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3일
만화와 현실_수라리재
일본 만화 [닥터 코토의 진료소]가 나온 뒤 그 만화의 배경이 된 실제의 코시키 섬이 관광지로 떠올랐다. 실제로 호시노 간호사처럼 예쁜(?) 처자가 있는지 살짝 더 궁금해 한 주 모씨이지만, 만화 속 그림과 이야기를 현실에서 볼 때, 감동은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송이뿐 할머니의 고향 수라리재 이야기는 감동 자체(어떤 이는 신파라고도 지적하지만)의 만화를 개인적으로 사실처럼 보게 만든다.
만화계에서 만난 이들 중에 수라리재를 넘어봤을 사람들을 만난 것은 딱 세 명이다. 공교롭게도 세 분 모두 '황' 씨라는 것에 묘한 느낌이 든다. 둘은 형제이고 하나는 다른 황 씨이다. 그러니 나까지 모두 네 명이 수라리재를 넘어 본 사람이다. 물론 여기에서 넘는다는 것은 현재의 여행을 말함이 아니라 어릴 적 고향이기 때문에 넘어야 했던 경우를 말한다.
해발 600M의 수라리재, 수라리고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께서 1392년 폐위 된 후 삼척 근덕면 궁촌으로 유배되어 가시던 중 이 고개에서 수라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유배 가는 도중 고개에서 받았으니 찬거리도 없는 주먹밥 쯤 되었겠지만 받는 이가 그래도 왕이니 수라가 맞다.
또 하나는 단종 유배 당시 추익한이란 분이 수라리재 아래 화원리에 살았는데 이 분이 다래며 머루를 따다가 수라리재를 넘어 영월 청령포에 있는 단종에게 드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 날도 수라리재를 넘어 영월로 가고 있는데 재를 넘자 용포를 입고 흑색 익선관을 쓴 단종이 백말을 타고 있어 땅에 부복한 추 씨가 물었다고 한다.
"쿼바디스 도 마마~"
그러자 단종이 한참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백 마운틴"
그리고 추 씨가 열매를 드리려 하자 갑자기 단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추 씨는 불길한 생각에 영월 읍내로 뛰어갔는데 그 날이 바로 단종이 살해당한 날이라는 것이다. 추 씨는 재에서 만났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수라리재로 갔으나 아무 흔적도 없어 그 자리에서 쓰려졌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더해 송 씨, 이제는 어릴 적 어머니가 지어주려던 이름, 그리고 만석 할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인 송이뿐 할머니의 고향 이야기가 더해졌다. 만화의 11회 에피소드를 보면 수라리재 넘어 깊은 산골(아마도 추 씨처럼 화원리가 아니었을까?)에 살던 송씨라는 여자 아이가 산골마을이 싫어 동네 오빠와 서울로 도망을 왔다. 그 이후의 삶이 고단하고 피폐했으리라는 것은 일상다반사. 그 송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행복을 간직하는 방법으로 살아있을 때의 이별을 선택하면서 다시 수라리재를 넘어가려고 한다.
산이 많은 나라여서 고개도 많고 령도 많지만, 버스 앞 창문이 와이드 비전으로 보이는 곳은 단연 수라리재이다. 길이 거의 '8'자로 이어져 있어 잠깐의 직선에서 옆 창문을 보면 아래와 아래, 그 아래에 겹겹이 길이 보이고 굽어진 길을 지날 때 앞 창에 닿을 듯 보이는 산이 완전히 옆으로 지나가는 듯이 보인다. 어릴 때 본 이 장면과 유사한 것이 63빌딩 아이맥스 스크린이었다. 이 블로그의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다. 동영상도 있는데 윗길에 보이는 차들과 옆으로 스치는 풍광이 잘 찍혀 있다. 야간 전조등으로 전방을 본다면 와이드 비전이 제격이다.
지금은 이 길로 다니는 이들이 거의 없다. 도로가 발달하여 영월-석항-녹전-상동-태백 코스가 영월-옥동-하동-녹전-상동-태백으로 '신작로'(요즘도 이런 말 쓰나?)가 뚫려 지금은 수라리재 밑둥에 사는 이들만 이용할 뿐이다.
단종이 유배온 영월 청령포(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스탭들이 묵었던 '청령포 모텔' 옆, 동강 건너편에 있는 섬 아닌 섬마을)조차 그 당시 백리무인지경이었으니 세월이 흘렀다해도 그곳에서 수라리재를 넘어 형성된 산골마을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을 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송이뿐 할머니의 시골집은 지금도 수라리재 정상에서 보이는 마을의 외딴 집들과 닮았다. 그만큼 변화도 없고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그제와 같다. 매일 같은 날, 매일 강냉이와 풀벌레 소리, 겨울 눈 쌓이는 소리뿐 '경선'이니 '쇼를 하라'같은 이야기는 별천지 이야기인 동네이다.
