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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계는 정말 두 쪽이 나는 걸까?

어제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개최된 스토리작가 협회 총회의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만화계, 두 쪽이 났다'라거나 '전면전'이라는 표현을 했다.
틀린 표현은 아니라지만 다른 표현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참에 지난 1년을 끌어 온, 아니 20년을 묵혀 온 글과 그림의 특수한 한국만화 환경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화 스토리작가 대 그림작가의 저작권소송 정리

소송 배경_만화에서의 글과 그림


만화는 글과 그림이 단순히 결합했다기보다는 어우러진다는 매체적 특성을 지녔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아마도 글보다 그림 혹은 상징이 먼저 나타났을 터이며 글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그림과 글이 순차적으로 발생한 뒤 그림은 그림의 세계로, 글은 글의 세계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글은 오로지 문자 기호로 시와 문학으로 치달았고 그림은 순수미술로 치달았다. 그러던 것이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은 만화를 통한 만남이다. 이 둘의 만남도 초기에는 신혼부부처럼 어색해서 그림 밑에 설명이 달리거나 테두리에 글이 실리거나 등장 인물의 입에서 내뿜는 긴 종이처럼 잘 섞여지지 못하고 자기들의 영역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최근의 만화에서 보면 아이 여섯 쯤 둔 부부처럼 자연스럽다 못해 서로의 경계를 바꾸기도 한다. 글이 그림처럼 사용되어 '퍽'이란 글이 등장인물을 치기도 하고 그림 대신 만장처럼 쏟아진 네모난 독백 글들이 혼란한 정신상태를 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화는 글과 그림이 주종관계가 아니며 글과 그림의 결합도 아니며 둘이 만나 새로운 그 무엇이 되는 것, 그것이 전혀 새로운 형식의 만화이다.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극단적으로 혼자, 그리고 손으로 직접한 것을 지칭할 때가 있다. 만화가 제9의 예술로 자칭 타칭 불려지고 이러한 예술 인식은 만화에도 접목됐다. 예술 앞에 붙은 순수라는 말은 늘 고매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순수가 안 붙은 것도 예술은 예술이다. 그것이 대중문화예술이든 파격적 실험 예술이든 예술의 범주에 든다. 뽕짝이 노래이고 그레고리안 성가도 노래이듯 노래는 다 노래인 것과 같다.
일반적 인식에서 만화의 독해가 용이하다는 것과 대중적인 매체라는 것이 만화를 예술의 범주에서 밀어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예술이 이해가 어려워야 하고 대중과 유리되어야 한다는 정의가 아니라면 만화를 천대하는 인식은 허공에 떠도는 망상이다. 오히려 독해의 용이성과 대중지향은 만화의 특징이며 강점이며 정체성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근본은 역시 순수의 틀을 깨고 만난 글과 그림의 노력이다.

초기에 글과 그림이 만났을 때 주종서화니 주종화서니 분류도 있었고 어느 정도는 현재의 작품에서 동일한 분류가 가능하다. 헐리우드 블럭 버스터 영화는 스토리의 허술함을 숨쉴 틈 없이 뒤집어 지는 영상으로 눌러 버린다. 이것은 주종화서 아닐까? 반면에 아마추어가 처음 제작한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중에서 영상은 열악하지만 번뜩이는 재치와 메시지가 전해지는 작품이라면 이것은 주종서화가 아닐까? 이처럼 만화에서도 그림과 글의 무게를 구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와 종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그림이 좋아서', 또는 '내용이 와 닿아서' 같은 것과 별 차이가 없을 터이다.
그런데 한국의 만화에서 특수한 예외가 있다. 산업적 또는 유통의 측면에서 독특하게 자생한 '대본만화'에서는 주종의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작품 자체만을 대상으로 주종의 이야기가 나온다기 보다는 창작 구조까지 포괄한 의미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작품이 발표되는가? 누가 누구의 창작을 구매하는가? 누가 누구의 저작권을 소유하는가? 그 소유는 부분권리 계약이냐 전체양도 계약이냐? 등 다양한 기준들을 찾을 수 있다. 그 기준은 세상이 변해도 저만큼 뒤쳐저 있다가 이제야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됐다.
부상의 동기는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첫째 침체된 만화시장에서 새로운 수익모델로 등장한 온라인 수익 배분 관계, 둘째, 저작권에 대한 인식 변화, 셋째, 일본 <캔디캔디> 만화의 스토리 작가 권리 인정 판례, 넷째, 일부 그림 작가의 온라인 수익 배분에 따른 형평 및 규정 필요성 증대 등이다. 물론 최근의 기폭제는 이현세 회장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낸 양병설 작가의 소송이다.

