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6월 29일
고르바쵸프와 쵸코 파이
1991년, 제주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쵸프 내외가 제주를 방문한 것이다. 서귀포 최고급 호텔에서 한 밤중에 만찬한다고 외교 관례상 찜찜한 일정이었지만 당시 노 대통령이 포장한 북방정책 바람을 타고 언론은 아주 난리를 부렸다. 당시 제주시에서 살던 나는 방문 이후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듣게 됐는데 오늘 러시아 쵸코 파이 열풍의 기사를 보니 기억이 새롭다. 그 에피소드가 사실인지는 수행한 것이 아니므로 확인 불가--;;
한 밤 중에 만찬이라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잠 잔 다음 날, 정상회담을 하는 시간에 영부인 둘이 호텔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해변이고 경치도 좋으니 그냥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아주 멋진 풍광이 나온다. 러시아의 추위에 쩔었던 영부인이 제주 남단의 바닷가가 오죽 좋았을지는 보지 않아도 불문가지.
이 산책로였던 해안도로에는 제주 할망 어르신들이 좌판을 벌리고 물건을 팔기도 한다. 경호원과 수행 비서, 관련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따라 나선 이 산책 중에 라이사 여사가 이 할머니 좌판에 관심을 보였다. 제주라고 해서 길 가의 좌판이 다 해산물만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라 이 할망의 상품은 컵라면과 쵸코 파이 같은 먹거리였다. 그 중 관심을 쏟은 것은 컵라면이었는데...
문제는 초장부터 발생했다. 라이사 여사가 러시아 말로 물으면 그것을 통역이 한국말로 바꾼다. 그러면 이 할망이 뭐랜 뭐랜 곤다.(='뭐뭐라고 말한다') 이 할망이 거의 모슬포 토박이 사투리로 말씀을 하시니 통역이 알아 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제주 방언을 아는 지역 고위 인사가 그 말을 표준말로 바꿔서 통역해 준다. 통역이 그것을 듣고 다시 러시아 말로 라이사 여사에게 해 주고... 다시 라이사 여사가 말하면 한국말로, 할망이 말하면 표준말과 러시아 말로 대화를 이어간다.
옆이 있던 김옥숙 여사도 대화에 참여했겠지만 제주 오리지널 할망의 토속적 대화에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을 터. 어쨌든 그 날의 대화 주제는 '저것(컵라면)이 뭐냐?'는 것이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금새 먹을 수 있는 상품이라는 말에 당시 러시아 경제 사정도 바닥인 상태에서 영부인 라이사 여사의 관심은 상당히 높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영부인 김 여사님이 혼쾌히 컵 라면 한 박스를 증정하기로 했는데, 이 제주 할망이 대한민국의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다.
보통 선거 기간에 시장에 들려 물건을 사는 정치인들은 꼭 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고 돈을 지불하면서 서민인척 한다. 옆에 카메라 기자라도 있으면 쌀도 만져보고 나물도 들어보고 별 짓 다 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가게 혹은 좌판에 들려 뭐라도 살라치면 일반적인 국민들의 감정상 화면에 웃으면서 돈을 안받고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날의 해프닝은 영부인이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나는 것이다.
컵라면을 사 준다는 영부인의 말을 통역이 전해줬고 이 할망도 들었다. 옆에 있는 보좌관과 통역, 수행비서, 고위 관련 공무원 중 누구라도 얼른 지갑을 열어서 대금을 치뤘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나 서로가 미루다가 아무도 지갑을 열지 않고 컵라면 박스만 들었다 내렸다 하더니 라이사 여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때 우리의 멋진 제주 할망이 말한다.
"0000원 인디양, 강 0000원만 줍서"
아하하~ 당시 정상회담에서 엄청나게 퍼주기로 한 돈을 생각하면 난 이 할머니 말이 더 통쾌하다. 당시 퍼준 돈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난 뒤에 돈 빌려 주고도 계속 빌빌 졸라서 결국 고철하고 쓰다 남은 물건으로 받는다더니 그나마 다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가 제주 할망의 맘을 반이라도 닮아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기본 원칙을 제대로 따라야 한다. 사진 한방 멋있게 찍으려고 국민 혈세를 퍼 주는 것은 충분한 명분과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 이득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하튼 그 때 퍼준 물건 중에 돈 말고는 컵라면과 함께 '쵸코 파이'가 있었다. 지금 기사가 나오는 것이 조금 의외지만 러시아에서 오리온 쵸코 파이는 짝퉁 시장의 등장을 유발할 정도로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상품이지만 우리 것이 외국에서 호평받는다는 것은 늘 즐거운 소식이다.
추신)
제주 이야기를 하다보면 친구들이 꼭 물어 본다.
친구 : "얌마, 제주도 말 좀 해 봐라."
나 : "골맨 알아지쿠가?"
2005. 6. 29.
제주 사랑 주 모씨.
