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6월 15일
만화와 만화영화가 다른 결정적 증거
만화와 만화영화처럼 가까운 장르는 없다. 그럼에도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이 글에서 그 차이란 것이 학술적으로 정지와 연속, 무성과 유성, 종이와 스크린 어쩌고 하는 말을 다시 주절거리자는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지상파 방송은 신설법 때문에 난리다. 작년 9월에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올해 7월 1일부터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실시된다. 이 제도의 목적인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을 위해 방송사는 연간 전체 방송시간의 1% 이상을 국산창작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해야 한다. 물론 강제 규정이다. 현재 약 400,000 분으로 계산되므로 각 방송사는 연간 4,000분을 재방송이 아닌 국산창작만화영화로 채워야 한다. 게다가 KBS는 채널이 2개이니 8,000분이 되고 재방송까지 고려한다면 기존의 국내창작만화영화 방영시간보다 3배 가량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각 방송사는 양질의 국산만화영화 확보 전쟁이 진행 중이다.
물론 이 제도의 시행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의 강제 이행 규정으로 케이블 방송들-투니원, 애니원, 챔프-의 경쟁력이 사라지게 되니 그저 좋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대의명분에 밀리면 소용이 없다. 이 제도의 명분이 위에 언급한 '목적'이었으니 일개 방송사들의 이익과 상충되더라도 이건 싸움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만화와의 차이라는 것일까? 영화의 스크린 쿼터제와 만화영화의 방송 총량제와 함께 만화도 주장한 것이 있었다. 출판쿼터제이다. 대학교수부터 만화독자까지 떠들었음에도 현재까지 이 제도 도입 가능성은 그리 찾을 수 없다. 정부의 관련 세미나와 공청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늘 같다. 국제적 형평성이니 일본과의 상호주의니 업계 자율에 맡길 문제라느니.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결국 '만화는 니들이 알아서 해 주면 안되니?'라고 들린다. 왜냐하면 국제적 형평성, 국가 상호주의, 업계 자율이란 것은 '만화'에만 해당되는 제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나 만화영화가 출판만화보다 이 핑계에 더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출판만화 쿼터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에 머문다. 그것이 만화와 만화영화의 학술적 차이를 넘어선 현실적 차이다.
나는 영화이거나 애니메이션처럼 출판만화의 중요성이 형식적 치사로 간과되지 않고 실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만화에서 출판만화의 중요성은 형식적 치사가 아니라 실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출판만화 쿼터제에 직면한 제반 문제들은 이미 만화영화나 실사영화의 쿼터제 도입 과정에서 해소된 벽들이다. 이처럼 뚜렷한 전철이 있는데도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만화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이다.
2005. 6. 15.
주 모씨.
최근 우리나라의 지상파 방송은 신설법 때문에 난리다. 작년 9월에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올해 7월 1일부터 '애니메이션 총량제'가 실시된다. 이 제도의 목적인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을 위해 방송사는 연간 전체 방송시간의 1% 이상을 국산창작 애니메이션으로 편성해야 한다. 물론 강제 규정이다. 현재 약 400,000 분으로 계산되므로 각 방송사는 연간 4,000분을 재방송이 아닌 국산창작만화영화로 채워야 한다. 게다가 KBS는 채널이 2개이니 8,000분이 되고 재방송까지 고려한다면 기존의 국내창작만화영화 방영시간보다 3배 가량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각 방송사는 양질의 국산만화영화 확보 전쟁이 진행 중이다.
물론 이 제도의 시행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의 강제 이행 규정으로 케이블 방송들-투니원, 애니원, 챔프-의 경쟁력이 사라지게 되니 그저 좋을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대의명분에 밀리면 소용이 없다. 이 제도의 명분이 위에 언급한 '목적'이었으니 일개 방송사들의 이익과 상충되더라도 이건 싸움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만화와의 차이라는 것일까? 영화의 스크린 쿼터제와 만화영화의 방송 총량제와 함께 만화도 주장한 것이 있었다. 출판쿼터제이다. 대학교수부터 만화독자까지 떠들었음에도 현재까지 이 제도 도입 가능성은 그리 찾을 수 없다. 정부의 관련 세미나와 공청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늘 같다. 국제적 형평성이니 일본과의 상호주의니 업계 자율에 맡길 문제라느니.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결국 '만화는 니들이 알아서 해 주면 안되니?'라고 들린다. 왜냐하면 국제적 형평성, 국가 상호주의, 업계 자율이란 것은 '만화'에만 해당되는 제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나 만화영화가 출판만화보다 이 핑계에 더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출판만화 쿼터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에 머문다. 그것이 만화와 만화영화의 학술적 차이를 넘어선 현실적 차이다.
나는 영화이거나 애니메이션처럼 출판만화의 중요성이 형식적 치사로 간과되지 않고 실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만화에서 출판만화의 중요성은 형식적 치사가 아니라 실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출판만화 쿼터제에 직면한 제반 문제들은 이미 만화영화나 실사영화의 쿼터제 도입 과정에서 해소된 벽들이다. 이처럼 뚜렷한 전철이 있는데도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만화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이다.
2005. 6. 15.
주 모씨.
# by | 2005/06/15 15:49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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