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06일
링크도 거절하는 외눈박이 저작권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는 키워드는 ‘떨녀’나 ‘군대’처럼 특정 사건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저작권’이란 재미 없는 단어도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단어가 계속 오르내리는 것은 저작권법 적용을 강화하겠다는 입법 주체와 어설픈 저작권리 만능주의자들의 외눈박이 째려보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추가 글 : 링크 제한에 있어서 몰상식한 직접링크의 사례는 제재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만화가가 매일 한 컷 만화를 업데이트 하는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네티즌 A가 그것을 자기의 홈에다 매일 직접링크로 정리하여 연결해 둔다고 하자. 이럴 경우 일반 네티즌은 꼭 만화가의 홈으로 들어가지 않고 A의 홈에만 들락 거리면 된다. 또한 특정 전문분야의 정보나 뉴스를 매일 업데이트하는 사이트의 모든 것을 다른 네티즌이 직접링크로 자신의 사이트에 정리하는 것도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번 언론사의 링크 금지란 것에서 자사의 기사를 대부분 옮겨 놓고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링크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의 제재가 네티즌이 웹 서핑 중에 관심 있는 기사를 자신의 홈에 작성한 글에 링크 표시하는 것처럼 인터넷 링크의 순기능까지 포괄 제재하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이다.)
저작권이란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문예, 학술, 미술, 음악의 폼나는 것에서부터 유치원 아이가 종이 쪼가리에 그린 낙서도 저작물에 포함된다. 저작 방식의 다양화와 인식의 변화로 저작권도 복잡하게 규정되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유명한 조각이야 누가 들고 갈 수 없으므로 그 자체는 소유권의 문제이지만 그 조각을 보고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저작권의 문제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시험 시간에 다른 사람의 답안을 보고 자신의 시험답안에 표시하는 것이 잘못이듯 다른 사람의 창작적 표현을 대가 없이 이용하는 것도 분명한 잘못이다. 이 때 다른 이의 창작적 표현이 피와 땀을 쏟았든 술 먹고 남의 집 담벼락에 휘갈긴 오줌의 사진이든 질적 수준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그것은 그 사람의 것이다. 결국 저작권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의 다양한 결과물들을 다른 머리가 이용하는 것에 대한 권리이니 당연히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명이 발달하는 오늘보다 내일, 그리고 모레에 더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이용하는 권리에 대한 규정은 점점 가지를 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없었던 생각의 현실적 형태가 자꾸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링크이다. 예전에야 강하 훈련 받을 때 생명줄 거는 것이 링크인 줄 알았지 인터넷에서 다른 사이트의 콘텐츠를 걸 때 링크라고 할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니 그에 대한 규정이 필요한 것(까지는)은 공감한다. 그런데 그 규정의 방향이 ‘전부 하지마’라니 이 무슨 하마 지랄하는 소리인가?
무슨 다크 오타쿠가 자신이 모아둔 빤쮸 이미지 컷을 다른 이가 공유하지 못하도록 링크 금지라고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만들어진 신문이라는 저작물적 형태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링크가 싫으면 그냥 종이신문만 집집마다 넣어 줄 것이지 사이트는 왜 만들었고 그 기사들은 왜 로그인 하지 않아도 볼 수 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링크 금지라는 것이 자사의 사이트에 직접 와서 보라는 속셈일 수도 있지만 링크가 홍보의 다른 효과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 자세는 전형적인 외눈박이의 세상 인식이다.
문제가 된 링크의 경우는 몇 가지 방법으로 분류된다.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를 예로 들자면 해당 신문사 홈 페이지 주소를 거는 단순링크, 해당 신문의 특정 기사 페이지를 연결하는 직접링크, 자신의 사이트 창 안에 걸고자 하는 화면이 포함되는 프레이밍 링크, 주로 멀티미디어인 경우 자신의 사이트 콘텐츠에 해당 자료를 링크시키는 임베디드 링크로 나뉜다.
