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15일
[만끽 #1] 만화를 즐기면서 죽이기
[아이큐 점프]가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함으로, 5대 신작 동시 스타트로 엄청난 변화를 보이며 격주간 호로 전환됐다. 표지의 매끌매끌한 감촉마저 달라보일 정도인데 딱 드는 느낌은 이제 '잡지 비싸다'는 소리는 설득력이 없다. 2,000원이 너무 싸다. 한창 만화매체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만화잡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잡지다.격주간호부터 칼럼을 연재하는데 이름 붙이기를 '만끽'이라 했다. '만끽'은 만화와 관련하여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쉽게 풀어쓰면서 독자들과 함께 만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는 코너로 두루뭉실하게 범위를 설정했다. 첫 회라 이미지보다 텍스트 분량이 많아 빡빡한 느낌이 든다. 본문을 좀 줄이자고 했으니 다음 회부터는 보기 편한 페이지로 가야할 것이나 어려운 것은 다른 부분이다. 중고생 독자이니 그에 맞는 눈 높이로 주제를 고르고 풀어야 한다. 교수에게 보여지는 보고서는 쉬워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쓰는 글은 만만치 않다. 교수의 수준은 대충 비슷한 무리들이지만 초등학생만 하더라도 2학년과 5학년은 전혀 다른 세대이다. 그러니 초등용이라는 기획 단행본도 사실은 그 중 한 학년을 정해서 포인트를 맞추게 된다. 그것이 보통은 4학년을 말한다.
여하튼 [만끽] 칼럼이다. 원고는 편집과정에서 일부 이미지가 다르며 아래 글은 이글루 포스팅 버전으로 전환했다. 본문의 논지는 같다.
[만화를 즐기면서 죽이기]
"불법 스캔만화는 만화작가를 죽이는 필살기"
만화책 없이 만화를 보다.
십년 전만 해도 만화를 본다는 말은 당연히 만화책을 본다는 것이었는데 요즘에는 책이 아니어도 만화를 볼 수 있다. 만화책 말고도 인터넷으로 보고 모바일과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으니 ‘넌 무엇으로 그 만화 봤냐?’라고 물어봐야 제대로 된 질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모으는 것도 전에는 사인이나 멋진 장면이 있는 페이지를 오려서 보관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몇 편의 만화를 CD나 파일로 가지고 있느냐 혹은 누가 먼저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리느냐로 경쟁하듯이 즐기고 있다. 더 나아가 좋아하는 작품을 새롭게 구성하고 대사도 바꿔서 새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인터넷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그림1, 2-모바일 만화)
즐겁지만 죽을 맛.
멋진 그림을 오려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만화를 스캔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 좋아하는 만화책을 가지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일 공유 사이트인 ‘그루그루’의 경우 만화 파일을 다운 받은 네티즌 중 최고 기록은 6,000개나 된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나온 모든 만화와 맞먹는 파일 수이다. 하지만 아무리 양이 많다고 해도 스캔 만화를 정상적으로 다운 받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은 만화를 즐기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식 출판되기 전의 만화를 먼저 올리거나 아니면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네티즌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즐기는 중에도 만화를 죽이는 놀이가 있다. 만화 전체를 직접 스캔하거나 공유 프로그램에서 자유롭게 다운 받아서 여럿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다시 전파하는 것은 그저 재미있을지 몰라도 만화는 죽을 맛이다. 잡지 연재만화를 스캔해서 올리고 이것이 인터넷에 퍼져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된다면 잡지도 안 팔리고 당연히 책을 만들기도 어렵다. 아주 간단하게 만화를 죽이는 방법이다. 물론 이 잡지를 보는 분들은 만화를 즐기는 독자임이 분명하다.(그림3-복제 자체도 불법)
혼자의 즐거움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명탐정 코난 올렸어요’라면서 자랑하는 글이나 ‘어디가면 만화 다운 받아요?’라고 묻는 것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것이 잘못이라고 아는 네티즌이 10명 중 6명이나 된다지만 그 잘못을 저지르는 네티즌도 10명 중 6명이라고 발표되어 있다. 불법 파일을 다운받거나 공유하는 이유는 무료이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10명 중 8명이 답변했다. 또한 불법 파일이나 스캔만화를 이용하는 네티즌 중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은 20명 중에 한 명 정도이다. 결국 불법 스캔만화를 돌려 보는 네티즌들이 돈을 벌려고 하지도 않고 무료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하는 행동이라지만 다른 사람의 돈을 뺏는다는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렇게 본다면 만화작가는 점점 만화가로 살기가 어렵고 만화를 그리지 못하게 된다. 만화잡지도 점점 줄어들고 결국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런 날이 먼 훗날이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멀지 않다. 단속이 심해지는 것이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그림4-힙합 작가의 19권 후기)
뭐라고 말해도 결과는 같다.
