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6월 01일
자기 손으로 목 졸라서 죽을 수 있을까?
[만화유통의 개선]
'자기 손으로 입 막아서 죽을 수 있을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사업입찰 공고가 나왔다.
이름하여 [만화유통경로 혁신을 위한 BPR 및 ISP 수립사업 연구용역 업체선정의 건]이다.
http://www.kocca.or.kr/not_main/new_notice/notice_read.jsp?strBbsid=101&intSeq=10989
이번 중 금요일인 2월 20일이 마감이라 관심 있는 업체들은 바쁘게 생겼다. 입찰 공고가 2월 11일자로 공지되어 시일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료 붙이고 이미 다 나온 개선 방안 달고 텍스트 멋있게 꾸미면 용역대금이 쏠쏠하다. 7천만 원이니까.
한국만화 유통의 전근대적 구조는 만화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몇 가지 고질병 중 하나다. 제작 기획에서부터 홍보, 유통, 회수까지 전반적인 부분들이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지만 유통은 그나마 수치까지 들먹이며 지적되어 왔다. 만화계의 유통 손실은 업계의 눈썰미로만 잡아도 매년 200억 원이다. 즉 만화출판사와 서적도매상, 만화총판 등의 유통손실을 합산하면 그 정도 된다는 분석이다. 이 손실액은 남도 아니고 업계에서 자백한 수치이니 따질 것도 없다.
만화 출판사 중 메이저는 약 5개 내외이고 유통의 메이저도 대략 그 정도이다. 군소업체야 '위탁'이란 방법도 사용하니까 이들 5개 출판사와 10여개 유통사로만 시물레이션을 해 보자. 그것도 만화로만.
일단 5개 회사에서 월 100권 씩 만화가 나온다. 이것을 전국의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직접 전달이란 것은 홈쇼핑이 아니므로 당연히 유통의 거점을 이용한다. 그것이 서점이며 그 서점까지의 배포를 유통이 맡는다. 여기에서부터 만화판은 '정신 산란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책을 낸 각 출판사에 10명의 유통사가 죄다 따로 계약한다. 그리고 유통사는 전국을 쪼갠 ‘나와바리’에 따라 독점 배포한다. 독점권 대신에 유통사는 각 출판사에 사전 사례를 한다. 그것이 보증금이다. 출판사는 고기장사를 벤치마킹한다고 비난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고기장사의 ‘근 떼기’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빵출판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가 경상남도 유통사에게 보증금을 받고 독점권을 준다. 그리고 동시에 매 달 100여 종의 만화 신간을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기획 상품의 개념이 아니라 신간 상품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를 미리 정하고 그에 따른 보증금을 받고 유통은 나와바리 안에서 뿌린다. 팔리는 거?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래서 만화는 ‘뿌려지는 것’이란 소릴 듣게 된다.
대구를 예로 들어 보자. 대구의 만화서점이 책을 공급받는데 출판사는 서울에서 밀집되어 있다. 그러면 한 업자 혹은 공동 시스템으로 서울의 도서를 일괄 공급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회사별로 받는다. 그러니 5개 출판사의 책을 다섯 명의 유통 직원이 죄다 한번 씩 들고 내려 와야 한다. 차비 만만치 않다.
공동물류니 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이 바닥에서는 딴나라 이야기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에피소드.
파주에 '출판만화단지'가 조성되고 정부가 헐값에 땅 빌려 주고 길 닦아 주고 출판사 창고를 유치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들어간다. 왜? 같이 관리하자는 것이니 회사별 매출이나 인쇄 수량이 다 공개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그래서 단지 조성의 주체는 꼼수를 쓴다. 공동 관리를 하겠지만 각 회사별 관리용 비밀번호를 부여해서 자사의 집계나 실적은 다른 회사가 알 수 없도록 해 준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공동물류창고는 하늘나라에서 떠돌고 있을 뿐 파주에 강림하지도 못했다.
반복되는 유통개선 토론과 세미나에서 늘 해답은 개별적 유통을 통합하여 중복 투자를 막고 그에 따라 절감을 하자는 일반론이었다. 이 주장이야 만화가 아니라 고기든 쌀이든 인신매매 조직(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이든 모두에게 적용될 방안이다.
그럼에도 유통은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각자' 놀고 있다. 200억 원의 손실은 외부에서 볼 때 만화산업 전체의 손실이지만 내부에서 보자면 그건 손실이 아니라 200억 원에 붙어서 생존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입장이 바로 자신들(출판사와 유통사)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를 누가 풀 수 있겠나.
