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8월 18일
[용태성] 끝까지 포기하지 맙시다.
1990년대 후반이던가?
하승남 작가의 일판 만화는 두 가지 분위기가 있는데 하나는 정통 무협 스타일이었고 또 하나는 코믹 무협 스타일이었다. 전자의 경우 오랜 작품 경향이었지만 그 약발이 서서히 잦아 들고 있었는데 코믹 무협물이 나오면서 5대 일판 작가로서의 성가를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것이 '골통' 시리즈였다.
별다른 배경도 없이 작품 성향이 급변하고 이미지도 변했기에 알아 보니 한 사람이 등장했다. 코믹 무협으로 하승남 작가의 작품 세계를 넓혀 준 이가 바로 그 사람, '용태성' 작가이다.
그렇게 이름만 알던 작가가 1999년 8월 10일에 일판 작가로 독립하여 데뷔를 했다. 그 데뷔작인 '천리박살' 서문에 밝힌 소회를 보니 이렇게 써 있다.
"만화를 사랑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무협극화 속의 재미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대박', '골통' 등의 스토리를 집필하면서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 '박살'을 제작했다. 철저한 기획과 혼신의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박살'로 또 한번의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기대한다. (하략)"
2001년, '귀견', '귀천하', '팔색조', '황당무계' 등을 집필한 스토리 작가 이화성과 용태성이 의기투합한 용태성 프로덕션이 있던 화곡동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팬의 입장에서 새롭게 진입한 작품에 대한 편지를 보낸 뒤에 찾아 간 화실에서 몇 가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흔한 'B' 팀을 운영하지 않는 화실과 중견이 훌쩍 넘는 스토리 작가집단이 상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원도에 있던 장대일과 무협 스토리의 유명작가 이화성, 그리고 초창기 스토리 작가모임을 주도했던 모 작가 등 초기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의가 넘쳤다. 이 자리에서 프로덕션과 일판 활로에 대한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기억 나는 것은 몇 마디 말이었다.
'A'팀 만 운영하겠다는 순진할 정도의 의지와 남들은 저가 스토리 구매에 몰릴 때 중견 스토리 작가를 영입하고자 했고, 이런 노력들로 최대의 작품 퀄리티를 담보하려는 구상들이 어쩌면 순수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러한 의지는 오랜 일판의 구조적 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럼에도 그 의지마저 퇴색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판 업계 외에서는 알아 주지도 않는 용태성 작가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일판을 접고 중국을 유랑하면서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만화 일감(?)을 처리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씁쓸하고 상징적이었다. 가끔 국내에 들어 오면 작품 발표를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식도 결과 없음으로 나타나게 되고 최근까지 그의 이름이 박힌 작품을 못 보면서 지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얼마 전 방송 인터뷰로 같이 만났던 조원행 작가로부터였다. 간암이 뇌로 전이되어 생사지경에 놓였다는 참담한 소식이다.
본명 김환형 작가의 벗겨진 앞머리도 사람 좋아 보이더니 인생 참으로 허망하다. 독자의 정제되지 않은 지적에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동조하던 그. 초기에 등장시켰던 못생긴 주인공 '투신'의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었다는 말에 자신도 애착을 버릴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독자가 '못생긴 주인공이 싫다고 하더라'며 잘 생긴 놈으로 바꾼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던 그다.
그는 지금 이대목동병원에 있다. 안타까운 소식에 더하여 끝까지 만화를 그리려던 한국의 중견 만화가가 뇌수술 비용마저 지불할 수 없이 홀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담하다. 병실에서 그를 보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떠오르는 말이 없다. 아무리 한국말이 위대하다고 해도 이 경우에 쓸 수도 있는 '그만하길 다행입니다'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쾌차를 빕니다'라는 말도 상투적으로 보이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의 첫 작품 '천리 박살'은 일판만화임에도 소장을 위해 한 질을 더 샀다. 지금 그 만화를 다시 보면서 할 말을 찾은 뒤에 그를 찾아봐야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맙시다...
2005. 8. 18.
화실에 불쑥 찾아갔던 노량진의 주 모씨 드림.
덧) '언론'이 대중의 관심도를 기준으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느 가수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느니, 그런데도 녹화를 하는 '투혼'을 보였느니 하는 소식을 볼 때마다 참 세상 울퉁불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쓰이는 '투혼'은 차라리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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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9일 별세. 향년 48세.
1월 30일 천호동 가톨릭병원 장례식장 발인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청평강에 잠들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승남 작가의 일판 만화는 두 가지 분위기가 있는데 하나는 정통 무협 스타일이었고 또 하나는 코믹 무협 스타일이었다. 전자의 경우 오랜 작품 경향이었지만 그 약발이 서서히 잦아 들고 있었는데 코믹 무협물이 나오면서 5대 일판 작가로서의 성가를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것이 '골통' 시리즈였다.
