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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가는 집에 형도 없나? 만화의 권리

한국 만화가는 집에 형도 없나?


(홧김에 홈 게시판에 올린 이 글을 '계간만화'가 옮겨 가고 그것이 다른 곳으로 퍼 날라졌다. '계간만화' 운영자의 글로 되어 있으나 이 글의 작성자는 이 블로그의 쥔장이다. 물론 이 블로그의 다른 글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자료의 펙트를 제외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최근 몇 건의 일들이 한국 만화가들의 처량함을 들추는 것 같아 맘이 불편하다. 어릴 적, 키 크고 몸무게 많이 나가는 놈과 어쩌다 붙어서 깨지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에 형 있어!”
대부분 판정패한 아이들의 전용 대사였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의 위안이라도 있었다. 그런 대사를 외치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보자.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 건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이하 ‘뚱땡이’)는 만화가 이희정 작가의 출판만화이다. 이 작가는 9월 20일에 하나의 소송을 제기했다. “MBC에서 방영한 [두근두근 체인지]가 내 작품의 스토리 설정과 인물구도를 표절했다”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신정구 작과와 노도철 PD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이희정 작가 홈페이지 참조)
이희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것 없는 신인 만화가지만 힘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만화의 저작권도 다른 문화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보호 받아야 하는 창작물임을 외치고 싶었다”면서 “쉽게 웃기고 부담 없는 만화라고 해서 그 한 권의 만화를 만들기까지의 인내와 노력마저 우습게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또한 “비록 드라마는 끝났지만 만화의 소재는 언제든 누구나 마음대로 베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하나의 경종이 되고자 뒤늦게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했다.

법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 작가의 말은 현재 만화작가가 힘없는 골목 아이와 같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만화의 저작권은 다른 문화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동등하여야 한다. 그 당연함을 꼭 외쳐야 하는 것-매일 아침 "해는 둥글다"라고 동네방네 뛰어다니면서 말해야 하는 것처럼-이 한국 만화작가이다.
만화의 장점 중 하나는 쉽게 독자를 몰입하게 하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작의 가벼움이라는 말이 아님을 일반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그 상식의 매도 또한 매번 꾸짖어야 하는 것이 한국 만화작가이다.
만화 소재의 단물 빼먹기가 회자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아직도 작가 개인이 종을 울려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 돌아본다. 이렇게 제도와 법과 인식과 문화가 아니라 한국 만화작가 개인이 매번 골든 벨(?)을 울려야 한다. 창작하기 바쁜 손으로 종까지 쳐 대야 하니 참 서글프다.


[바람의 나라] 건

드라마의 살아 있는 신화,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다시 만났다. 고구려 건국과 광개토 대왕의 대륙정벌을 다루는 36부작 HD 판타지 역사극 [태왕사신기(太王四神記)]로 블록버스터 급 영화 제작, 만화, 소설, 음반, 게임, 테마파크, 해외 시장 수출도 계획 중이라고 9월 14일 발표했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데 들고 나온 것은 매우 간략한 시놉시스였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간략한 줄거리에도 표절을 의심케 할 것들이 담겨 있었다는 지적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다루는 문학은 텍스트가 무기이다. 그러나 그 인용하는 텍스트가 다 사료(史料)는 아니다. 원전이 되는 텍스트조차 사실 자료 사이에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게다가 창작문학(소설이 됐든 만화가 됐든 역사문헌이 됐든)에는 픽션과 넌픽션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그 중에 작가의 허구 부분이 원작과 표절작 구분을 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태왕사신기]는 시놉시스에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 고증한다고 했으나 이미 몇 가지 창작 원전을 이용한 것이 눈에 띈다. 4신수가 인간 형태로 광개토 대왕의 권위와 증표로 등장하는 것은 [바람의 나라]에서 도입된 설정이다. 또한 [태왕사신기]에 등장하는 ‘담덕’은 [태왕북벌기]에서 작가 형민우가 소년 만화의 재미를 위해 현대적인 캐릭터로 묘사했는데 이와 유사한 캐릭터로 재등장한다. 방대한 고증 자료 중에 [바람의 나라]와 [태왕북벌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사실 자료가 아니라 다른 창작물을 인용, 도용, 표절한 증거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 송지나 작가는 http://dramada.kaist.ac.kr/ 의 [태왕사신기] 게시판에 ‘바람의 나라와 관련된 종지부 글입니다’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작품을 하게 되면서 김종학 PD가 한 말은 “지나씨, 우리 광개토대왕 얘기 같은 거 한번 해 봅시다” 뿐이었으며, [바람의 나라]는 “드라마 [카이스트]을 할 때 알게된 분의 소개로 일독을 하려고 했으나 만화의 이해가 어려워 4권에서 덮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만화와 드라마에서 같은 구성이나 인물이 나올 까닭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김진 작가는 KBS와 추진하던 [바람의 나라] 건을 이야기하면서 그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가슴이 아프려고 한다. 내가 슬퍼져야 하는 거 맞지?”