상황_단체 소송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는 6월 25일 총회를 개최했다. 방송사 취재를 제외한 협회 회원만의 비공개 총회였지만 취재 요청이 커 인터뷰 취재기사들이 나올 정도로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기사 제목이 '만화계 두쪽나다'나 '전면전' 같은 것이라 개운치는 않지만 기자를 탓할 수는 없다.
총회에서 다뤄진 소송의 주된 이유는 지난 1년 간 그림작가와의 저적권료 배상에 대한 협상이 결렬되어 저작권 침해 소송이라는 단계로 문제가 커졌기 때문이다. 원로 만화작가 두 분에게만 알려 드리고 개최된 이날 총회에는 살이 많이 오르신 김민기 작가, 김세영 작가, 박찬호 작가 등 유명 스토리 작가들이 참석하여 사안의 중요성을 반증했다.
이번 소송 이전에 스토리작가협회는 1995년 창립되어 최고 250여 명이 활동하다가 2000년부터 휴지기에 들었다. 그 이후 2005년 10월, 협회 결성의 필요성을 느낀 몇 작가를 중심으로 재창립이 준비되어 오다가 2006년 1월 16일 창립 총회를 열고 1대 회장에 임웅순 작가를 추대했다. 원로작가에서부터 전극진, 임달영 등 젊은 작가까지 40여 명 정도가 참여하는 새로운 시발이었다. 이현세 회장의 화환과 축사가 포함된 원만한 출발이었지만 내포된 문제는 언제나 드러나기 마련이다. 2대 회장으로 추대된 조성황 작가를 중심으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의견은 만화가협회와 지속적인 협상 안으로 다뤄졌다. 그것이 결렬된 것이니 남은 것은 법적 수순 뿐이다.

소송의 쟁점

_스토리 작가 측
스토리 협회는 글을 받아서 그림을 그린 공동저작물인 만화작품에서 글 작가의 동의 없이 재판 출간하는 경우, 새로운 수익모델인 인터넷 서비스로 판권 계약한 것이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 일부 작품의 경우 제목만 바꿔서 재판을 내거나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공동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한 행위로 보아 형사 소송도 불사할 입장이다. 고행석 작가의 작품 '왕 불청객', '불청객의 러브스토리', '우리들의 우상' 등에 스토리를 쓴 김민기 작가는 "20여 년 전 작품 재판 수익의 20%를 받기로 고씨와 계약을 맺었으나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인터넷 판매 수익의 경우 재판이 아니라며 고씨가 돈을 주지 않았다"라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 오랜 프로덕션 체제의 어둠도 도마에 올렸다. 즉 작가이기보다 프로덕션 사장으로 명의만 걸고 문하생과 스토리 작가를 연결하여 작품을 양산하는 일부 대본화실 체제의 창작기반 고사를 지적했다. 스토리작가협회 조성황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서 "단순히 과거 저작권료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의 창작자가 과연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 핵심 쟁점"이라면서 "이번 소송은 만화산업에서 스토리작가의 지위를 분명히 하고 창작자 중심으로 만화 시장을 개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_그림 작가 측

소송을 당한 작가들은 소송의 대상 저작물인 만화출판에 스토리 작가의 창작물을 저작권 양도 개념의 매절 계약을 했는데 추가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매절이었기 때문에 권당 스토리 비용을 몇 백 만원씩 지급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부분 계약이면 그 이하의 비용을 지급했다는 주장이다.

_양 측의 쟁점

새로운 수익모델 발생에 따른 권리 관계의 재규정이 이번 소송으로 어떻게 날지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협상이라는 선행 과정이 결렬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소급적용의 여부이다. 표면적으로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는 권리 보상 금액의 규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므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소급 적용 여부에 따라 '앞으로 잘해 보자'와 '우선 몇 억 내라'로 결정나기 때문이다.

소송과 관련된 내용들

_캔디 캔디 사건
이 사건을 요약한다면, 소설을 만화로 각색하고 만화의 주인공을 캐릭터로 만들었는데 소설가가 자신의 허락 없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때 만화가는 소설의 주인공을 만화적 캐릭터로 2차저작물화 했기 때문에 그 저작권은 만화가에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소설가에게 있다고 판결한 내용이다. 즉, 소비자가 캔디 인형을 살 때 그 인형이 예뻐서 산다기 보다 소설 <캔디캔디>부터 형성된 무형의 이미지(주근깨 때문에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로 구입하게 되므로 소설의 저작물 형성 기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_협회 간 협상 결렬
논의 전개 과정에서 현상 인식의 차이가 커 생산적 전개로 진행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양 측의 쟁점이 그대로 드러난 '매절인데 무슨 소리냐?'라는 일축과 '일방적 피해의 저작권 침해 구제' 요구는 간극이 컸다.
이를 크게 확대시킨 것은 몇 가지 부수적인 상황들로 악화됐다. 모 대본작가와 스토리 작가의 별개 소송 건에서 그림 작가가 승소했는데 이를 확대 해석하여 그림 작가와 스토리 작가의 분쟁에서 그림 작가가 질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변질됐다. 동일한 사안을 다룬 소송도 아니고 스토리 전속작가 계약을 위반한 스토리 작가를 그림 작가가 소송 제기한 것이므로 당연히 스토리 작가가 패소한 것이지 이번 분쟁과 동일한 저작권 침해 소송이 아니었다.
또한 일반적인 법 해석에 있어서 매절이란 관행적 요소를 배제하고 추가 수익 발생에 대한 수익 배분 요구는 정당하다는 법 해석도 소송으로 가게 하는 동기로 판단된다.