그 재를 넘어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강풀 작가를 통해서 잊었던 무엇을 되찾은 느낌이다. 만화를 보면서 강풀 작가는 '저기를 가 봤나보다.', '어떻게 저 장소를 헌팅하게 됐을까?'가 본 내용보다 더 궁금해질 정도이다. 만화의 분위기와 강풀 작가의 취향 상 정선 카지노를 간 것 같지도 않고, 설사 간다고 해도 그 길보다 더 곧게 뻗은 새 길을 이용할 수 있으니 설명이 안 된다. 단종이 익선관을 쓰고 꿈에 나타나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지도 않았을 터이니 궁금증은 사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코시키' 섬 이야기를 들으면서 늘 꿈꿔왔던 것 중 하나는 우리 만화에 나온 지역을 직접 가 보는 것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만화를 보다 보니 허영만 선생의 정치극화 몇 편 속에서 실제의 몇 지역을 찾을 수 있었고 오세영 선생의 단편 [낚시]에서는 영월의 '어라연'이 나온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절벽 길과 강 가의 낚시 풍경은 어라연을 그대로 생각나게 한다. 과문한 탓으로 십 수편의 만화 외에 실제의 지역을 찾을 수 없어 계속 찾는 중이지만 대부분의 만화에서는 역시 무인도라거나 **학교 등으로 현실에 결합하기 어려운 지역들로 묘사된다. 물론 기행의 테마를 지닌 만화들은 그 자체가 실제의 지역이므로 나같은 희망을 가진 이에게는 보물과 같다.
십 수 편이 아니라 여러 만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실제의 지역을 더 만나고 싶다. 만화가 완결되더라도 그 동네를 지나고 그 산길을 지나면서, 그리고 그 강을 지나면서 오래도록 감동을 다시 되새기고 싶다. 수라리재를 가 봐야겠다.
2007. 8. 24.
"만화를 보고 남한 땅에서 실제로 가 볼 수 있는, 그런 맘이 들게 하는 만화들을 알고 계시죠?"
궁금해 하는 주 모씨.
그런 까닭에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나오는 송이뿐 할머니의 고향 수라리재 이야기는 감동 자체(어떤 이는 신파라고도 지적하지만)의 만화를 개인적으로 사실처럼 보게 만든다.
만화계에서 만난 이들 중에 수라리재를 넘어봤을 사람들을 만난 것은 딱 세 명이다. 공교롭게도 세 분 모두 '황' 씨라는 것에 묘한 느낌이 든다. 둘은 형제이고 하나는 다른 황 씨이다. 그러니 나까지 모두 네 명이 수라리재를 넘어 본 사람이다. 물론 여기에서 넘는다는 것은 현재의 여행을 말함이 아니라 어릴 적 고향이기 때문에 넘어야 했던 경우를 말한다.
해발 600M의 수라리재, 수라리고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께서 1392년 폐위 된 후 삼척 근덕면 궁촌으로 유배되어 가시던 중 이 고개에서 수라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불리어 오고 있다. 유배 가는 도중 고개에서 받았으니 찬거리도 없는 주먹밥 쯤 되었겠지만 받는 이가 그래도 왕이니 수라가 맞다.또 하나는 단종 유배 당시 추익한이란 분이 수라리재 아래 화원리에 살았는데 이 분이 다래며 머루를 따다가 수라리재를 넘어 영월 청령포에 있는 단종에게 드렸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 날도 수라리재를 넘어 영월로 가고 있는데 재를 넘자 용포를 입고 흑색 익선관을 쓴 단종이 백말을 타고 있어 땅에 부복한 추 씨가 물었다고 한다.