만화는 원 소스 멀티 유즈라고 지겹게 떠든다. 그리고 지겹게도 이용한다. 그리고 가끔 언론에서 분쟁을 다뤄 준다. 그리고 그 뿐이다. 늘 당하는 쪽은 만화 쪽이다. 이제는 ‘집에 형 있다’는 말도 안 먹힌다. 누구나 ‘만화 쪽에는 형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만만하게 본다. 만화 작가가 영화나 드라마 내용을 인용해서 작품을 내고 좀 팔렸다면, 옆 집 아이들은 어땠을까? 아마도 집의 형은 물론 옆집 어깨까지 데리고 왔을 것이다. 그것이 변호사와 기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등장인물의 구도로 보자면 그게 그거다.

“만화 작가의 형은 누구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만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의 표지)



2004. 9. 22.
주 모씨


사족1)

지금 '형'을 애타게 부르는 이들은 만화작가는 물론이지만 그 팬들이 더 많다.

김진 작가의 팬클럽에서는 각 종 만화단체의 게시판과 인터넷 공간에서 '왜 이럴 때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형'들이 어찌 움직일 지, 아니면 '형'들이 움직이게 뒤에서 충고할 지 고심 중이다. 충고해 봐도 사실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자면 단체 연명의 성명서 정도의 솜 방망이였지만 그런 모습조차 아쉬울 지경이다.

사족2)

표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부류들이 있다. 이번에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못생긴 여자의 변신이 무슨 표절이냐? '두근두근 체인지'가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를 표절했다면 '뚱땡이'는 미소녀 변신물 표절 아니냐?"
"기본적인 인물 구도로 따지자면 주인공과 대립인, 보조자, 조력자, 동기유발자 등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게 무슨 표절이냐?"
"방대한 고증 자료를 조사했으며, 표절 원작이라는 작품은 보지도 못했다."
기타 등등.

이 말은 진실을 가리는 연막탄이다. 서사구조로 보자면 헐리우드 영화 스토리는 36개의 정형화된 모델로 이미 드러나 있다. 즉,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이 36가지 유형 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좀 더 확대하여 서사 구조나 신화 구조로 본다면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멋진 놈 있고 나쁜 놈 있고 어려움 있고 극복이 있고 영광이 있다. 혹은 불쌍한 여자 있고 억압하는 여자 있고 극복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런 입장이 위의 처음과 두 번 째 이야기 부류들을 지원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표절을 따질 때 그렇게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담덕'이란 청년의 성격이나, 방위의 개념이었던 4신이 인간의 형태로 광개토 대왕을 돕는 설정 등은 원작 만화가들의 머릿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고구려사도 아니고 동북아 역사자료도 아니다. 김진과 형민우 작가의 두뇌에서 창조된 부분들이다. 이것이 같이 나올 까닭이 없다. 중요 인물의 캐릭터가 같고, 4신의 설정이 같으니 열 받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뚱땡이'의 경우는 등장인물의 구도는 제외하더라도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 유사성으로 충분히 열 받게 된다.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소유진이 나왔던 골프 드라마에서 악역 조연이 화장실 앞에 골프공 상자를 놓아 두고 주인공이 문을 열 때 그것이 쏟아지게 한 그런 에피소드. 이 에피소드는 표절로 판정된-물론 드라마 제작 측은 문제가 커지자 드라마 방송 도중에 일본 작품 '해피' 원작자와 원작 사용 계약을 했고 그것으로 표절이 아니잖느냐고 우겼다-해피에 이미 나온 상황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어디 한 두개였으랴.

아주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중간에 어떤 글자를 일부러 오타를 치거나 아니면 한 칸 띄우기가 아니라 두 칸 띄우기를 한다. 그것을 복사해서 다른 곳에서 자신의 글인양 올리는 경우, 그 오타는 결정적 도용 증거가 된다. 많이들 경험하지 않았나? 학교 다닐 때 옆 사람 컨닝한 거 단체로 들키는 것. 대부분 정답이 '로뎅'인데 옆 놈이 '오뎅'이라고 쓰자 그 주변 녀석들이 죄다 '오뎅'이라고 쓰는 경우와 같다. 이것이 컨닝의 증거이며 표절의 입증 방식 중 하나이다.
물론 그중의 압권은 진화형 컨닝이다. '오뎅'을 '오우덴(일본식 발음)'이라고 쓴 놈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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