그 살아 있는 자들의 속내는 무참히 죽은 사람들의 생명을 한 번 더 살해하고 있다.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15년인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15년이란 실제적 기간은 사건 당시의 증거가치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흘러 버려 증거에 입각한 재판에 문제가 발생한다. 증인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증거가 있다하더라도 훼손이 심해 채택될 자료도 변변치 못하게 된다. 다른 이유는 15년 간 범인이 도망다녔으니 그 심적 고통이 실제 처벌받는 것을 상쇄할 만큼 되는 기간이 15년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정도 도망다녔으면 이제는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나머지 삶을 살아 봐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이유가 100%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증거와 관련해서 뻔히 알고 있는 범인인데도 고문기술자처럼 배후가 빼돌려 주면서 그 기간을 채운다고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번 째 이유도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입꼬리에 미소를 띠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이라면 15년 동안 발뻗고 잠 잤을 것이니 고통의 상쇄라는 의미도 해당되지 않을 때가 있다. 후자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범인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 존재에게 부여된 '양심'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양심의 무게는 차등이 있다. 어떤 이는 무심결에 과실치사로 아이를 차로 치어 죽였는데 그 죄책감에 자살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고의적으로 남편 눈알을 찌르고 불태워 죽여 보험금을 타내면서도 죄책감 없이 다른 대상을 쫒아 열심이 찔러 댔다.
화성의 그 범인은 고문기술자처럼 자신이 드러난 것도 아니며 죄책감에 고통받을 양심의 소유자라는 확증도 없다. 그에게 있어 공소시효란 어떤 의미일까? 난 여전히 그가 입꼬리에 미소를 띠며 오늘 자정에 소주 한잔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양심의 존재가 가벼워 보이는 범죄자(흔히 잔혹이나 연쇄살인이라 하지만)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법의 자의적 주장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특정한 범죄에는 그 시효를 연장 또는 무기로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이다. 참고로 보도를 보니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에 있어서 미국은 공소시효가 없고 독일은 30년, 일본은 25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자들의 양심도 별반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공소시효 연장에 우물쩡하는 입법추진 주체들의 속내이다. 지난 8월에 의원들 몇이 공소시효를 연장하자는 내용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냈지만 이후 개정과정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 배경이 참으로 가볍다. 법이란 것이 화성 살인범만 공소시효를 연장하자고 할 수 없으므로 일반적 연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니 형사소송법의 공소시효만이 아니라 여타 법의 공소시효도 다 연장되어야 한다. 그게 법의 현실이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공소시효 중에는 정치인들이 더 줄였으면 하는 시효들이 널려 있다. '정치자금법'과 '기부행위 금지', '뇌물 수수' 등에 5년의 공소시효가 있고 '부정선거'에도 3년의 시효가 있다. 이것이 이번 개정을 하게 되면 2년씩 늘어 난다. 한 번 걸리면 현재보다 2년을 더 정치에 얼굴 내밀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화성 사건을 타겟으로 개정안을 적용한다면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공소시효가 만료된 모든 사건 중에서 새로운 시효를 계산하여 재수사를 해야 한다. 과거의 모든 대상범죄를 소급적용할 지에 대한 논란도 간단치는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법 개정의 간단치 않음을 배제하더라도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시효 연장의 껄끄러움으로 이 개정안 논의가 잠잠한 것이라면 참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연쇄살인범을 방조하고 무참히 죽은 이들을 또 다시 죽이는 짓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2년의 시효 연장이 싫어서 50년 이상의 삶이 날아간 9명의 죽음을 나몰라라 하는 짓과 같다.
대법관 후보 청문회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서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한 가닥 희망으로 작용할 지는 미지수이다.
2005. 11. 14.
주 모씨.
# by | 2005/11/14 15:05 | 사적만담 | 트랙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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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트랙백 해가겠습니다.
얘기가 샜는데요, 암튼 소급하거나 개정이 되면 인력과 자금이 더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죠. 다른 뭉개기 배경에 더하여 부가 비용을 감수할 만한 정치적 합의가 있을 때 개정이 될테구요.
'사람 같이'란 말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겠지요. '사람답다'처럼 '너답다'라거나 '군인답다'라는 말에는 사전처럼 똑 부러진 정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사람 같이'를 '사람답게'로 말해도 같은 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니가 인간이냐?'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과 격리(죽이든 가두든)하자는 것이 법이잖아요?
물론 '개과천선'이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겠지요. 그런데 15년이란 기간이 지나도 이 말을 '천도 복숭아 먹어서 신선이 된 개'인 줄 아는 인간도 있을 거란 말이죠. 이런 '사람 같지 않은 것'에는 사람이 정한 15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쌍팔년도 버전으로)"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