이렇게 만화 죽이는 행동을 하는 이들도 주장하는 것이 있다. 그 중에 조금이라도 찔리는 마음이 있는 네티즌은 ‘만화잡지에 연재되지 않는 만화들은 어떤 만화인지 미리 알 수도 없으니 스캔만화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네티즌들은 단순하게 ‘스캔만화로 보는 것이 편하다’라고 쉽게 말한다. 만화를 사서 보는 것보다 돈이 안 들고 쉽게 방에서 볼 수 있다는 편리함만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핑계거리를 찾는 네티즌은 불법 스캔만화가 아니라 ‘좋아하는 만화의 몇 장면을 올려놓은 것도 잘못이냐’며 싸움을 걸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네티즌들은 ‘일본 스캔만화만 보고 한국 만화는 안 보니까 우린 애국자다’라는 얼핏 그럴듯한 핑계도 만든다. 이러한 주장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주 말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말싸움이 반복된 것은 어느 정도 불법 스캔만화 단속의 시작이 매끄럽지 못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찔리는 네티즌의 변명처럼 더 쉽게 만화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부족한 상황이다. 또 중간의 용감무쌍하고 단순한 네티즌의 생각은 ‘공짜로 만화를 보라’고 지금까지 선전한 인터넷 서비스와 책을 사지 않고도 만화를 볼 수 있는 주변 환경이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핑계거리를 대는 네티즌들은 불법 스캔만화를 단속하는 입장들이 초기에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잘못도 있다. 몇 장면을 스캔해서 그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하는 것은 오히려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행위도 법적으로는 불법 행위에 포함되는 것이고 이것도 단속하는 듯이 알려진 것이 매끄럽지 못했다. 또한 일본만화를 불법 스캔으로 보는 것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떠드는 일본에 대한 복수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 만화를 번역해서 출판하는 회사는 한국의 회사이고 일본 만화를 그렇게 보면 일본 독자들이 우리 만화를 그렇게 볼 때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모든 주장을 들어 봐도 ‘만화를 죽이는 놀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넷파라치와 슈퍼맨
작년부터 인터넷에는 ‘넷파라치’라는 말이 생겼는데 연예인을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서 파는 ‘파파라치’를 빗대어 ‘인터넷 파파라치’라 부른다. 인터넷의 불법적인 행위를 신고하고 돈을 받는 이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영화, 음악, 글, 사진, 만화 등을 정당한 이용 요금을 내지 않고 다운 받거나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불법 스캔만화도 포함된다. 몇 년 전까지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남의 것을 그냥 가져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인터넷 분야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단속하기 시작하자 ‘하던 대로’ 퍼 오거나 다운 받던 네티즌들은 단속을 주관하는 관련 사이트에는 각종 항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중에 공유 사이트 운영자를 열렬한 만화 독자의 우상으로 생각하고 감싸는 글들도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사이트 운영자는 어느 정도 대단한 영웅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영웅이 만화를 죽이는 슈퍼맨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그림5-만화가협회 게시판의 네티즌 항의 사례)
만화 즐김이, 그리고 만화 필살기
앞으로 스캔만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 예고편 보듯이 만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볼 수 있는 곳이 준비되고 있다. 또한 중요한 몇 장면이나 주인공을 올려두고 만화를 서로 이야기하는 곳은 단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무조건 단속하지 않을 것이고 즐기는 것과 죽이는 것을 구별하여 만화 독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이 먼저 ‘만화 즐김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로 만화 죽이기를 하는 독자가 자주 쓰는 필살기 몇 가지를 아는 것도 즐기는 독자가 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첫째, 작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염장 지르기를 한다. 방법은 ‘샘, 빨리 올려 줘요, 다운 받게’라고 쓴다.
둘째, 사인회에 가서 책 대신 구운 CD에 사인해 달라고 내민다.
셋째, 팬클럽이라고 화실을 방문할 때 각자 몇 작품을 다운받아서 공유하고 있는지 파악해서 제일 많은 사람을 짱으로 뽑아서 기념 촬영을 요구한다.
넷째, 불법 스캔만화로 팬 클럽 카페를 만들어 작가를 초빙한다.
다섯째, 일본 만화만 불법 스캔한다고 ‘만화사랑’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만화작가, 그리고 만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쫑)
아이큐 점프 2005-28호
2005. 7. 15.
주 모씨.
# by | 2005/07/15 15:29 | 칼럼 | 트랙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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