외부에서 말하는 200억 원 손실이 내부에서 왜 이득이냐고?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책을 팔아서 그 매출액으로 손익을 따지지만 한국에서는 ‘근 떼기’ 만화 공급으로 보증금 수입을 챙긴다. 이것을 근대화니 공동 물류니 유통 개선이니 뭐니 하면서 잘라 버리자니 뭉칫돈을 버리는 꼴이라 쉽지 않다. 그러니 전체는 손해일지라도 당사자들로는 확실한 돈줄인 ‘정신 산란한 유통 구조’를 개선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명분상으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지만, 회사에 돌아가는 길에서는 ‘씰데 없는 소리!’라는 중얼거림이 담배연기 뒤로 날리듯 남겨 진다.
이런 정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조금만 만화판에 돌아 다니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출판사는 책 파는 회사다. 무엇인가를 파는 회사는 판매처 확보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대일’이니 ‘한양’, ‘학뫼’, ‘세양’, ‘시빵’ 등 굵직한 회사들이 편의점이니 대여점이니 찜질방이니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만화를 진열하고 판매처로 계약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총판서점에 당연히 계약을 하고 공급을 하는 데 이것을 만화방과 대여점이 아예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 주마’(대여시장의 '만화판매지원안' 참조)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출판사에서 고맙다고 자기들이 더 지원해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다. “내가 당신 물건 파는 것을 돈 안 받고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데도 묵묵부답이다. 어이가 없어서 살살 달래어 물어보니 그 대답이 가관이다.
“서점에서 반대합니다. 서점으로 오는 손님을 뺏을 것 아니냐는 것이죠.”
이 말을 까발려 보면 이런 것이다. 판매처를 늘리면 전체 만화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증가를 10만 원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서점의 입장에서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10만 원보다 작다. 즉, 서점에서 약간의 손님이 방향을 틀어 가까운 업소에서 만화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출판사의 입장이나 전체 만화판매시장으로 본다면 판매는 증가한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서점이 반대해도 이 제안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출판사는 왜 그럴까?
극단적으로 비난하자면, 판매 신장보다 서점과의 돈거래가 더 끌린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나온 말이 “그래, 당신들은 보증금 장사나 해 먹으쇼.”였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만화유통 개선사업’을 보는 내 시선은 ‘자기 손으로 입 막아서 질식사 하려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저렇게 죽을 수 있을까? 해 봤는데 절대로 못 죽는다. 다른 사람이 막아 주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의 유통구조 개선은 ‘자기 손으로 입막기’와 같다. 이제는 명분을 띄우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만화산업이 산다. 200억 원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에서 계산기로 발전하는 하나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의 입찰 공고를 다시 보자.
도대체 저 영어 대문자는 무엇일까? [BPR]은 ‘만화유통경로 재설계’이고 [ISP]는 ‘만화유통경로 정보화전략 계획’이란다. 그러니까 결국은 유통경로를 뒤집어엎고 다시 짜는 계획을 세워 보라는 공개 입찰인 셈이다.
이렇게 재편하자면 그 기초 조사로 현재 유통경로의 실상과 문제점을 정리해야 하고 만화산업 전체의 시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경로(중복만 빼면 반은 성공이다)를 구축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의 실적이 공개되고 그에 따른 세금이 늘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지금까지 안했으니 세금 증가는 상식적 예상이다. 따라서 이 재편을 제대로 적용하자면 출판사의 손실을 쓰다듬어 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세제 혜택의 방식.
여하튼 주먹구구의 만화판은 창작만화의 기획출판, 계약문화의 개선, 만화심의와 창작 여건의 문화적 성숙, 만화소비 문화의 변화,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이 어느 하나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각 부분은 층층이 쌓은 댐이 아니라 세로 기둥으로 만든 댐과 같아서 어느 하나만 빠져도 만화는 중환자와 같다.
공자님 말씀이지만 각자가 변해야 한다. 만화방도 변해야 하고 지금 여기에서 만화를 보는 손님이나 내일 낮에 서점에 가서 만화를 사는 손님이나 책 들고 오는 외무나 총판장이나, 출판사나 작가나 정책 담당자나 모두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 만화가 있는 방향으로 자세를 틀면 만화가 보인다. 돈 쳐다보지 말고.
2004년 2월 18일
주 모씨
'자기 손으로 입 막아서 죽을 수 있을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사업입찰 공고가 나왔다.
