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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가 재판에서 불리한 현실적 이유 딴지 거는 글

웹 서핑 중에 주로 찾는 키워드 중에는 '소송'이니 '분쟁'이니 '판례' 같은 말들도 포함되어 있다.
어제는 남궁연 씨가 6억원이 걸린 소송에 휘말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와 만화작가가 소송을 걸고 승소하기가 어려운 현실적 이유는 뭘까?
6억원 송사의 개요는 이렇다.
음반제작사는 남궁 씨(남 씨라고 할 뻔 했다--;;)와 음반 제작 계약을 맺고 선금 2억원을 지급했다. 제작사 주장은 남궁 씨가 음반을 기간 내에 완성하지 않았고 다른 음반제작사와 계약을 했기에 계약 해지, 선금 반환, 위약금 배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계약 해지의 사유, 즉 음반 제작의 완성을 못한 책임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부분은 기사만으로 알 수 없으므로 논외.

이와 유사한 만화가의 사례를 보자. 출판사는 만화가에게 선금(선 인세 200만 원이라고 하자)을 주고 작품 출간을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 기간 내에 완성된 원고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출판사는 계약 해지, 선금 반환, 위약금 배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원고 미완성의 책임이 출판사와 작가 중 누구에게 있는지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작가가 안 했거나 출판사가 업무상 지연했거나 둘이 조율이 안되어서 기간이 넘었거나.

문제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던 현실에선 작가가 이기기 어려운 여건이다.
계약 해지 분쟁이 민사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 최소한 작가가 이 분쟁 해결을 위해 재판을 하려면 변호사 선임을 해야하는데 기본 400만 원 전후에서 착수금 또는 선임료가 나가고 재판이 승소하면 성공 보수를 %로 정하여 지불한다.
그러니까 다들 알다시피 일단 재판이 시작되면 기본 500만 원,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남궁 씨의 경우나 다른 경우에서 분쟁의 대상 금액이 1억 원을 넘는 경우에는 소송을 진행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착수금이나 성공 보수금이 배상액보다 현저하게 적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6억 원을 내야할 처지에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착수금으로 천 만원을 건네고 성공 보수를 10%로 한다면 합계 7천 만원이 된다. 변호사도 제대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만화작가를 비롯하여 저작권 분쟁에서의 배상 소송은 1억원 미만의 경우가 매우 흔하다. 위에 예로 든 선금 200만 원을 받아 출판하기로 한 계약은 배상 범위(그것이 출판사에서 요구한 배상이든, 작가가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600만 원이든)가 600만 원이다. 어지간한 민사 소송의 변호사 선임료로 대치되는 금액이다.
이러니 이 보다 작은 소액 저작권 분쟁(몇 십만원 또는 그 보다 아래의 경우도...)은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큰 소송이 된다. 그러니 이 단계에 이르면 작가로서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돈을 생각하지 말고 소송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옆에서 하는 말이라면 쉽다. 그러나 당사자로서는 여간 어려운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분쟁을 덮거나 억울함을 당하는 구조이다.

더구나 작가의 대부분은 소액 저작권 분쟁의 개인 당사자이고 상대가 기업인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상대 기업 측이 이 구조를 악용하여 소송이라는 것을 으름장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송사인데 돈 있는 쪽이 송사 비용을 무기로 '해 볼테면 해 봐라'라며 휘두를 수 있는 현실적 무기가 된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분쟁 대상 금액이 작은 경우에는 적은 비용으로 송사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항소가 진행되거나 양쪽이 제대로 붙어 보자고 들면 이미 소액 재판 분위기에서는 동떨어지게 된다. 이래저래 법과 현실의 틈은 간단히 좁혀지지 않는다.

삼성화재와 조작가의 보험금 산정을 둘러싼 법정 투쟁이 어제 사실상 종결됐다. 싸늘한 죽음 이후 2년 만의 투쟁 결과이다. 이 경우 법적 진행이 물론 중심이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향을 준 것은 장외투쟁이다. 삼성 본관 앞에서의 시위란 얼마 전에야 깨진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4개월간 끊이지 않고 삼성화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이와 관련된 방송과 언론 보도는 백여 건에 달하고 국회의원까지 직접적으로 소 취하를 요구했다. 문화계의 지원과 모금도 송사에 직접적 도움이 됐다. 만약 구 작가의 죽음이 이슈가 되지 않고 조용히 송사로만 진행됐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보였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분쟁은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것이며 동시에 그 가릴 수 있는 과정에 공정한 룰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이며 도덕 교과서에 나올 말이다. 그리고 공정할 룰의 완전한 적용은 인간 사회에서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차피 '완전'이라는 말과 상관없는 것이 사회 아니더냐. 그래서 그 불공정을 공정에 가깝게 하려면 별 수 없이 장외투쟁 같은 가외의 노력,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작가의 공통 문제라면 작가가 참여하고 일용직의 공통 문제라면 일용직이 참여하는 사회는 그 가깝에 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답답한 10월이다.

2005. 10. 28.
주 모씨.

덧글

  • 화실인 2005/10/28 19:55 # 삭제 답글

    소송..시위..가진자와 못 가진자의 옳고 그름도 돈으로 결정되는 세상이 아닌지..약자에겐 단결만이 살길임을 구작가 사건이 보여줬군요..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답답하군요..만화인,미술인들의 상황 대비가 미묘한 생각을 나게 합니다. 같은 작가집단들인데 왜 이렇게 집단대처 방식이 다를수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먹고사는 문제 힘든건 다 마찬가지고 알고보면 작가로서 서로서로 경쟁자일수도 있는것 또한 마찬가지고..그런데도 단결이라는 문제에서는 상당히 틀리거든요..아무래도 답은 하나인가봅니다.(그답은..비밀..ㅡ.ㅡ;;)
  • 쥬피터 2005/10/29 02:15 # 답글

    화실인 님/오늘 방송에서, 쓰레기 만두 소동으로 '도투락'이 바로 무너졌더군요. 반품과 어음 회수압박에. 그런데 방송에서 중소기업들이 주로 당했다는 자료가 나왔더라구요. 그래서 만약 쓰레게 빅맥이라는 방송이 나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한국 경찰이나 식약청이 재판에 회부됐을지도...
    그제 '체이스'라는 영화던가요? '못말리는 람보'의 주인공(쉰이었던가?)이 광대뼈 은행강도로 몰려 징역을 선고받자 탈옥하게 되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인데 이런 억울함이 나오죠. 범인과 다른 혈액형을 증거로 제출했는데 채취과정이 불법이라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법은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기술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죠. 그게 한계란 생각도 들구요. 기술적 우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돈이나 권력이기 때문에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왔겠죠.
    그리고 '단결'은 일부 군 사단의 구호겠지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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