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08일
최대한 옆으로 튼 앵글
예전 강원도 오지학교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으로 '사기'를 쳤다. 클릭하면 좀 더 사진이 커지니 참고하시고. 전교생이 5명이고 그나마 선생님의 자제가 2명인 산골 학교에 가기 위해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마지막엔 4WD 차량을 빌려야 했다. 산에서 뛰어다니는 네발 짐승 중 하나를 선생님과 학부형이 바베큐를 해 줘서 산적처럼 뜯었던 이 여행 중 둘째 날,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데 한 일행이 찍어준 사진이다. 아마 서른 정도였을 때.
한편 이번에 새로 연재하게 된 칼럼에서 필자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아주 간단히 '그림으로 가죠?'로 결론이 났다. 전에는 몇 번 사진을 찍고 선별하는 척이라도 하더니 이번에는 정말 예의상 '사진으로?'라며 딱 한 번 묻고는 곧바로 '캐리커처로 갑시다'로 결정. 사진이 영 안 받는다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는 현장이다.
그러니까 작년 봄이었든가? 아침 나절에 웬 가죽 점퍼 차림의 남자 셋이 불쑥 들어 왔다. 척 보면 이게 형사란 걸 알겠는데 만화방에 웬 형사? 보통은 동네 관공서틱한 옷차림의 남자들과 여자가 섞여서 계도니 단속이니 하고 나오긴 하는데 이런 차림의 경우란 특별 수배 기간에 야간불시검침 때나 봄직한 패션이고 페이스들이었다.
영화에 자주 보이는 '쯩 보여주기'는 역시 내 면상 가까이에 휙 붙여다 떨어지는 것으로 자신이 경찰이라고 밝혔고 그걸 다시 보자고 할 건덕지도 별로 없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 갔다. 이름하여 분리 진열 조사.
그런데 우리 가게는 청소년이 별로 오지도 않았지만 지역 여건상, 혹은 운영 방침상 고등학생까지는 받지를 않았다. 게다가 간행물윤리위원회나 칼럼에서 만화의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것에 대해서 반대는 커녕 오히려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이재석 작가와도 공감한 문제인데 작가가 어떤 수위로 만화를 그리던 그것이 성인 대상이라면 창작이나 심의에 문제될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유통 혹은 서점(만화방과 대여점 포함)에서 청소년에게 보여 주거나 파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유통의 문제로 만화를 걸고 넘어진 우리 사회의 법적 행위는 참으로 이해불가의 영역이다. 이런 사고에 의해서 분리 진열은 당연히 기본으로 하는 가게이다. 또한 새롭게 만화방을 하거나 분리 진열의 방법을 고민하는 다른 만화방 운영자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둘러 보고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저 대본소용 만화만 작가별로 진열하던 만화가게가 일반 코믹스만화까지 취급하게 된 이후에 분리진열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복잡함과 현실적 허점은 다음 기회가 있다면 정리하기로 하고.
여햐튼 그런 가게에 왔으니 이 세 사람의 형사도 대략 난감했나보다. 보통의 가게에 가면 쓱 둘러봐도 바로 잘못 진열된 만화를 뽑아 낼 수 있었는데 25분이 지나도록 찾지를 못한 것이다. 속으로 '븅신들'이라며 혀를 차고 있는데 아, 젠장, 이 무슨 로또 당첨자의 표정이란 말인가? 형사 하나가 순정만화와 코믹스 만화의 구석진 경계에서 4권짜리 만화가 일반 진열장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름하여 [뉴욕 뉴욕].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이 일반 진열장에 있으니 당연히 현행범이다. 자술서를 쓰라고 한다. 4만 권이 넘는 가게에서 30분을 뒤져서 나온 1종 4권의 위반은 지금까지의 단속 결과로 봐서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므로 부담없이 자인서를 주고 잊어 버렸다. 그 날 오후 주변의 만화방에 연락을 해 봤다. 이런 경우 지역 단속이므로 다른 가게들도 쭉 돌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단속을 받지 않았다. 순간 뭔가 찜찜하면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으나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1주 뒤 연락이 왔다. 경찰서로 오란다. 갔더니 조서를 꾸미는데 경찰도 그 단속 결과를 보고 '뭐 이런 걸 넘기지?'라는 말을 하면서 서류를 꾸몄다. 그래서 왜 지역 단속도 아닌 개별 단속을 했냐고 하니까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확인한 결과, 서울지방경찰청의 단속이었고 내 가게만 콕 찝어서 나온 것이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나온 말이 이런 경우는 무작위 선별 단속일 수도 있지만 이번 건은 신고에 의한 단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청소년 보호법을 위반하는 악덕업주로 찔렀다는 이야기다. 허 참.
처리도 일사천리라, 또 1주일 뒤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폼나는 서울지방법원이란다. 출두 날자에 안내 데스크에 담당 검사 이름을 대면 안내가 검사실로 연락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출입증 목거리를 준다. 그것을 차고 검사실로 올라간다. 검사 책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두 개의 책상이 'ㄷ'자 형태로 있다. 검사 옆에는 보조가 앉아 있고 1차 조서 및 심문은 보조가 한다. 다행인 것은 이 보조하는 젊은 친구가 신림동 고시촌 출신이고 우연히도 [뉴욕 뉴욕]의 작가 마리모 라가와의 팬이었다는 것.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이 정도 사안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라며 편안하게 말하기에 '그럼 그렇지'라고 술술 진술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서류를 작성하고 확인한 뒤에 담당 검사에게 서류가 넘겨지고 옆 의자로 나도 옮겨 갔다.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검사 측 주장은 '그래서 위법 안했다는 거냐? 자인서도 있고 위법 한건 맞지?'라는 원론이었고 내 주장은 '그게 청소년에게 성인용 만화를 보여주려는 악덕 업주의 고의성이 있는 위반이냐?'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검사란 사람이 신림동에서 전혀 만화도 안 본 모양이다. 젠장.
