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류경옥 작가, 그리고 표절

드라마 작가 류경옥 씨가 김수현 작가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낸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개적으로 보도된 사안이니 이젠 비밀도 아니다.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대부분 만화 쪽의 저작권 분쟁 분야를 다루지만 결국 사람들을 만나는 일인지라 만화 쪽이 아닌 다른 분야의 분쟁을 경험하기도 한다. 만화가 또는 만화 스토리 작가가 만화만 창작하라는 법도 없고 또 창작자이다보니 주변 사람들 중에 영화나 드라마 분야에 있는 지인들도 많다. 캐릭터 산업 쪽도 있고 카피 라이터도 있다. 학생도 있고 프로도 있다. 만화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호환되기 때문에 이러한 타 분야의 경험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런 배경에서 어느 날, 드라마 작가인 류 작가의 작품 '옥희, 그 여자'의 대본을 검토하게 됐다. 이 대본은 이곳 저곳으로 드라마화를 위해 보내졌던 자료이다.(필자 주1)
류 작가는 아이디어의 상품화를 위해 다수의 인물이 개입하고 그 아이디어를 알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신뢰는 참 허망한 것이 되기 쉽다며 도용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류 작가는 그런 관행에 대한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업계의 상황이며 유사한 사례는 충무로나 여의도에 전설처럼 떠돌아 다닌다. 물론 이번 소송이 그 상황에 적용되는가는 별개이다. 다만 표절의 입증과 표절 소송의 제기라는 근본적인 두 문제만 살펴본다.

<표절 입증>

첫 검토 사례는 이번 소송과 별개의 드라마인 '**'였다. 류 작가의 대본에 걸리는 구체적인 표절 사례를 찾아 봤는데 검토 결과 법의 기준을 놓고 본다면 살짝 걸쳐 있는 내용들은 있지만 명확하게 표절로 판정받기가 쉽지 않은 사례였다. 전체적으로 유사하고 부분적으로 뚜렷한 실수(?)도 발견됐다. 즉, '유사성'은 우연의 확률로 대치될 수 있는 서사구조일 수도 있고, '실수'란 드라마에서 '가'라는 이유로 파티를 연 것을 드라마 중반에서 '나'라는 이유로 열었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이유는 드라마에서는 없었던 것이고 류 작가의 대본에 있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데이터 저작물의 경우,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라고 치자. 이것을 다르게 편집하고 새로운 저작물로 등록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표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유령의 번호를 기재해 두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두 저작물에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면 후자의 것이 전자를 베낀 결정적 증거가 된다. 이런 표시는 네비게이션에도 사용할 수 있다. 없는 시골길을 하나 그려두는 것처럼.

그럼에도 표절의 입증은 쉽지 않다. 피해자로 주장하는 경우 자동차 추돌을 당한 듯 100:0의 승리를 기대하지만 이게 간단치 않다. 그렇다보니 늘 '이건 베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라는 '같기도' 상황이 발생한다.

법은 저작물의 구분을 위해 아이디어나 소재가 아니라 구체적 표현의 실질적 유사성을 따져 표절이냐 아니냐를 판단한다. 단순히 옷을 벗고 침대에 있다고 해서 같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표절을 따지려면 원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가에서부터 표절 개연성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베낀 흔적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지... 따져 볼 수 있는 것은 다 뒤져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이건 표절이야' 또는 '아니야' 또는 '베낀 것 같지만 아닌 것도 같으니 넘어 가고...'도 된다. 표절 자체가 개인적 양심에 의한 행위라서 입증이 쉽지 않다. 교묘한 지식의 도둑이며 개인적 양심이 가장 잘 아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의 드라마를 비교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류 작가의 억울함과 분노, 경제적 손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안 자체가 명쾌할 수가 없는 원천적 제한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송의 제기>

류 작가는 소송의 대상 원작을 1년 동안 창작했고 그 작품에 모든 것을 기대고 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작품이 자식인 것이다. 어느 작가라도 자신의 작품이 표절 대상이 되고 원작이 묻힌다면 분노할 것이다. 그것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원점 회귀 수단은 오직 법적 진행 뿐이다. 일부는 법적 분쟁 이전에 의문 제기로 원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사례는 아주 드물다.

문제는 류 작가를 포함해서 다수의 창작자가 갖는 경제적 제약이다. 실제로 류 작가의 소송이 현재 제기된 것은 소송비 마련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경우는 소송 가액이라도 책정할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저작권 침해 소송은 몇 십만 원 미만도 많다. 변호사 선임비 수 백만 원보다 작아서 아예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발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FTA 결과로 '법정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지만 현재는 그렇다. 실제로 상담하는 건의 10% 미만이 소송으로 발전되어 의혹을 풀 기회라도 얻는다. 나머지 90%는 소송 한번 못해보고 술자리에서 세상 한탄하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에 표절과 관련한 소송의 승소율이 낮은 것은 다른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즉, 법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표절 당했다고 느끼는 창작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고 법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많이 나와 원고 패소율이 높게 나타난다. 무분별한 표절 의혹 제기는 소송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창작자는 자신의 자식과 같은 작품을 살리기 위해서 저작권이라는 부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친고죄가 폐지된다고 하지만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무등록방식으로 권리가 생성되듯 온전히 자신의 권리이다. 그냥 감으로 이건 불법이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불법이고 침해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시각은 갖춰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고한 타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며 나아가 저작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다.


이번 표절 논란은 '그 정도 비슷하면 다 표절이냐?'는 의견과 '표절은 나빠!'라고 판결을 앞서는 리플로 논쟁이 되고 있다. 다른 것도 그렇듯이 이번 소송의 개별 사안에 대한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정에서 밝혀질 일이지 기사 한 두줄로 판단할 대상은 아니다.

