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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스토리 작가의 에피소드

얼마 전 첫 회로 치뤄진 만화스토리 공모전 대상을 친구의 동생이 받았다.
심사평에도 나왔지만 참신함이 떨어진 것은 이 스토리 구상이 3년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생의 최근 에피소드에서 느껴지는 감상 몇 가지.



#1
중박 영화 몇 편의 스토리를 썼던 이 동생은 사실 이번 출품작을 영화를 생각하고 썼다. 그런데 내용이 유전자 문제를 다루고 스케일이 커서 영화화의 어려움을 겪었다. 스토리를 본 영화계에서 제작비가 많이 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여 시나리오 작업으로 진행되지 못하던 상황이다. 그러던 차에 만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만화는 테니스를 하다가 지구가 폭발하든 벤취에 앉아서 '하지 않겠는가?'라고 대사 하나를 치든 제작비에 차이는 없다. 무슨 상상을 하든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는 만화를 따를 자가 없다. 글도 있지만 이야기와 이미지로 보여주는 매체에서는 만화가 최강자이다. 이것을 재확인케하는 대상 수상자의 동기였다.

#2
이번 공모전은 첫 회여서 시상 금액도 작지 않은 편이었고 지원작도 많은 편이다. 단편을 포함해서 130여 작품이 출품되었으니 꽤나 활발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의 기준은 만화계 내부의 스토리 공모전과 비교했을 때의 경우이다.
영화계의 스토리 공모나 관련 사항에서 130여 편이 아니라 수 많은 스토리들이 햇빛을 보기 위해 건네지고 충무로를 배회한다. 영화 스토리가 돈이 더 되는 듯 하고 더 폼이 나는 듯 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만화 스토리보다 영화 스토리에 많은 이야기들이 출품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연간 햇빛을 보는 스토리는 100여 편 이내에 불과하다. 만화는 웹 카툰의 장편만 꼽아도 그 정도 이야기가 세상에 노출된다. 그리고 만화나 영화나 스토리의 중요성은 전에도 있었지만 현재는 더욱 강조되는 추세이다. 만화에서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만화의 스토리 공모나 스토리 작가의 양성, 스토리의 작품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요구되어야 한다.

#3
한편 스토리 작가의 위상은 예전에 비하여 달라졌다 말할 수 있다. 그림 작가의 배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글 작가가 어느 날 표제에 인쇄되기 시작했다. 이현세 작의 야설록 글이 우여곡절 끝에 표지에 인쇄된 이후 이러한 경향은 점차 확산되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대본시장에서는 아예 스토리 작가가 그림 작가를 고용하는 시스템이 일반화되기도 했다. 여전히 전반적으로는 스토리와 그림 작가가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의 경우에 그림 작가를 더 기억하고 메인 작가로 이해하는 일반적 성향이 있지만 일부에서는 스토리 작가에 그림 작가가 종속되는 현상도 있다. 그러나 그림과 글은 만화에서 어느 일방이 종속적인 결합이 아니다. 수레의 두 바퀴는 둘 다 중요한 것이지 어느 한 바퀴가 종속적이지 않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4
대상을 수상한 동생이 만화 스토리 작가로서의 가능성과 비전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기도 했고 한국 만화 스토리 작가의 대부이기도 한 모 씨의 출판사를 찾았다. 때마침 그 출판사에 한국 만화 스토리의 중견 작가인 모 씨가 찾아 왔다. 여전히 인기 있는 작품의 스토리 작가였는데 그림 작가와의 공동 작품 진행이 결렬되고 난 이후 1년 여 기간을 쉬었던 중견이다. 이 날 중견 작가가 대부 작가를 찾은 이유는 일거리를 찾아서였다.
그 날의 대화를 재현해 봤다. 대화는 길었지만 핵심은 이거다.
중견 : "당장 일할 거 없어요? 빚 갚아야 되요."
대부 : "야, 나랑 어디 산에 들어가 1년만 스토리 쓰자. 죽이는 거 함 써 보자."
중견 : "아니, 지금 당장 힘들다는데 뭘 1년을 산에 들어가요?"
문제는 이제 만화 스토리 작가로서 새 꿈을 키우기로 한 대상 작가가 옆에서 이를 지켜본 것이다. 한 명은 대부요 한 명은 중견 인기작가였는데 그 비전의 모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 날 밤, 대상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기가 아닌가?'라는 잠깐의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쉽게 흔들릴 동생은 아니지만.

#5
이 공모전과 한 두 달 차이를 두고 진행되는 또 다른 공모전이 있다. 예년에는 스토리 장편 부문의 응모작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인 일인지 출품작이 많다.
가만히 보니 이번 공모전에 출품했다가 낙방한 작품들이 대거 재도전한 것이 하나의 배경이 됐다. 낙선작의 재도전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심사평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경우에 작품의 보완보다는 작품 외적인 이유로 낙선됐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번 공모전 수상 발표 이후에 몇 개의 댓글을 보니, "심사위원이 표절자들이면서 무슨 참신성이냐", "남자 작가들로만 구성된 심사위원진이라 여성적인 만화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들이 보인다. 심사위원이 아니었으므로 이 말에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심사위원 구성과 낙선의 관계는 직접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명으로 올려진 심사위원 명단과 평가 내용은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선작과 수상작의 비교는 심사위원들이 했지 개별 출품자들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상작 시비는 객관성을 상실하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스토리 공모전에 재 도전하는 작품들과 새롭게 도전하는 모든 작품들이 가능하면 좋은 작품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스토리가 힘이다.


