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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높이와 교권의 상관관계

몇 년 전 문득, '스승님' 혹은 '선생님'에 대한 한토막 단상이 스쳐갔다.

최근 대학 교수, 학교 선생의 부정적 사건들이 보도되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느 시기, 시대에나 스승의 잘못은 일반인의 그것보다 몇 배나 큰 파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선생' 혹은 '스승'은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는 도덕적 기준에 의해서이다.

지금이야 교사 혹은 선생님으로 호칭하지만 예전에는 스승이었고 훈장이었다. 한옥의 온돌에 훈장은 양반 자세로 앉고 서동들은 무릎을 구부려 앉는다. 그렇게 스승은 학문을 전해주고 인생을 가르쳤다. 자잘한 잘못에도 목침 위에 올라 종아리를 걷고 매를 맞았고 스승은 그 회초리 흔적대신 가슴 안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잘못을 기억해 둔다. 서동들은 종아리를 맞을 때야 아파서 훌쩍 거리기도 하지만 그 교육은 나이가 들어도 교훈을 남긴다. 80세가 넘은 부친의 회초리가 전혀 아프지 않아서 속으로 우는 흰머리 아들이 된다. 이렇게 서동과 스승이 같은 온돌 바닥에서 같은 높이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던 그 시대에서는 교권은 곧 부권이자 왕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고 일본의 강점기를 맞아 훈장은 교사로 변환되기 시작한다. 회초리 대신 '닛뽄도'를 차고 온돌 바닥이 아닌 교단으로 한 걸음 올라갔다. 칠판에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에게 처음 등을 보이기 시작한 이 제도는 언제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훈육을 했던 훈장의 시선이 일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교육 과목이 늘어나고 교육 공간은 더 확대됐지만 스승은 교사로 불렸고, 교권의 높이는 외형적으로 교단만큼 한 뼘이 올라갔다. 이 시대의 교권 역시 부권이자 왕권이었지만 그것은 우러나온 마음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한 권위이다.

오늘 날의 한국 교단은 특히 대학 강단을 중심으로 계단을 올라야 할 정도로 높아졌다. 서동들 대신 머리큰 대학생을 가르치긴 하지만 이제는 작은 소리는 물론 큰 소리로도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마이크가 필수인 현장이다. 자신이 가르치고 자신에게 삶을 배우는 학생들은 더이상 개인적인 앎이 아니라 출석부의 이름으로 알게 된다. 뉘 집 둘째 자제라거나 멸치를 싫어한다는 등의 시시콜콜하지만 정감 있는 정보들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다.

시대적으로, 혹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교단의 높이는 점점 더 높아가고 스승과 제자의 눈은 점점 더 멀어진다. 반면에 교단의 높이가 높아질 수록 교권은 아버지와 왕에게서 밀려난 지 오래다. 아버지와 왕의 권위란 것 조차 지금 남아 있지 않으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셋의 권위 상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엄한 것 외에는 할 줄 모르던 옛날의 아버지 상에서 지금은 아이를 무등 태우고 살을 부비고 더 가까이 다가섰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만큼 그 어깨의 그림자가 크지 않다. 하늘이 내린 왕이시기에 모든 백성의 아버지였던 왕은 이제 그 백성이 스스로 뽑는 자리인지라 더더욱 존경과 권위를 지녀야 하겠지만 실상은 호칭도 없이 그저 옆 사람 이름 부르듯 불려지고 있다. 스승은 앉아 있을 때보다 거의 1미터는 위로 올라간 교단에 섰지만 오히려 스승의 그림자는 더 발에 밟히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권위의 소멸에 대한 시각이 주관적인 시각일 수도 있다. 스승이 되어 봤고 아버지가 됐고 왕과 비슷한 세대를 바라보는 나의 늙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게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을, 그리고 나를, 그리고 대통령을 하늘과 비슷한 존재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그럴수도 있겠지. 어쩌면 나 혼자 스승을 잊어 버리고 아버지를 잃어 버리고 왕을 업수이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오늘에서, 그래도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교단이 좀 더 낮아지기를, 아버지의 어깨가 좀 더 넓어지기를, 왕의 엄위함이 좀 더 내면적이기를.

2005. 7. 1.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07/01 21:39 | 만화말고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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