이름하여 [만화유통경로 혁신을 위한 BPR 및 ISP 수립사업 연구용역 업체선정의 건]이다.
http://www.kocca.or.kr/not_main/new_notice/notice_read.jsp?strBbsid=101&intSeq=10989
이번 중 금요일인 2월 20일이 마감이라 관심 있는 업체들은 바쁘게 생겼다. 입찰 공고가 2월 11일자로 공지되어 시일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료 붙이고 이미 다 나온 개선 방안 달고 텍스트 멋있게 꾸미면 용역대금이 쏠쏠하다. 7천만 원이니까.
한국만화 유통의 전근대적 구조는 만화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몇 가지 고질병 중 하나다. 제작 기획에서부터 홍보, 유통, 회수까지 전반적인 부분들이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지만 유통은 그나마 수치까지 들먹이며 지적되어 왔다. 만화계의 유통 손실은 업계의 눈썰미로만 잡아도 매년 200억 원이다. 즉 만화출판사와 서적도매상, 만화총판 등의 유통손실을 합산하면 그 정도 된다는 분석이다. 이 손실액은 남도 아니고 업계에서 자백한 수치이니 따질 것도 없다.
만화 출판사 중 메이저는 약 5개 내외이고 유통의 메이저도 대략 그 정도이다. 군소업체야 '위탁'이란 방법도 사용하니까 이들 5개 출판사와 10여개 유통사로만 시물레이션을 해 보자. 그것도 만화로만.
일단 5개 회사에서 월 100권 씩 만화가 나온다. 이것을 전국의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직접 전달이란 것은 홈쇼핑이 아니므로 당연히 유통의 거점을 이용한다. 그것이 서점이며 그 서점까지의 배포를 유통이 맡는다. 여기에서부터 만화판은 '정신 산란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책을 낸 각 출판사에 10명의 유통사가 죄다 따로 계약한다. 그리고 유통사는 전국을 쪼갠 ‘나와바리’에 따라 독점 배포한다. 독점권 대신에 유통사는 각 출판사에 사전 사례를 한다. 그것이 보증금이다. 출판사는 고기장사를 벤치마킹한다고 비난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고기장사의 ‘근 떼기’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빵출판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가 경상남도 유통사에게 보증금을 받고 독점권을 준다. 그리고 동시에 매 달 100여 종의 만화 신간을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기획 상품의 개념이 아니라 신간 상품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를 미리 정하고 그에 따른 보증금을 받고 유통은 나와바리 안에서 뿌린다. 팔리는 거?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래서 만화는 ‘뿌려지는 것’이란 소릴 듣게 된다.
대구를 예로 들어 보자. 대구의 만화서점이 책을 공급받는데 출판사는 서울에서 밀집되어 있다. 그러면 한 업자 혹은 공동 시스템으로 서울의 도서를 일괄 공급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회사별로 받는다. 그러니 5개 출판사의 책을 다섯 명의 유통 직원이 죄다 한번 씩 들고 내려 와야 한다. 차비 만만치 않다.
공동물류니 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이 바닥에서는 딴나라 이야기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에피소드.
파주에 '출판만화단지'가 조성되고 정부가 헐값에 땅 빌려 주고 길 닦아 주고 출판사 창고를 유치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들어간다. 왜? 같이 관리하자는 것이니 회사별 매출이나 인쇄 수량이 다 공개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그래서 단지 조성의 주체는 꼼수를 쓴다. 공동 관리를 하겠지만 각 회사별 관리용 비밀번호를 부여해서 자사의 집계나 실적은 다른 회사가 알 수 없도록 해 준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공동물류창고는 하늘나라에서 떠돌고 있을 뿐 파주에 강림하지도 못했다.
반복되는 유통개선 토론과 세미나에서 늘 해답은 개별적 유통을 통합하여 중복 투자를 막고 그에 따라 절감을 하자는 일반론이었다. 이 주장이야 만화가 아니라 고기든 쌀이든 인신매매 조직(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이든 모두에게 적용될 방안이다.
그럼에도 유통은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각자' 놀고 있다. 200억 원의 손실은 외부에서 볼 때 만화산업 전체의 손실이지만 내부에서 보자면 그건 손실이 아니라 200억 원에 붙어서 생존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입장이 바로 자신들(출판사와 유통사)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를 누가 풀 수 있겠나.