다만 저작권 침해 중 표절이라는 행위에 대응하는 방식과 사회적 경각심을 다시 불러 일으켜 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회적 입장이 아니라 작품 자체로 판단되어 그 작품이 가장 잘 되는 길로 관계자들(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와 대중)이 힘을 모으는 것이 저작물의 천국 모습이다.


2007. 6. 18.
주 모씨

필자 주) '이곳 저곳'이란 표현에 대한 구차한 부연 설명-
작가가 창작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그 작품을 자기 품에 안고 평생을 살다가 죽으려고 쓴 것이 아니다. 만화작가라면 원고를 들고 이 출판사와 저 출판사로 다니며 연재의 기회를 찾으려고 하고 드라마 작가라면 이 제작사, 저 제작사 또는 방송사 또는 관계자들에게 원고를 들고 발품을 팔아 작품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 당연한 과정이 '이곳 저곳'이며 필자가 듣기로는 3곳이었다.
그런데 '이곳 저곳'이란 표현을 두고 이상한 해석을 하며 함부로 다뤘다는 식의 반응이 있다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다. 분쟁이 있다보니 상대를 공격하고자 별 수를 다 쓰겠지만 어거지는 부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물을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당연한 과정에 보안 운운한다면 다수의 작가들은 세콤(?)과 동행하기라도 해야하는 건지 세상 참.
좀 더 알아보고 주석을 달아야하겠지만 우선은 구차하고도 불필요하며 당연한 것임에도 부연 설명을 단 뒤, 알아봐야겠다.

2007. 7. 18
나 원 참, 주 모씨.

by 쥬피터 | 2007/06/18 14:27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jumosee.egloos.com/tb/351719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akachan at 2007/06/18 14:45
일본에서 일하면서 저작권에 대해 참 다르게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기가바이트라는 컴퓨터 부품 제조사의 일본 지사인 기가바이트 저팬에서 일본 유저 취향에 맞춰 미소녀 캐릭터가 그려진 부채를 제작해 사은품으로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이걸 대만의 본사에 제작 의뢰를 했고, 본사는 부채를 만들어서 일본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부채에 본사에서 그림과 기가바이트 로고만 넣고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을 누락했죠.(이건 대만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림 그린 사람 이름 따위 표기해주지 않는 게 그쪽 관행이니까요.) 그러자 기가바이트 저팬에서 수만 개의 부채에 전부 작가 저작권이 표시된 스티커를 직접 붙인 뒤에 배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스티커를 붙이는데 들어간 인건비가 부채 제작비보다 많이 들었을 겁니다.

또 다른 예로,
게임 내 스크린샷을 캡처해 보내는 이벤트를 진행할 때, 한국계 회사들은 그냥 스크린샷만 받습니다. 그러나 일본 회사들이 이런 이벤트를 진행할 때는 이벤트 공지 페이지 하단에 이미지를 캡처해서 반드시 그 안에 자기 회사의 저작권을 표기하고, 캡처한 사람의 이름 혹은 아이디를 써넣도록 안내를 하더군요. 그리고 이미지 툴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크린샷을 업데이트 하면서 저작권 표기를 넣을 수 있는 응모 시스템을 구축해 놓기도 합니다. 이게 한국인의 신경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일본에서는 이게 매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문제는 결국 일상 생활에서 배우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 아닌가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akachan at 2007/06/18 14:48
제 개인 블로그에도 쓴 글이지만, 올 해 초 일본은 떠들석하게 했던 '오후쿠로상 소동'도 일본의 저작권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http://kori2sal.innori.com/1325270

음반에 녹음하면서 곡 앞에 나레이션 넣었다고 작사가가 진노하고, 가수는 그걸 진정시키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쫓아다니는 모습이 참 부럽더군요. 게다가 모리 신이치라면 우리나라로 치면 나훈아 정도 되는 가수인데 말이죠.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7/06/18 14:54
akachan 님/오래전부터 일본 만화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그 노래의 원저작권자를 칸 옆에 표시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썼지요.
지재권은 앞으로 더 정밀하고 '이렇게까지?'하는 정도로 준수실태를 개선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저작권 법리 논쟁에서 '마우스에 잠시 드래그했을 때 발생하는 복제와 전송문제를 어찌할까?'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현재의 불법 복제와 전송보다 이미 10년은 앞서 가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문장에 저도 공감합니다. 남의 집 벽돌을 그냥 뽑아다 쓰는 것은 안된다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만 그 재산권 앞에 '지적'이라고 붙으면 잘 안보여서 그런지 아직도 인식은 낮습니다. 그게 바뀌어야 되겠죠.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7/06/18 14:57
예, 일본 저작권 인식은 한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최근 일본 모 게임사와의 분쟁이 살짝 있었는데 솔직히 제가 든 감정은 '뭘 저런 것까지 따지냐?'였지만 개념적으로 그들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자유무역협정을 미국 외에도 여러 나라와 할텐데 선진국들의 지재권 보호 수준을 따라가다 보면 가랭이 찢어질 수도 있지만 타의적으로라도 그 수준은 올라 가겠지요. 한국문화산업이 그 통에 어찌 될지는 또 따져봐야겠지만요--;
Commented by kts6677 at 2007/08/26 23:17
류경옥씨 사건은 그저 사기꾼의 행패에 지나지 않다 봅니다.
표절문제도 참 벼라별 인간이 다 끼는군요.
blog.daum.net/plagiarism 참고하시길.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7/08/27 11:42
kts6677 님/예, 가입하겠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