"쿼바디스 도 마마~"
그러자 단종이 한참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백 마운틴"
그리고 추 씨가 열매를 드리려 하자 갑자기 단종이 사라졌다고 한다. 추 씨는 불길한 생각에 영월 읍내로 뛰어갔는데 그 날이 바로 단종이 살해당한 날이라는 것이다. 추 씨는 재에서 만났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수라리재로 갔으나 아무 흔적도 없어 그 자리에서 쓰려졌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더해 송 씨, 이제는 어릴 적 어머니가 지어주려던 이름, 그리고 만석 할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인 송이뿐 할머니의 고향 이야기가 더해졌다. 만화의 11회 에피소드를 보면 수라리재 넘어 깊은 산골(아마도 추 씨처럼 화원리가 아니었을까?)에 살던 송씨라는 여자 아이가 산골마을이 싫어 동네 오빠와 서울로 도망을 왔다. 그 이후의 삶이 고단하고 피폐했으리라는 것은 일상다반사. 그 송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행복을 간직하는 방법으로 살아있을 때의 이별을 선택하면서 다시 수라리재를 넘어가려고 한다.
산이 많은 나라여서 고개도 많고 령도 많지만, 버스 앞 창문이 와이드 비전으로 보이는 곳은 단연 수라리재이다. 길이 거의 '8'자로 이어져 있어 잠깐의 직선에서 옆 창문을 보면 아래와 아래, 그 아래에 겹겹이 길이 보이고 굽어진 길을 지날 때 앞 창에 닿을 듯 보이는 산이 완전히 옆으로 지나가는 듯이 보인다. 어릴 때 본 이 장면과 유사한 것이 63빌딩 아이맥스 스크린이었다. 이 블로그의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다. 동영상도 있는데 윗길에 보이는 차들과 옆으로 스치는 풍광이 잘 찍혀 있다. 야간 전조등으로 전방을 본다면 와이드 비전이 제격이다.
지금은 이 길로 다니는 이들이 거의 없다. 도로가 발달하여 영월-석항-녹전-상동-태백 코스가 영월-옥동-하동-녹전-상동-태백으로 '신작로'(요즘도 이런 말 쓰나?)가 뚫려 지금은 수라리재 밑둥에 사는 이들만 이용할 뿐이다.
단종이 유배온 영월 청령포(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스탭들이 묵었던 '청령포 모텔' 옆, 동강 건너편에 있는 섬 아닌 섬마을)조차 그 당시 백리무인지경이었으니 세월이 흘렀다해도 그곳에서 수라리재를 넘어 형성된 산골마을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을 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송이뿐 할머니의 시골집은 지금도 수라리재 정상에서 보이는 마을의 외딴 집들과 닮았다. 그만큼 변화도 없고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그제와 같다. 매일 같은 날, 매일 강냉이와 풀벌레 소리, 겨울 눈 쌓이는 소리뿐 '경선'이니 '쇼를 하라'같은 이야기는 별천지 이야기인 동네이다.
그 재를 넘어 본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강풀 작가를 통해서 잊었던 무엇을 되찾은 느낌이다. 만화를 보면서 강풀 작가는 '저기를 가 봤나보다.', '어떻게 저 장소를 헌팅하게 됐을까?'가 본 내용보다 더 궁금해질 정도이다. 만화의 분위기와 강풀 작가의 취향 상 정선 카지노를 간 것 같지도 않고, 설사 간다고 해도 그 길보다 더 곧게 뻗은 새 길을 이용할 수 있으니 설명이 안 된다. 단종이 익선관을 쓰고 꿈에 나타나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지도 않았을 터이니 궁금증은 사그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코시키' 섬 이야기를 들으면서 늘 꿈꿔왔던 것 중 하나는 우리 만화에 나온 지역을 직접 가 보는 것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만화를 보다 보니 허영만 선생의 정치극화 몇 편 속에서 실제의 몇 지역을 찾을 수 있었고 오세영 선생의 단편 [낚시]에서는 영월의 '어라연'이 나온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절벽 길과 강 가의 낚시 풍경은 어라연을 그대로 생각나게 한다. 과문한 탓으로 십 수편의 만화 외에 실제의 지역을 찾을 수 없어 계속 찾는 중이지만 대부분의 만화에서는 역시 무인도라거나 **학교 등으로 현실에 결합하기 어려운 지역들로 묘사된다. 물론 기행의 테마를 지닌 만화들은 그 자체가 실제의 지역이므로 나같은 희망을 가진 이에게는 보물과 같다.
십 수 편이 아니라 여러 만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실제의 지역을 더 만나고 싶다. 만화가 완결되더라도 그 동네를 지나고 그 산길을 지나면서, 그리고 그 강을 지나면서 오래도록 감동을 다시 되새기고 싶다. 수라리재를 가 봐야겠다.
2007. 8. 24.
"만화를 보고 남한 땅에서 실제로 가 볼 수 있는, 그런 맘이 들게 하는 만화들을 알고 계시죠?"
궁금해 하는 주 모씨.
# by | 2007/08/23 18:33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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