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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중에 젖어든 망가 화법

'말'이란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반드시 '어원'을 근거로 둔다. 만화 주인공 '꺼벙이'는 못생기고 암수 구별도 안되는 꿩의 어린 새끼 '꺼병이'에서 나왔고 주인공의 어린 시절 외로움을 표현하는 '외톨이'는 마늘통이나 밤송이에 하나만 있는 것을 '외톨'이라고 표현한데서 나온 말이다. '내 사랑 싸가지'에서 사용된 '싸가지'는 '싹+아지'의 사투리로 어린 싹도 없으니 잘 될 턱이 없다는 말이다. '혈의 누'에서 나온 살해 수법 중 하나는 '도모지'(창호지에 기름을 먹인 것)를 얼굴에 붙여 질식사시키는 것인데 이 종이에서 유래한 것이 '도무지 모르겠다'이다. 얼굴에 그걸 붙여 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런 표현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어원과 달리 나라마다 의성어도 달라서 우린 시계 초침 소리를 '똑 딱'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는 '틱 택', 북한은 우스개로 '똑이니끼니 딱이야요'라고도 한다. 그럼 비행기의 비행 소리는 어떤가? 물론 우리 표현으로는 일반적으로 '부우웅' 또는 '쌔에엑'(미군기를 '쌕쌕이'라고 불렀던 당시를 그린 만화 [내파란 세이버]를 보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도 표현한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물론 망가에서 쓰이는 의성어이다.

언제부터인가 오프라인의 '직접대면' 대화와 달리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키 보드로 오가는 대화는 전혀 별개의 대화 표현을 만들어 갔고 그 현상은 통신체나 외계어로 확장되어 '귀여니'로 정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만화에서 유달리 나타나는 어법은 조금 다르다. 독백의 말투라거나 자문자답형, 자승자박형, 수동태의 남발 등은 한국 문법이 아니라 일본 문법과 망가적 표현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앞에 예로 든 '고오오오오오'를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일본 만화에 그려진 것을 국내 번역 출판하면서 그대로 옮겼는데 이것을 본 독자들이 만화가가 되니 그런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극적인 만화 컷 배경에 일장기에서 팔방으로 빛이 뻗어 나가게 그리는 것에도 찾을 수 있다. 작화만 망가풍이 아니라 그 표현조차 망가적인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특히 만화에 대한 애정을 지닌 독자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한 곳에서 자신의 말투를 살펴 볼 기회는 그리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런 말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심없이 아래 링크된 오래된 글을 하나 보자. 몇 년 전, 게시된 재미있는 총 4편의 분석 시리즈이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어투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담담하게 보라.
이 링크에서 '일본어투' 제목 검색하시면 됩니다.

번호 45345 김승찬 01/14 일본어투 강의를 마치며
번호 45341 김승찬 01/14 [강의] 당신도 일본어투를 쓸 수 있다! (고급)
번호 45303 김승찬 01/13 [강의] 당신도 일본어투를 쓸 수 있다! (중급2)
번호 45242 김승찬 01/12 [강의] 당신도 일본어투를 쓸 수 있다! (중급1)
번호 45222 김승찬 01/11 [강의] 당신도 일본어투를 쓸 수 있다! (초급)

내 경우에도 게시판 문장 끝에 '털썩'이니 '쿨럭' 등의 표현을 붙이니 '당신도'라는 제목에 포함된다. 오프라인과 달리 표정이나 바디 랭귀지를 포함할 수 없는 텍스트 대화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부가적 표현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또한 통신체나 외계어에는 외래문화의 종속이 아니라 온전히 자생적인 기호가 더 많다. 그러나 위 링크 글에 지적하는 어법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 어법,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망가어투란 것에도 닿아 있기에 망가에 젖어있는 우리의 무의식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만화와 쌀은 분명히 다르지만 한국의 만화는 우리의 쌀과 닮았다. 당장에 싸다고 외국 농산물을 마구 들여오면 한국 농부는 전답을 팔고 이농한다. 그래서 자주 국방 못지않게 자주 농업이 중요하다. 그럼 만화는 어떤가? 중국산 쌀처럼 당장에 팔 것이 되니 일본 망가를 바닥까지 긁어서 다 들여 왔다. 한국 만화가들은 그렇게 만화도구를 박스에 넣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갔다. 좋은 만화는 일본 망가라고 아이들은 말한다. 작가에게 좋은 만화 그리면 우리판도 좋아질 거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망가적 어투는 그 어원도 따져보지 않고 그 배경도 모르면서 입에 달고 있다. 별 것 아닐수도 있는 어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새가슴 탓이라고 보고 싶다. 그러나 국민 정체성, 그리고 만화에는 분명히 '언어'와 '글'이 포함되어 있다.

2005. 6. 14.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06/14 22:52 | 딴지 거는 글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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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스톨 at 2005/06/15 04:20
링크된곳에 글이 안뜨는데요, 나만 그런건가?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06/15 12:32
검색으로 찾았더니 검색창 주소로 고정되어 글이 떳네요. 링크를 바꾸겠습니다.
Commented by yuuka at 2005/06/18 13:21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요사이 모든곳에서 범람하고 있는 되어지다 쓰여지다 보여지다 같은 표현은, 그것이 한국어의 어문 규정 안에서 성립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시점으로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적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고, 외국어투라는 것도 그 경계를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는지 애매합니다. 또한 외국어투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경우라도, 그것이 한국어의 어문 규정 안에서 성립한다면 배척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윗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특수한 말투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시점이 좀 빗나가 있지 않은가 싶군요.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처음뵙겠습니다. 초면에 긴 글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쥬피터 at 2005/06/18 14:02
언어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제 시각이 과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만화 작품에서의 표현 형식과 만화독자들의 대화에서 망가적 표현이 자연스러운 것은 현실입니다. 언어학과 자국어의 정체성까지 개념 정리하려는 학술적인 글이 아니므로 가볍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조언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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