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6월 01일
그 많던 극화는 어디로 갔나?
'2004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사업 결과가 아직 발표 전이라 구체적인 작품명을 명시할 수는 없지만... 오늘 4 작품이 선정됐다. 치열한 논란이라기보다 무리없이 의견이 모아졌고 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견해 차이도 잔잔했다.
어떤 만화들이길래?
선정된 만화들이 어떤 만화들인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몰개념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부르는 전통적인 서사극화 방식의 이야기 만화들, 그들의 퇴조가 두드러져 보인 단상을 전하려는 것이다.
선정된 작품은 짧은 이야기 호흡에서 반전을 무기로 후두부를 때리는 형식, 순정의 현대적 껍질을 입음으로서 감성적 진화하고 벌써 멀티 유즈 대상이 된 이야기, 엽기 코드와 대중적 관심사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소재, 웹 만화의 신 형식 실험을 이끌고 '다 본 만화를 돈 주고 산다'는 증거로 각광받는 작품.... 분명 우리가 침 발라 넘기며 보던 긴 이야기 만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말 그대로 '오늘'이라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라는 수용자 전체가 즐겨 보는 '만화'가 무엇인지 뽑아내는 행사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이다.
오늘날 사랑받는 만화, 주류이거나 주류가 될 만화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시금석이 '오늘의 우리 만화' 상이다. 그러나 이제 그 행사에서 장편 서사 구조를 따르는 만화들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장엄한 메시지에 경도된 만화들도 몇 있었고 좋은 작품임에도 출간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아 아까운 작품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선택되지는 않았다.
장편 이야기 만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장편의 구조가 대여만화 혹은 1회성 만화로 치환되어 있는 현실적 정서가 작용하기도 하고, 실제 그렇게 이야기 만화는 현실과 타협하기도 했다. 물론 장편이라고 다 그러랴. 백성민 작가가 연재고료의 상업적 이득을 버리고 거의 '기절초풍'스럽게시리 단행본 20권을 한방에 출시한 것은 단지 장편이라서 작품이 비난 받지 못하게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장편 만화들의 상업적 적응 형태는 만화문화와 다른 길로 간다. 상업적으로 간다는 말이다. 그와 달리 한편에서는 이제 만화 자체가 대중적 오락거리에서 제 9의 예술을, 또 그 마저도 넘어 메시지를 압축하여 철학을 논하는 매체의 역할도 감당하는 듯하다.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뭔가 여운도 남아야 하는 세상이다.
선정작에 이의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선정작의 시대적 선호도가 바뀐 것을 보면서 주류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만화가 보였기에 하는 말이다. 선정작들은 모두 좋아하는 작품들이다.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음이 이미 확인되어 있고 평단과 언론에서도 다양한 시선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만화는 대중과 동시에 호흡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오늘이다.
그리도 대중들은 이제 키득거리는 만화보다 머리를 땡! 하고 때리는, 아니면 가슴에 미어지는 무엇이 남는 만화를 보듬을 줄 아는 독자들이다.
그들의 소리 없는 응원이 이 상을 선정하게 하는 동인이 됐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만화들.
독자들과 함께.
화이팅!
2004. 7. 3
주 모씨
어떤 만화들이길래?
선정된 만화들이 어떤 만화들인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몰개념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부르는 전통적인 서사극화 방식의 이야기 만화들, 그들의 퇴조가 두드러져 보인 단상을 전하려는 것이다.
선정된 작품은 짧은 이야기 호흡에서 반전을 무기로 후두부를 때리는 형식, 순정의 현대적 껍질을 입음으로서 감성적 진화하고 벌써 멀티 유즈 대상이 된 이야기, 엽기 코드와 대중적 관심사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소재, 웹 만화의 신 형식 실험을 이끌고 '다 본 만화를 돈 주고 산다'는 증거로 각광받는 작품.... 분명 우리가 침 발라 넘기며 보던 긴 이야기 만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말 그대로 '오늘'이라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라는 수용자 전체가 즐겨 보는 '만화'가 무엇인지 뽑아내는 행사가 '오늘의 우리 만화'상이다.
오늘날 사랑받는 만화, 주류이거나 주류가 될 만화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시금석이 '오늘의 우리 만화' 상이다. 그러나 이제 그 행사에서 장편 서사 구조를 따르는 만화들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장엄한 메시지에 경도된 만화들도 몇 있었고 좋은 작품임에도 출간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아 아까운 작품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선택되지는 않았다.
장편 이야기 만화들은 어디로 갔을까?
장편의 구조가 대여만화 혹은 1회성 만화로 치환되어 있는 현실적 정서가 작용하기도 하고, 실제 그렇게 이야기 만화는 현실과 타협하기도 했다. 물론 장편이라고 다 그러랴. 백성민 작가가 연재고료의 상업적 이득을 버리고 거의 '기절초풍'스럽게시리 단행본 20권을 한방에 출시한 것은 단지 장편이라서 작품이 비난 받지 못하게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장편 만화들의 상업적 적응 형태는 만화문화와 다른 길로 간다. 상업적으로 간다는 말이다. 그와 달리 한편에서는 이제 만화 자체가 대중적 오락거리에서 제 9의 예술을, 또 그 마저도 넘어 메시지를 압축하여 철학을 논하는 매체의 역할도 감당하는 듯하다.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뭔가 여운도 남아야 하는 세상이다.
선정작에 이의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선정작의 시대적 선호도가 바뀐 것을 보면서 주류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만화가 보였기에 하는 말이다. 선정작들은 모두 좋아하는 작품들이다.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음이 이미 확인되어 있고 평단과 언론에서도 다양한 시선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만화는 대중과 동시에 호흡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오늘이다.
그리도 대중들은 이제 키득거리는 만화보다 머리를 땡! 하고 때리는, 아니면 가슴에 미어지는 무엇이 남는 만화를 보듬을 줄 아는 독자들이다.
그들의 소리 없는 응원이 이 상을 선정하게 하는 동인이 됐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만화들.
독자들과 함께.
화이팅!
2004. 7. 3
주 모씨
# by | 2005/06/01 03:15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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