이후 3차례 소환과 공방이 있었다. 검사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붙으려면 붙고 아니면 그냥 벌금형으로 받던가 그건 당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친절(?)하게 조언했다. 결국 스스로 변론하기로 하고 페이퍼 작업에 들어 갔다. 집 사람은 무슨 논문 쓰냐며 물었지만. 청소년 보호법의 취지와 시행에 대한 설명, 해당 업소를 운영하면서 분리 진열을 철저히 했다는 근거, 청소년 보호법의 실제 적용 및 만화대본업소의 개선에 대한 그간의 결과물들, 이번 단속 내용과 고의성의 연관에 대한 반박 등을 대고 증빙 자료를 붙이니 60쪽 분량이 나왔다. 물론 증빙 자료가 붙어서 그런 것이지만.
3차 소환 때 이 문서를 첨부하고 벌금형이든 뭐든 유죄로 처리한다면 불복하고 항소한다고 밝혔다. 웃기는 것은 1차 소환 때 오전에는 간행물 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보호법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악덕 업주로 검사 앞에 앉았던 기억이다. 같은 날 오전에는 양지에서 오후에는 어둠의 자식이 된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은 한 달이 지난 뒤에 날아든 우편물 하나로 종결됐다. 10번 정도 접힌 인쇄물을 펼치니 양식 외에 기록된 내용이라고는 사건번호와 처리 결과였다. 무혐의 처분.
이후에 어떤 입장이 내 가게를 신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잡혔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라 덮어뒀다. 문제는 이러한 단속이 다시 나올 때 현행법과 검사의 주장대로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단속감이라는 것이다. 보유 권수의 0.1% 미만(내 경우는 40권)이라면 고의성이 없다고 본다는 판례가 만화에 있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자유롭게 선별해서 보는 현재의 만화방 운영 시스템에서는 재수없으면(?) 다른 자리로 책이 이동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허점이 있는 현실에서 계속 만화방을 한다는 것이 싫어졌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 어떤 만화방 주인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청소년에게 과하다 싶은 만화를 성인용에 옮겼는데 이것도 '분리진열' 자체 개념에 위배되므로 고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재판부가 이런 경우는 오히려 '분리 진열의 본래적 목적에 부합한 것이므로 기각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판결이 나기까지 해당 가게가 망가진 것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다만 뉴스에 서너 줄 게재됐을 뿐이다.
그 봄이 지니고 여름 초입에 바로 가게를 관 뒀다. 만화판 사람들 중에 버리지 못하지만 보관이 어려운 만화들을 내게 맡겼던 이들이있었는데 그 분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책을 옮길 곳이 마땅치 않았고 결국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출간되거나 중고시장에서 발품이라도 팔면 구할 가능성이 있는 책은 전부 제외했다. 지금 구할 수 없게 된 만화만 선별해서 우선 옮길 수밖에. 그래서 현재 내 방은 창문도 없고 낮과 밤이 구별되지 않는다.
여하튼 이런 해프닝으로 난 만화가게를 하지 않는다. 앞으로 다시 연다면 만화책이 있는 개인 공간으로 열겠지만 유상대본 혹은 대여가 아니니 분리진열은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다. 청소년 보호법이 개인책장까지 단속하지는 않으니까. 아주 빤쮸 만화만 중간 높이에 쫙 깔던가 찔꺽 만화만 손이 닿는 범위로 진열하던가 할테다. [아즈망가]와 [아즈망가 배틀로얄]을 같이 진열하던가 [슬램덩크]와 [꽃보다 백호]를 함께 놓던가 내 맘대로 할 거다. 젠장.
2005. 7. 8.
쓰다가 다시 열받는 주 모씨.
# by | 2005/07/08 14:35 | 사적만담 | 트랙백 | 덧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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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그보다 심했던 것은 저의 형님 동창인데 이름인 '인현'형이었지요. 그 형 친구들이 마음에 안 드는 여선생님 골탕 먹이려고 그 이름을 크게 불렀다지요. 아주 난감한 사고들이 잦아다고 합니다. 켁!
그나저나 심해졌군요. 저도 만화방에서 2년정도 일을 해봐서 아는데, 그 분들 좀 집요하지요. 알면서 말하면 미워하지도 않지;;
그래도 여자가 경'하'인 경우는 드문거 같아요. 신기하게도.
부끄럽게시리 이런 분에게 비교하시다니 에구구구, 쿨럭~입니다.
뭐 괴물도 아닌 분에게 '괴물'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rhlanf'로 쓰는 것이 예의 같아서요, 파하핫!
그런 난감하고 참..그런 일을 당하셨군요,
에공....
이젠 그래도 좀 시간이 지났으니까..
전화위복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만한 어떤일이 있었거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