링크를 금지한다는 발상은 저작권법상 금지된 ‘복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현재 저작권법은 상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직접 링크하는 것만으로도 유효한 불법 복제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올해 열렸던 국제 저작권 포럼에서 벌어진 논란 중에 ‘복제’의 범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복제 중에 상용 소프트웨어는 기본이고 타인의 이미지나 멀티미디어, 텍스트를 무단 복제하는 것도 물론 불법이라는 인식이 공유된 이후다. 그런데 이 날의 논란은 마우스로 긁어서 복사하는 과정의 복제 인정 여부였다. 링크를 하든 뭘 하든 네티즌들은 마우스 우측을 클릭하여 자주 복사를 한다. 이때 어디에 붙이지도 않았지만 이미 복제 행위는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복제는 불법이라는 기본 원칙에 의해 신문기사의 직접링크는 불법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다시 링크 문제로 돌아가서, 신문사의 링크 금지는 대상 기사나 이미지를 직접 연결하는 직접링크만이 아니라 신문사 홈페이지를 소개하는 단순링크도 포함하고 있는데 바퀴벌레 잡으려다 63빌딩 불태우는 격이다. 저작권법의 목적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저작권법의 개정은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의 이득에 치우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 비난은 저작권자의 이득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작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즉, 저작권은 저작물의 활발한 창작을 돕기 위한 장치로 출발한 것이지 저작권자나 저작인접권자 또는 저작물 이용자 어느 한 쪽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된 연예인 사진 펌 금지를 보자.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이 생명이다. 그러자면 돈 쳐 발라서 자기 사진을 찍고 가능하면 많은 곳에 자신을 알리고자 한다. 신문사에 한 장의 사진이라도 실으려 하고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이트에 한 줄이라도 자기 이야기가 오르기를 갈구한다. 마찬가지로 신문사의 기사 자체는 기자와 언론사에 저작권이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기자와 신문사 사장 둘만 오붓하게 보려는 저작물이 아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기사를 봐 주길 바라고 작성되는 저작물이다. 그리고 신문이란 하루만 지나면 구문이다. 무슨 영화처럼 계속 이용을 제한해야 하는 대상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 기사를 직접 베껴서 쓰는 것도 아니고, 그 기사를 직접 옮겨와서 신문사에는 발길도 끊어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신문사로 여러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과 같은 단순링크를 막는다는 것은 무슨 심뽀란 말인가? 신문 기사의 상업적 목적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단순링크와 직접링크까지는 ‘회사 홍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므로 이에 상장과 부상을 수여함’은 아니더라도 감지덕지할 상황이 아니던가?
정리하자면 저작권이 단순하게 복제 금지라고 개념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저작물마다 다른 목적을 감안해야 옳다. 예를 들면 저작물인 영화 예고편 동영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의 저작권자를 영화감독이라고 하자.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창작물인 예고편의 목적은 여러 사람이 그것을 보고 영화를 많이 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고편이 있는 독점 사이트에서만 꼭 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구 퍼 날라서 한 사람이라도 더 봐 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법적으로는 영화감독과 그 동영상을 독점 서비스하는 특정 사이트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해당 저작물의 목적에 의한다면 그냥 불법 복제라도 해서 마구 봐 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개념적으로 ‘링크는 금지’라거나 ‘펌 금지’라는 것은 득도 있고 실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결국 법으로 특정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은 개념을 규정하고 실제적 적용은 각각의 저작권자의 머리에 있는 생각에 따르면 된다. 즉, ‘복제는 금지’라고 모두 불법으로 처벌할 것이 아니라 복제를 금지한다는 사전 의사가 명시된 저작물의 경우에 처벌하는 것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의 방송사에서 내보낸 ‘재패니메이션’ 특집 다큐를 허락했는데 이를 복제하여 DVD로 만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해당 동영상을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동영상 예고편을 인터넷에 올릴 때 복제를 금하거나 링크를 금지할 마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동영상 예고편을 편집하여 다른 창작물인 것처럼 다시 만들어서 사기를 친다면 그것은 단순 복제를 넘은 범죄행위로 처벌받아야 한다.
저작물의 형태는 이제 사람의 수에 대충 곱하기 천(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 가지는 넘겠지만 아무 생각 없는 뇌도 가끔 보이므로)을 한 수량이다. 이것을 법으로 일괄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급적 법은 개념과 범위의 정립을 하되 개별 저작물의 이용 형태(링크를 하거나 말거나)는 철저히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옳다. 단 하나의 개념과 범위인 ‘링크’의 경우도 각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링크 문제가 어떤 범위로 논란이 되고 진전될 지 알 수 없으나 저작권이 창작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5. 7. 6.