_종속의 인식
본 소송은 글 작가의 소송이다. 즉 그림 작가의 일방적 저작권 침해에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며 이 입장이 일반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본 소송이 대본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창작 현장인데 이현세, 박봉성, 고행석 등 그림 작가의 프로덕션도 있지만 사마달, 야설록 등 글 작가 중심의 창작 현장도 있다. 성인만화 시장에서도 글작가와 그림 작가의 입장은 그 작품의 작가가 누구로 표시되느냐에 따라서 그림 작가 중심이거나 글 작가 중심으로 나뉘는 것이 대본만화의 시장이다. 어느 쪽이 더 많이 있느냐는 검토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황은 아니다.

_양병설 작가의 소송 건
현재 취하 상태로 전해졌으며 스토리작가협회의 움직임과 무관한 개인의 송사였다. 피소된 이현세 회장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위치였다면 일부 수익을 배분하거나 안 할 수도 있지만 선례가 된다는 의미에서 쉽게 결정할 수도 없는 제약이 있다. 실제 수익을 배분했다고 해도 언론에 보도된 수억 대의 계약금에서 디지털 전환 비용과 중계 수수료를 제외하고, 전체 작품 중 양병설 작가의 스토리로 발표된 몇 종의 작품이 소송 대상 저작물이 된다. 그 저작물과 관련된 수익에서 배분을 한다고 하면 실제 수익 배분액은 그리 크지 않거나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소송 자체가 동일한 사안의 법적 해석을 엿볼 수 있는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대한 이들이 많았는데 결론은 아직 없다.

_사후 저작물
피고 대상자 중에 두 분의 이름이 갖는 의미는 복잡하다. (고)박봉성님과 (고)이재학님은 저작권법상 사후 50년 저작권리 소유와 별개로 사후에도 저작물이 창작되고 있다는 특이성을 지닌다. 이것이 프로덕션이 갖는 특이성 때문인데, 프로덕션은 특정 소재를 정하고 주요 캐릭터를 고정시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그것이 무협이면 주요 등장인물의 구도가 동일하게 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그래서 늘 추공이 무협 세계의 주인공이며 최강타가 현대의 히로인이 된다.
프로덕션의 화실 시스템에서 대표자 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다른 대표자 이름으로, 다른 캐릭터를 창작하여, 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보다, 동일한 프로덕션의 지명도로, 이미 브랜드가 된 캐릭터로, 유사 분야의 소재를 풀어 내는 것이 이 어려운 시장에서 그나마 안전한 사업일 수밖에 없다. 가끔 독자 중에서 이재학 선생님에게 팬 레터를 보내고 싶다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때의 심정은 참 묘하다.

소송의 전개와 득실

쟁점 그대로 매절을 저작권 양도로 볼 것이냐는 관행에 대한 법적 해석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공동저작물로 인정된 후 동일성 유지나 저작인격권 등을 침해하게 된 미통보 재판이나 제호의 임의 변경은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문제가 되리라 판단된다.
원고가 승소한다면 그 소급적용의 여부가 쟁점인데 이에 대한 법적 해석도 주의할 대목이다.
근본적으로 저작권리의 부분 계약이 아닌 업계의 매절 관행을 저작권 양도 계약으로 보느냐 마느냐도 관건이다.
계약서가 있는 분쟁 당사자(대부분 매절 계약 사례)와 무계약 당사자 등 계약 형태가 상이할 때 단체 소송의 판결이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즉, 법은 개별 계약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있으며 관행이 매절이라고 해도 그것이 100%가 아니라면 별개의 적용 룰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강제적으로 담보한다는 면에서는 긍정, 어려운 만화계의 속내를 만방에 떨친 것은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내부적 협상으로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이번 계기를 만화창작의 성숙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두 쪽 나다'가 아니라 '새로운 아침을 맞는 만화계'란 표현이 더 기다려 진다.

2007. 6. 26.
더 좋은 만화들이 나올 계기라고 생각하는 주 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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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들은 추측이 아니라 공식 보도 및 성명서 등을 참고로 작성된 글임에도, 이후 상황 전개에 따라 개별 개인의 고소 진행 여부에 변화가 발생하여 일부 작가의 경우 고소 예정자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 제외된 분이 자신의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해 와 본문의 일부 문장을 수정했다.

2007. 8. 1.
고소를 좋아하지 않는 주 모씨

by 쥬피터 | 2007/06/26 14:20 | 그것이 궁금하뇨?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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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6/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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