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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쉽게 풀어 쓴 도서대여권

(아래 글은 한국만화 시장에서의 대여권 논의 배경, 필요성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최대한 쉽게 풀어서 써 달라는 편집부의 요청을 반영하여 작성한 글이다. 편집 과정에서 원문과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 논조는 원문과 같다.)

쉽게 풀어 쓴 도서대여권
-저작권법 개정이 우리 만화계에 필요한 까닭-


주모씨




이 글을 대할 독자는 [허브]의 구매자로 적극적인 만화 소비자이니 당연히 만화계의 논쟁, 도서대여점 딜레마에 저마다의 견해가 있을 것이다. ‘짧고 쉽게’ 요약한 이 글이 각자의 의견에 참고가 되어 한국만화 발전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한국의 만화소비자 중 89%는 만화방이나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본다. 그러나 만화방에서만 보는 대본만화(무협만화 시리즈 물 같은 작품들)나 성인만화 등을 제외하고 유명 작가의 순정만화 경우는 서점에서 판매됨과 동시에 대여점에서 싸게 빌려 볼 수 있으니 작가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독자에게 전할 지 결정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만화 시장은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뿐이다. 원래 책에 대한 권리는 국제적으로 ‘작가가 책을 팔면 그것을 산 독자에게 모든 권리가 넘어 간다’는 것이 일반원칙(베른협약의 최초판매이론 혹은 권리소진원칙)이다. 서점에서 책을 산 독자가 그것을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시장에 팔더라도 작가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업적인 대여’라는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맺어진 약속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의 대여시장 존재가 국제적인 일반원칙의 예외로 다른 약속이 필요한 까닭이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대여점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대여시장에 대한 새로운 원칙이나 약속의 필요성 제기는 1994년, 소설을 출간하는 고려원 출판사가 시초였는데 그 이후 논의 과정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으므로 논외로 하고 2005년 3월 현재의 상황으로 살펴본다. 만화계에서 구상한 대여시장 해법-작가의 시장 선택권에 의한 시장 분리-은 작년 말까지 문화관광부와 저작권과 등 해당부서와 함께 완성의 단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올 해 3월, 정부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입법 발의한 저작권법이 전면 개정에 포함되어 도서대여권이 신설될 상황으로 변화됐다. 특별한 시장에 의한 특별한 약속이 법으로 제정되는 것이니 만화계에 관심 있는 이들은 ‘이제야 해결됐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 개정안의 내용은 본질적 목표를 이루어 줄 약속이 아니다.

제20조(배포권)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지닌다.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당해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이를 계속하여 배포할 수 있다.

제47조(도서대여에 대한 보상) ① 제20조 단서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인쇄의 방법으로 발행된 도서를 대여하는 자는 문화관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의한 보상금을 당해 저작재산권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이 조항을 풀어서 설명하면 “책을 산 사람은 다른 이에게 계속 배포할 수 있지만 대여점은 책의 배포로 돈을 버니 전체 도서의 이용요금을 정부가 걷어서 작가에게 준다”라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고 우리나라 정부의 작가보호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외국의 경우, 작가를 보호하더라도 정부의 장관이 개별 저작물의 요금을 정하고 직접 걷어서 안 받겠다는 작가에게까지 돈을 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법을 설명하는 3월 8일의 국회 공청회에서 작가들조차 ‘반대’를 했다. 왜 그랬을까?

처음으로 돌아가 특수한 시장의 약속이 담아야 할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독자들이 대여시장을 이용함과 동시에 이 시장에만 작품을 내는 작가들이 현존한다. 그 독자와 작가 그룹은 ‘만화, 무협/환타지 소설’ 분야이다. 물론 이들 그룹 중에서도 자신의 작품이 서점에서 팔리는 작가도 존재한다. 이렇게 시장의 판매와 대여는 다양한 경로를 지니고 독자와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 중 어떤 작가는 대여점으로 손해를 보고 어떤 작가는 생존을 하고 어떤 작가는 아예 관계가 없는 등 혼란한 시장이다. 그런데 위에 나온 개정안의 법은 ‘모든 도서를 대여 허락하고 대여점은 이용요금을 내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런 까닭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서점에서 팔지, 서점에 팔고 대여점에 팔지, 아니면 그냥 대여점에 처음부터 팔지 선택할 재량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주장은 ‘작가의 시장 선택권을 보상금 몇 푼에 죽여 버린 제도’라며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법의 한계이다. 어떠한 권리를 법으로 만들 때, 그 권리가 미치는 범위를 법에 명시해야 하고 이 경우에는 ‘도서’로 묶어진다. 즉, ‘만화방용 만화는 이렇게 하고 순정만화 중 유명 작가의 만화는 저렇게 하고, 일본 만화는 또 요렇게 하고 무협소설은 이렇게 한다’라는 세부적인 규정을 법이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도서는 이렇게 한다’가 법이 세부적으로 말할 수 있는 최대 범위이다.

또한 권리의 주체인 작가가 스스로 시장을 선택하는 방법을 정하는 것도 법에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작가는 이중 정가제, 어떤 작가는 시차제, 어떤 작가는 허락, 어떤 작가는 거부라고 법이 정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법의 ‘일반화 원칙’이다. 진지하지는 않지만, 예를 들자면 도로교통법에서 ‘무단횡단’은 불법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을 세세하게 ‘한 쪽 발로 뛸 경우, 세발 짝 이내로 시도하다가 말았을 경우, 경찰이 못 봤을 경우, 무사히 건넜을 경우’ 등으로 세부 규정을 두지는 않는다.


이러한 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좀 더 만화작가와 만화계의 요구였던 ‘작가의 시장 선택권 과 시장의 분리’를 감안했다면 ‘일괄적인 보상청구권’이라는 패착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할 즈음에 이광철 의원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수정안을 재발표하겠다고 했다.

수정안에 포함될 것은 ‘시장의 대원칙’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리게 하려면 어떻게 한국 시장에 풀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지원하면 된다. 이 부분은 작가와 출판사가 똑같이 원하는 목적이므로 작가와 출판사가 출판계약을 할 때 그 방법을 고민하고 서점과 대여시장에 배포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지켜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시장 원칙에 의해 어떤 작가는 대여점에 추가 이득을 요구할 수도 있고 그냥 허락을 할 수도 있으며 서점에서 진검승부를 할 수도 있다.

대여권 논쟁으로 만화계가 비효율적인 싸움에 묶여 있는 동안 중요한 여러 문제들의 관심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므로 대여권 논쟁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인 만화 인식의 개선이나 창작역량의 강화, 표현의 자유, 문화산업으로서의 폭발적 성장을 꾀할 접근으로 역량을 모을 수 있다. 어떻게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는 이미 오랜 논의 과정에서 도출되어 있다. 만화계의 논의를 담은 수정안이 입법된다면 저작권 보호와 만화산업 발전은 ‘저 만큼에서 이 만큼’으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계기를 놓치지 말아야 할 당사자는 정부나 의원이 아니라 만화작가와 만화산업계의 모든 종사자들이다.(끝)

월간 허브 200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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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4. 9.

주 모씨.
(잡지 구매 전이라 편집 후의 글을 확인하지 못하였음)

by 쥬피터 | 2005/05/31 22:46 | 기고/발표/연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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