주 모씨.
(추가 글 : 링크 제한에 있어서 몰상식한 직접링크의 사례는 제재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만화가가 매일 한 컷 만화를 업데이트 하는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하자. 그런데 다른 네티즌 A가 그것을 자기의 홈에다 매일 직접링크로 정리하여 연결해 둔다고 하자. 이럴 경우 일반 네티즌은 꼭 만화가의 홈으로 들어가지 않고 A의 홈에만 들락 거리면 된다. 또한 특정 전문분야의 정보나 뉴스를 매일 업데이트하는 사이트의 모든 것을 다른 네티즌이 직접링크로 자신의 사이트에 정리하는 것도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번 언론사의 링크 금지란 것에서 자사의 기사를 대부분 옮겨 놓고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링크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의 제재가 네티즌이 웹 서핑 중에 관심 있는 기사를 자신의 홈에 작성한 글에 링크 표시하는 것처럼 인터넷 링크의 순기능까지 포괄 제재하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이다.)
저작권이란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문예, 학술, 미술, 음악의 폼나는 것에서부터 유치원 아이가 종이 쪼가리에 그린 낙서도 저작물에 포함된다. 저작 방식의 다양화와 인식의 변화로 저작권도 복잡하게 규정되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유명한 조각이야 누가 들고 갈 수 없으므로 그 자체는 소유권의 문제이지만 그 조각을 보고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저작권의 문제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시험 시간에 다른 사람의 답안을 보고 자신의 시험답안에 표시하는 것이 잘못이듯 다른 사람의 창작적 표현을 대가 없이 이용하는 것도 분명한 잘못이다. 이 때 다른 이의 창작적 표현이 피와 땀을 쏟았든 술 먹고 남의 집 담벼락에 휘갈긴 오줌의 사진이든 질적 수준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그것은 그 사람의 것이다. 결국 저작권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의 다양한 결과물들을 다른 머리가 이용하는 것에 대한 권리이니 당연히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명이 발달하는 오늘보다 내일, 그리고 모레에 더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이용하는 권리에 대한 규정은 점점 가지를 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없었던 생각의 현실적 형태가 자꾸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링크이다. 예전에야 강하 훈련 받을 때 생명줄 거는 것이 링크인 줄 알았지 인터넷에서 다른 사이트의 콘텐츠를 걸 때 링크라고 할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니 그에 대한 규정이 필요한 것(까지는)은 공감한다. 그런데 그 규정의 방향이 ‘전부 하지마’라니 이 무슨 하마 지랄하는 소리인가?

무슨 다크 오타쿠가 자신이 모아둔 빤쮸 이미지 컷을 다른 이가 공유하지 못하도록 링크 금지라고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만들어진 신문이라는 저작물적 형태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링크가 싫으면 그냥 종이신문만 집집마다 넣어 줄 것이지 사이트는 왜 만들었고 그 기사들은 왜 로그인 하지 않아도 볼 수 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링크 금지라는 것이 자사의 사이트에 직접 와서 보라는 속셈일 수도 있지만 링크가 홍보의 다른 효과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 자세는 전형적인 외눈박이의 세상 인식이다.
문제가 된 링크의 경우는 몇 가지 방법으로 분류된다.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를 예로 들자면 해당 신문사 홈 페이지 주소를 거는 단순링크, 해당 신문의 특정 기사 페이지를 연결하는 직접링크, 자신의 사이트 창 안에 걸고자 하는 화면이 포함되는 프레이밍 링크, 주로 멀티미디어인 경우 자신의 사이트 콘텐츠에 해당 자료를 링크시키는 임베디드 링크로 나뉜다.