별다른 배경도 없이 작품 성향이 급변하고 이미지도 변했기에 알아 보니 한 사람이 등장했다. 코믹 무협으로 하승남 작가의 작품 세계를 넓혀 준 이가 바로 그 사람, '용태성' 작가이다.
그렇게 이름만 알던 작가가 1999년 8월 10일에 일판 작가로 독립하여 데뷔를 했다. 그 데뷔작인 '천리박살' 서문에 밝힌 소회를 보니 이렇게 써 있다."만화를 사랑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무협극화 속의 재미란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대박', '골통' 등의 스토리를 집필하면서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 '박살'을 제작했다. 철저한 기획과 혼신의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박살'로 또 한번의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기대한다. (하략)"
2001년, '귀견', '귀천하', '팔색조', '황당무계' 등을 집필한 스토리 작가 이화성과 용태성이 의기투합한 용태성 프로덕션이 있던 화곡동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팬의 입장에서 새롭게 진입한 작품에 대한 편지를 보낸 뒤에 찾아 간 화실에서 몇 가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흔한 'B' 팀을 운영하지 않는 화실과 중견이 훌쩍 넘는 스토리 작가집단이 상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원도에 있던 장대일과 무협 스토리의 유명작가 이화성, 그리고 초창기 스토리 작가모임을 주도했던 모 작가 등 초기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의가 넘쳤다. 이 자리에서 프로덕션과 일판 활로에 대한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기억 나는 것은 몇 마디 말이었다.
'A'팀 만 운영하겠다는 순진할 정도의 의지와 남들은 저가 스토리 구매에 몰릴 때 중견 스토리 작가를 영입하고자 했고, 이런 노력들로 최대의 작품 퀄리티를 담보하려는 구상들이 어쩌면 순수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러한 의지는 오랜 일판의 구조적 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럼에도 그 의지마저 퇴색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판 업계 외에서는 알아 주지도 않는 용태성 작가를 쉽게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일판을 접고 중국을 유랑하면서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만화 일감(?)을 처리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씁쓸하고 상징적이었다. 가끔 국내에 들어 오면 작품 발표를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식도 결과 없음으로 나타나게 되고 최근까지 그의 이름이 박힌 작품을 못 보면서 지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얼마 전 방송 인터뷰로 같이 만났던 조원행 작가로부터였다. 간암이 뇌로 전이되어 생사지경에 놓였다는 참담한 소식이다.
본명 김환형 작가의 벗겨진 앞머리도 사람 좋아 보이더니 인생 참으로 허망하다. 독자의 정제되지 않은 지적에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동조하던 그. 초기에 등장시켰던 못생긴 주인공 '투신'의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들었다는 말에 자신도 애착을 버릴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독자가 '못생긴 주인공이 싫다고 하더라'며 잘 생긴 놈으로 바꾼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던 그다.
그는 지금 이대목동병원에 있다. 안타까운 소식에 더하여 끝까지 만화를 그리려던 한국의 중견 만화가가 뇌수술 비용마저 지불할 수 없이 홀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참담하다. 병실에서 그를 보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떠오르는 말이 없다. 아무리 한국말이 위대하다고 해도 이 경우에 쓸 수도 있는 '그만하길 다행입니다'라고 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쾌차를 빕니다'라는 말도 상투적으로 보이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의 첫 작품 '천리 박살'은 일판만화임에도 소장을 위해 한 질을 더 샀다. 지금 그 만화를 다시 보면서 할 말을 찾은 뒤에 그를 찾아봐야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맙시다...
2005. 8. 18.
화실에 불쑥 찾아갔던 노량진의 주 모씨 드림.
덧) '언론'이 대중의 관심도를 기준으로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느 가수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느니, 그런데도 녹화를 하는 '투혼'을 보였느니 하는 소식을 볼 때마다 참 세상 울퉁불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쓰이는 '투혼'은 차라리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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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9일 별세. 향년 48세.
1월 30일 천호동 가톨릭병원 장례식장 발인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청평강에 잠들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y | 2005/08/18 01:39 | 만화가 코너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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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카프에서도 보니 만화는 회고전시니 기념전이니 하는 것이 마련되어 뭔가 추억의 문화처럼 비교되고 애니와 캐릭터 등은 주목받는 현재의 그 무엇으로 보이더군요. 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이 '애니메이션, 그리고 곁다리 만화 페스티벌' 쯤으로 변질되는 듯하여 씁쓸합니다. 돈의 흐름이 그렇게 만들었을테지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