한 밤 중에 만찬이라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잠 잔 다음 날, 정상회담을 하는 시간에 영부인 둘이 호텔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해변이고 경치도 좋으니 그냥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아주 멋진 풍광이 나온다. 러시아의 추위에 쩔었던 영부인이 제주 남단의 바닷가가 오죽 좋았을지는 보지 않아도 불문가지.
이 산책로였던 해안도로에는 제주 할망 어르신들이 좌판을 벌리고 물건을 팔기도 한다. 경호원과 수행 비서, 관련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따라 나선 이 산책 중에 라이사 여사가 이 할머니 좌판에 관심을 보였다. 제주라고 해서 길 가의 좌판이 다 해산물만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라 이 할망의 상품은 컵라면과 쵸코 파이 같은 먹거리였다. 그 중 관심을 쏟은 것은 컵라면이었는데...
문제는 초장부터 발생했다. 라이사 여사가 러시아 말로 물으면 그것을 통역이 한국말로 바꾼다. 그러면 이 할망이 뭐랜 뭐랜 곤다.(='뭐뭐라고 말한다') 이 할망이 거의 모슬포 토박이 사투리로 말씀을 하시니 통역이 알아 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제주 방언을 아는 지역 고위 인사가 그 말을 표준말로 바꿔서 통역해 준다. 통역이 그것을 듣고 다시 러시아 말로 라이사 여사에게 해 주고... 다시 라이사 여사가 말하면 한국말로, 할망이 말하면 표준말과 러시아 말로 대화를 이어간다.
옆이 있던 김옥숙 여사도 대화에 참여했겠지만 제주 오리지널 할망의 토속적 대화에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을 터. 어쨌든 그 날의 대화 주제는 '저것(컵라면)이 뭐냐?'는 것이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금새 먹을 수 있는 상품이라는 말에 당시 러시아 경제 사정도 바닥인 상태에서 영부인 라이사 여사의 관심은 상당히 높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영부인 김 여사님이 혼쾌히 컵 라면 한 박스를 증정하기로 했는데, 이 제주 할망이 대한민국의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다.
보통 선거 기간에 시장에 들려 물건을 사는 정치인들은 꼭 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고 돈을 지불하면서 서민인척 한다. 옆에 카메라 기자라도 있으면 쌀도 만져보고 나물도 들어보고 별 짓 다 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가게 혹은 좌판에 들려 뭐라도 살라치면 일반적인 국민들의 감정상 화면에 웃으면서 돈을 안받고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날의 해프닝은 영부인이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나는 것이다.
컵라면을 사 준다는 영부인의 말을 통역이 전해줬고 이 할망도 들었다. 옆에 있는 보좌관과 통역, 수행비서, 고위 관련 공무원 중 누구라도 얼른 지갑을 열어서 대금을 치뤘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나 서로가 미루다가 아무도 지갑을 열지 않고 컵라면 박스만 들었다 내렸다 하더니 라이사 여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때 우리의 멋진 제주 할망이 말한다.
"0000원 인디양, 강 0000원만 줍서"
아하하~ 당시 정상회담에서 엄청나게 퍼주기로 한 돈을 생각하면 난 이 할머니 말이 더 통쾌하다. 당시 퍼준 돈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난 뒤에 돈 빌려 주고도 계속 빌빌 졸라서 결국 고철하고 쓰다 남은 물건으로 받는다더니 그나마 다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가 제주 할망의 맘을 반이라도 닮아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기본 원칙을 제대로 따라야 한다. 사진 한방 멋있게 찍으려고 국민 혈세를 퍼 주는 것은 충분한 명분과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 이득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하튼 그 때 퍼준 물건 중에 돈 말고는 컵라면과 함께 '쵸코 파이'가 있었다. 지금 기사가 나오는 것이 조금 의외지만 러시아에서 오리온 쵸코 파이는 짝퉁 시장의 등장을 유발할 정도로 전폭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상품이지만 우리 것이 외국에서 호평받는다는 것은 늘 즐거운 소식이다.
추신)
제주 이야기를 하다보면 친구들이 꼭 물어 본다.
친구 : "얌마, 제주도 말 좀 해 봐라."
나 : "골맨 알아지쿠가?"
2005. 6. 29.
제주 사랑 주 모씨.
# by | 2005/06/29 03:15 | 만화말고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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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땐 초코파이의 그 맛이 웬지 싫었는데
지금은 참 맛나더군요. 그땐 왜 그랬을까^^;
초코파이에 관한 기사. 왠지 찡한데요? 음 쥬피터님 말씀대로 우리것이 올바른 법적절차를 밟고 외국에 나가서 호평을 듣는다면 늘 즐거운 소식이죠^^ 반대로 불법으로 뭔가가 외국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 뭔가 도둑질 당한 기분이랄까요? ^^
저도 94년부터 97년까지 경남 김해에서 만화방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