링크를 금지한다는 발상은 저작권법상 금지된 ‘복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현재 저작권법은 상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직접 링크하는 것만으로도 유효한 불법 복제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올해 열렸던 국제 저작권 포럼에서 벌어진 논란 중에 ‘복제’의 범위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복제 중에 상용 소프트웨어는 기본이고 타인의 이미지나 멀티미디어, 텍스트를 무단 복제하는 것도 물론 불법이라는 인식이 공유된 이후다. 그런데 이 날의 논란은 마우스로 긁어서 복사하는 과정의 복제 인정 여부였다. 링크를 하든 뭘 하든 네티즌들은 마우스 우측을 클릭하여 자주 복사를 한다. 이때 어디에 붙이지도 않았지만 이미 복제 행위는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복제는 불법이라는 기본 원칙에 의해 신문기사의 직접링크는 불법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다시 링크 문제로 돌아가서, 신문사의 링크 금지는 대상 기사나 이미지를 직접 연결하는 직접링크만이 아니라 신문사 홈페이지를 소개하는 단순링크도 포함하고 있는데 바퀴벌레 잡으려다 63빌딩 불태우는 격이다. 저작권법의 목적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저작권법의 개정은 저작권자 또는 저작인접권자의 이득에 치우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 비난은 저작권자의 이득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작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즉, 저작권은 저작물의 활발한 창작을 돕기 위한 장치로 출발한 것이지 저작권자나 저작인접권자 또는 저작물 이용자 어느 한 쪽의 이득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된 연예인 사진 펌 금지를 보자.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이 생명이다. 그러자면 돈 쳐 발라서 자기 사진을 찍고 가능하면 많은 곳에 자신을 알리고자 한다. 신문사에 한 장의 사진이라도 실으려 하고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이는 사이트에 한 줄이라도 자기 이야기가 오르기를 갈구한다. 마찬가지로 신문사의 기사 자체는 기자와 언론사에 저작권이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기자와 신문사 사장 둘만 오붓하게 보려는 저작물이 아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기사를 봐 주길 바라고 작성되는 저작물이다. 그리고 신문이란 하루만 지나면 구문이다. 무슨 영화처럼 계속 이용을 제한해야 하는 대상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 기사를 직접 베껴서 쓰는 것도 아니고, 그 기사를 직접 옮겨와서 신문사에는 발길도 끊어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신문사로 여러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과 같은 단순링크를 막는다는 것은 무슨 심뽀란 말인가? 신문 기사의 상업적 목적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단순링크와 직접링크까지는 ‘회사 홍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므로 이에 상장과 부상을 수여함’은 아니더라도 감지덕지할 상황이 아니던가?
정리하자면 저작권이 단순하게 복제 금지라고 개념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저작물마다 다른 목적을 감안해야 옳다. 예를 들면 저작물인 영화 예고편 동영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의 저작권자를 영화감독이라고 하자.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창작물인 예고편의 목적은 여러 사람이 그것을 보고 영화를 많이 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고편이 있는 독점 사이트에서만 꼭 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구 퍼 날라서 한 사람이라도 더 봐 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법적으로는 영화감독과 그 동영상을 독점 서비스하는 특정 사이트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지만 해당 저작물의 목적에 의한다면 그냥 불법 복제라도 해서 마구 봐 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개념적으로 ‘링크는 금지’라거나 ‘펌 금지’라는 것은 득도 있고 실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결국 법으로 특정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은 개념을 규정하고 실제적 적용은 각각의 저작권자의 머리에 있는 생각에 따르면 된다. 즉, ‘복제는 금지’라고 모두 불법으로 처벌할 것이 아니라 복제를 금지한다는 사전 의사가 명시된 저작물의 경우에 처벌하는 것이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국의 방송사에서 내보낸 ‘재패니메이션’ 특집 다큐를 허락했는데 이를 복제하여 DVD로 만드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해당 동영상을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동영상 예고편을 인터넷에 올릴 때 복제를 금하거나 링크를 금지할 마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동영상 예고편을 편집하여 다른 창작물인 것처럼 다시 만들어서 사기를 친다면 그것은 단순 복제를 넘은 범죄행위로 처벌받아야 한다.
저작물의 형태는 이제 사람의 수에 대충 곱하기 천(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 가지는 넘겠지만 아무 생각 없는 뇌도 가끔 보이므로)을 한 수량이다. 이것을 법으로 일괄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급적 법은 개념과 범위의 정립을 하되 개별 저작물의 이용 형태(링크를 하거나 말거나)는 철저히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옳다. 단 하나의 개념과 범위인 ‘링크’의 경우도 각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링크 문제가 어떤 범위로 논란이 되고 진전될 지 알 수 없으나 저작권이 창작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5. 7. 6.
주 모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