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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만화지망생이 사주를 봤더니.

(아래 글은 한국 만화 전체가 아니라 한 분야인 일일만화와 한국 성인만화 시장을 대상으로 썼다)



부도난 [굿데이] 신문에는 <사주 세상>이란 코너가 있다.
평소에 보지도 않던 코너인데 제목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만화가의 꿈을 안고 있지만 힘들어..."

실제 정보인지는 모르지만 사주를 의뢰한 사람은 김윤섭 씨로 '남·1966년 4월 17일, 신시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니까 2005년을 맞으면서 40살, '흔'의 시대('마흔'처럼 뒤에 '른'이 아니라 '흔'이 붙는 세대)에 접어든 만화 지망생(?)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젊은 이들이 자신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만화지망생'과는 조금 다른 개념일 것이다.
어쩌면 학습만화를 그렸거나 화실에서 배경, 아니 이 정도 나이면 데생이나 실장을 맡았을 수도 있다. 단순한 만화 지망생이 아니라 연륜으로 미루어 보면 만화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이 박힌 작품이 없다는 것이지 만화산업의 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 왔으리라고 본다. 물론 추정이지만 이를 염두에 두고 올린 사주 의뢰가 만화계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만화가의 꿈을 안고 열심히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장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왜 저는 한 가지도 되는 일이 없는지 답답합니다."

두 줄 문장에서 전해지는 삶의 '더께'가 가볍지 않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 들어갈 때의 가벼운 흥미는 벌써 저만큼 사라져 버렸다.

매체에 고정적인 활동을 하는 역술인 백운비 씨는 이에 대해서 이런 조언과도 같은 점괘를 이렇게 펼쳤다.

"귀하의 예술적인 기질은 천부적이며 운명적으로 정해진 숙명입니다. 만화 쪽에 뜻을 계속 굳히고 다른 잡념은 일체 버리세요. 실현이 더디더라도 내용이 중요하며 꾸준히 지켜가세요. 장사의 길이 아니므로 시작하면 무너지고 쫓기는 입장이 되어 불행을 면치 못합니다. 운이 늦은 것은 실력이나 노력과의 관계가 아니라 운명의 흐름이며 때가 오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공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이며 아직까지는 준비의 과정이나 이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사업을 함께 병행하면 금상첨화입니다. 해외와의 인연으로 광대하게 확장되니 2005년을 목표로 열심히 하세요. 결혼은 내년에 이루어지며 개띠나 돼지띠 중에 있습니다."

난 점술을 백번 양보해서 통계의 학문 정도로 이해하고는 있지만, 왜 이 점괘가 와 닿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개인 김윤섭 씨에게는 이 점괘가 100% 맞기를 기원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의 중년 만화 지망생이라는 일반적 대상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젊은 작가들의 데뷔는 전통적인 공모전과 웹 매체, '저홀로 창작출판' 등 다양하게 마련되어 예전보다 오히려 무대는 넓다. 그런데 단행본이라도 몇 종 낸 중견 만화작가와 출판만화 중 극화를 주 창작 메뉴로 삼았던 전통적인 만화작가들의 위치는 회전무대 뒤로 대부분 밀려나 있는 것이 요즘이다. 그 나마 잘 나가던 몇 명의 메이저 극화 작가들은 이제 신문과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면서 새해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출판사와의 단행본 극화 시리즈 계약은 이제 우선순위에서 제외되어 있다.

출판 수익을 만화방과 대여점에서 뽑던 한국만화 출판사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출판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수익은 내야 하니까 '자기들만의 복간'으로 시장에 강매한다. 그들의 절대 권력인 '시장 배포 독점'을 무기로 '안 사면 공급 중단'이라고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일갈한다. 술 취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한 번 총판이랑 붙자는 거냐?'는 소리가 오갈 정도로 이 바닥은 이제 막되먹은 꼬라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늘 생각했듯이, 만화문화와 만화산업은 어느 한 쪽만 굴러 가서는 안된다. 수레바퀴의 두 축처럼 서로가 함께 가야 한다.
만화책이 모두 순수문학의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업적 만화도 시장에서 용인되어야 하고 그래서 비난 받지 말아야 한다. 다양성이니 저변이니 하는 말들은 자연히 만화에도 통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틀에서 만화방용 만화, 대본 만화와 성인만화를 그저 죽일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만화방 문화에서 서점과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으며 '특이한 만화 독법'을 이어지게 한 하나의 분야로서 인정해 줘야할 만화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 동안,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행태들은 그런 산업적 이유와 만화문화의 다양성으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차없이 날려버리고 있다. '정말 저들 스스로 싼마이 짓을 하는구나...'

그런 짓거리가 백주 대낮에 활개치는 데 저 사주를 의뢰한 이가 제발 이 쪽에 발을 담근 분이 아니길 바란다. 만약 이쪽에 발을 담근 분이라면 백운비 씨가 해준 점괘가 엉터리라고 난 분명히 말해 주고 싶다. 이런 싼마이 짓거리에서 과거에 안주하던 이 쪽의 만화들은 조용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지속적인 자기 성장을 꾀한 분들은 살아 남겠지만.

그래도 대본 만화는 몇 년간 온라인에서 회수할 터이고 중국으로 대본체제를 수출(?)하여 또 몇 십년 갈 예정이다. 일판 구조는 시장과 한 판 붙자는 거냐고 묻지만, 이건 붙을 성질이 아니다. 그럴 거면 그냥 접으면 되는 것이지. 붙는 다는 것은 서로가 맞거나 때릴 수 있을 때 해 보는 것이지 이건 붙어서 이겨 봐야 저 쪽의 빚잔치를 대신 치뤄주는 꼴 뿐이잖는가? 그런데 뭣하러 붙나? 붙기는.

지금 한국 만화계의 한 귀퉁이에서는 뒷골목 어깨 같은 걸음걸이로 을유년이 시작된다.



2005. 1. 16.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06/01 21:56 | 만화가 코너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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