올 해, 이현세 작가의 만화 스토리를 썼던 여성 스토리 작가가 영화 스토리를 써서 억 대의 고료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두고 역시 영화판에서 굴러야 된다는 이야기가 한 동안 돌았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만화 스토리가 편 당 1억을 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1억 스토리는 역시 뉴스에 보도될 만큼 특이한 경우이다.
만화의 경우 작품의 에피소드와 캐릭터 설정만 판권계약하거나 스토리 전체를 영화화 계약할 경우에 통상 2천 만원 정도가 오간다. 3천이면 잘 받았다고 한다. 뉴스에 보도될 만큼 특이한 경우인 1억 고료 기사에 영화로 몰린다는 것은 우려될 만한 상황이다. 편당 최고 고료보다 스토리의 상업화가 더 많이 보장되는 만화가 오히려 안정적이다는 반론에 나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영화나 만화나 프로의 세계이므로 평균 임금이나 최저 임금이니 하는 것은 부질 없는 것이다. 버는 사람은 벌고 굶는 사람은 굶는다. 다만 업계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개인의 역량이 시스템의 왜곡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는 일부 개인의 능력보다 외부적인 이유로 배고프다는 술자리 비아냥이 전혀 근거없는 지적이 아니므로 그 고민은 멈출 수 없다.

여담이지만, 만화에 있어서 한 사람이 스토리와 그림을 전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긴 하다. 그러나 다양한 그림 작가와 스토리 작가가 작품을 기준으로 결합하는 것이 좀 더 활발해 지기를 바란다. 허영만 선생의 다양한 작품 세계가 가능했던 것은 다양한 스토리 작가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경험이란 것은 어차피 실제 경험의 결과이므로 다양함에 있어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무협, SF, 스포츠, 조폭, 성애, 추리, 판타지, 법, 고고학, 전설, 종교, 철학...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그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차선책으로 다양한 경험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만화로 그려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도 아니면 작가 스스로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분야의 섭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한 작품을 평생의 역작으로 발표하는 것이나 한 작품의 진행 이후 새 작품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이러한 방향의 방법들이다. 그러니 작품 한 장의 고료에는 보이지 않고 계량화되지 못한 사전 준비과정이 모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들여 창작한 작품들의 장당 고료는 참으로 헐 값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같은 작품들을 초당 1페이지 속도로 보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작품을 모독하는 것과 같다.(물론 그렇게 볼 작품도 있지만...)

여하튼 스토리와 만화가의 결합은 종속이 아니며 더 활발해져야 한다.

2005. 10. 9.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10/09 19:27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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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夢幻秘密實驗室 at 2005/10/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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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디온 at 2005/10/09 22:34
아아.상당히 와닿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Myggol at 2005/10/09 23:25
버는 사람은 벌고 굶는 사람은 굶는다.
이 말에 저도 모르게 끄덕거렸습니다. 참 아픈 말이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약간 슬픕니다. -_-;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0/09 23:39
디온 님/닿습니까? 제가 좀 들이댔나 봅니다.^^ 그냥 에피소드를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지요.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0/09 23:42
Myggol 님/공산주의에서도 비만한 사람과 영양실조 걸린 사람이 나오지요. 사람이 바글거리며 사는 곳에 경제적인 기본 결과가 어찌 창작인들을 피해 가겠습니까? 그냥 원래 그런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아서 배고프게 된다면 정말 억울하겠지요. 그런 억울함은 모두가 사라지도록 노력해야 좋은 사회가 되겠구요.
Commented by WindFish at 2005/10/10 16:16
음.. 아주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덧글은 그만두고 트랙백이라도 해야겠네요 ^^;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0/10 22:43
윈드 님/혹시나 이 에피소드를 들으시고 어렵다고 생각하진 말아 주세요. 조앤 롤랑도 대박 터지기 전까지 자신의 글재주가 젬병인 줄 알았답니다.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운이지만 글의 대박은 각자 지녔던 재능이란 것이 다른 의미겠지요. 부디 힘을 얻는 인상이었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어글리몬스터 at 2005/10/11 00:29
음;;;;어렵군요.뭔가 저 세계는 가장 바라왔지만 역시나 아스트랄~
*=_=*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0/11 00:46
어글리 님/대략 멍하신 상태라뇨?--;; 그래도 좋은 말 있잖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거지 뭐.'... 물론 재능이 있는 분야라면 금상첨화겠지만요.
바라는 것이 강렬하면 그게 실체가 됩니다. 그런 꿈을 갖고 살자구요^^;;
Commented by YaWaRa군 at 2005/10/11 15:09
정확히는 그게 1년동안 만화 스토리도 아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자는 얘기였죠....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10/11 15:42
야와라 님/그것까지 밝히면 너무 처참해 질까봐....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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