외부에서 말하는 200억 원 손실이 내부에서 왜 이득이냐고?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책을 팔아서 그 매출액으로 손익을 따지지만 한국에서는 ‘근 떼기’ 만화 공급으로 보증금 수입을 챙긴다. 이것을 근대화니 공동 물류니 유통 개선이니 뭐니 하면서 잘라 버리자니 뭉칫돈을 버리는 꼴이라 쉽지 않다. 그러니 전체는 손해일지라도 당사자들로는 확실한 돈줄인 ‘정신 산란한 유통 구조’를 개선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명분상으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지만, 회사에 돌아가는 길에서는 ‘씰데 없는 소리!’라는 중얼거림이 담배연기 뒤로 날리듯 남겨 진다.
이런 정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조금만 만화판에 돌아 다니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출판사는 책 파는 회사다. 무엇인가를 파는 회사는 판매처 확보에 열을 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니 ‘대일’이니 ‘한양’, ‘학뫼’, ‘세양’, ‘시빵’ 등 굵직한 회사들이 편의점이니 대여점이니 찜질방이니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만화를 진열하고 판매처로 계약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총판서점에 당연히 계약을 하고 공급을 하는 데 이것을 만화방과 대여점이 아예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 주마’(대여시장의 '만화판매지원안' 참조)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출판사에서 고맙다고 자기들이 더 지원해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 반대다. “내가 당신 물건 파는 것을 돈 안 받고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데도 묵묵부답이다. 어이가 없어서 살살 달래어 물어보니 그 대답이 가관이다.
“서점에서 반대합니다. 서점으로 오는 손님을 뺏을 것 아니냐는 것이죠.”
이 말을 까발려 보면 이런 것이다. 판매처를 늘리면 전체 만화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증가를 10만 원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서점의 입장에서 손님이 줄어드는 것은 10만 원보다 작다. 즉, 서점에서 약간의 손님이 방향을 틀어 가까운 업소에서 만화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출판사의 입장이나 전체 만화판매시장으로 본다면 판매는 증가한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서점이 반대해도 이 제안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출판사는 왜 그럴까?
극단적으로 비난하자면, 판매 신장보다 서점과의 돈거래가 더 끌린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래서 나온 말이 “그래, 당신들은 보증금 장사나 해 먹으쇼.”였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만화유통 개선사업’을 보는 내 시선은 ‘자기 손으로 입 막아서 질식사 하려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저렇게 죽을 수 있을까? 해 봤는데 절대로 못 죽는다. 다른 사람이 막아 주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의 유통구조 개선은 ‘자기 손으로 입막기’와 같다. 이제는 명분을 띄우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만화산업이 산다. 200억 원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에서 계산기로 발전하는 하나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의 입찰 공고를 다시 보자.
도대체 저 영어 대문자는 무엇일까? [BPR]은 ‘만화유통경로 재설계’이고 [ISP]는 ‘만화유통경로 정보화전략 계획’이란다. 그러니까 결국은 유통경로를 뒤집어엎고 다시 짜는 계획을 세워 보라는 공개 입찰인 셈이다.
이렇게 재편하자면 그 기초 조사로 현재 유통경로의 실상과 문제점을 정리해야 하고 만화산업 전체의 시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경로(중복만 빼면 반은 성공이다)를 구축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의 실적이 공개되고 그에 따른 세금이 늘 것이다. 그게 두려워서 지금까지 안했으니 세금 증가는 상식적 예상이다. 따라서 이 재편을 제대로 적용하자면 출판사의 손실을 쓰다듬어 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세제 혜택의 방식.
여하튼 주먹구구의 만화판은 창작만화의 기획출판, 계약문화의 개선, 만화심의와 창작 여건의 문화적 성숙, 만화소비 문화의 변화,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이 어느 하나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각 부분은 층층이 쌓은 댐이 아니라 세로 기둥으로 만든 댐과 같아서 어느 하나만 빠져도 만화는 중환자와 같다.
공자님 말씀이지만 각자가 변해야 한다. 만화방도 변해야 하고 지금 여기에서 만화를 보는 손님이나 내일 낮에 서점에 가서 만화를 사는 손님이나 책 들고 오는 외무나 총판장이나, 출판사나 작가나 정책 담당자나 모두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 만화가 있는 방향으로 자세를 틀면 만화가 보인다. 돈 쳐다보지 말고.
2004년 2월 18일
주 모씨
# by | 2005/06/01 00:53 | 딴지 거는 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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