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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화]ㅣ쟁점ㅣ어른의 하초적 단견에 분노하는 만화

ㅣ 쟁점 ㅣ 어른의 하초적 단견(下焦的 短見)에 분노하는 만화


주 모씨




연말을 강타한 해일 재앙과 2005년 새해 분위기에 잠겼지만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의 강진 진원지는 밀양이었다. ‘청소년’들이 ‘장기간’,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밀양 사건’은 언론 보도에 힘입어 전 사회의 경악을 불러 왔다. 사건 자체로도 충분히 개탄할 만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국민적 분노를 유발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 혹은 ‘부모’의 인식이다. 피해자와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을 가해자의 어머니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담당 경찰의 일부 행태가 보도되자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갔다.

먼저 가해자 부모의 언론 인터뷰를 보자.

“왜 피해자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합니까? 왜 그래야 되는데요? 우리가 지금 피해 입은 건 생각 안 합니까? 딸자식을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여자애들이 와서 꼬리치는데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애가 어디 있으며(하략)”

인터뷰의 부분 발췌란 앞뒤 문맥을 자를 경우, 의도한 바를 그대로 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지만 이 경우는 본말 전도가 아니라 그저 말 그대로이다. 이런 발언은 사실 ‘성매매 특별법’ 논란 때 배불뚝이 남자 의원들이 ‘젊은이들이 성 욕구를 어떻게 풀라고 그걸 막느냐?’는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철저히 ‘남성 하초적인 사고방식’이다. 이 인터뷰를 보고 내용상 아버지(남성으로서)의 인터뷰인 줄 알았으나 화면에 보니 피의자의 ‘어머니’란다. "딸을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 아들 잘 키워서 치마 뒤집게 만든 게 잘 키운 것이더냐? 청소년보다 어른의 잘못이 더 큰 것이 밀양 사건이며 그래서 더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마초’보다 저급한 ‘하초적’ 인식이 만연된 사회

피해자였던 여학생들을 조사한 수사관 또한 집단으로 조사받는 피의자들을 직접 대질시키고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한 것은 물론 노래방에서의 비하 사건으로 남성 어른의 하초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인권위원회는 이들을 성폭력 피해자 보호 관련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고 확인했지만 그 이전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하초적이니 더 무엇을 기대하랴.

여기에 학력 높으신 박사도 [도덕 불감증에 걸린 인터넷 세상]이란 제목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밀양 집단성폭력 사건 인터넷 도덕불감증에 원인>

최근 경남 밀양에서 일어난 청소년들의 집단적 성폭력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며 엽기적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무엇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이 사건의 중요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도덕불감증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의 콘텐츠들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들을 지나치게 많이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상업주의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인터넷에서도 다양한 포르노, 폭력물, 아동 성학대 사진 등이 범람하고 있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이토록 부도덕한 콘텐츠를 통하여 세뇌되고 모방하는 현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비책은 잘 안 보인다.

인터넷의 도덕불감증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선 인간은, 특히 청소년들은 예민하고 왕성한 경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이 보고 듣는 주된 일상 경험들은 무엇인가? 학교나 학원에서는 주로 입시준비에 시달린다. 그리고 남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컴퓨터에 매달려서 게임, 아니면 인터넷을 통한 각종 채팅, 각종 사이트 방문 등등으로 보낼 것이다. 이들에게 인기 있는 내용물은 주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들 아니면 엽기적인 콘텐츠로 가득하다.

둘째로 인터넷의 내용물들에 대한 규제나 도덕적 통제 장치는 거의 없고, 있다하더라도 실제로는 의미가 없다. (중략) 셋째로 인터넷의 도덕적 부작용에 대하여 교육기관들의 무관심, 무대책이다. 청소년들을 쉽게 통제하는 일에만 익숙한 교육기관 종사자들은 빠르고 강력하게 자라나는 인터넷의 독버섯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 (중략) 넷째로 청소년들에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오락, 스포츠, 자연환경 등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책임 있는 기관이나 단체가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중략)

마지막으로 경남 밀양의 집단 성폭력 사건의 전개 과정은 인기 만화들에서는 여러 장면에 소개된 내용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밀양의 고교생들은 만화책의 내용을 일부 실천했을 뿐일 것이다.

분명한 점은 밀양 사건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꿈나무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시급한 과제이며, 교육, 문화정책의 근간이다. -신학박사 변희선(업 코리아. 2004년 12월 13일)




마지막 한마디가 압권이다. ‘아마도 만화책의 일부 내용을 실천했을 것이다’라니? 과학보다 상위라는 신학을 박사학위까지 마친 분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집단 성폭력이 인기 만화에만 있던가? 성서에도 온갖 성폭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나? 대중문화에만 있던가? 순수문학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않나? 게다가 '아마도 실천'이라니, 이 무슨 말인가?

만화의 특정 소재가 늘 사회의 지탄을 받아 온 것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리고 만화의 '수용자 영향에 대한 연구'도 많이 있었다. 전자는 만만한 '만화 쥐어박기'이며 후자는 '선별적 근거 인용'임을 다시 거론해야 한다는 것이 ‘만화의 분노’이다.

변 박사의 말대로 ‘아마도 만화의 내용을 실천했을 것’이라면 모든 창작물에 나타난 이야기들부터 성서까지의 일부 부정적 내용이 사회의 해악으로 만연되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아내와 아들들을 죽인 헤롯처럼, 부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강간한 왕처럼, 남색을 하던 민족들처럼, 곰을 시켜 아이들을 떼로 찢어 죽인 선지자처럼, 혼인을 빙자하여 노동을 착취한 아버지처럼, 관자놀이에 쇠말뚝을 박아 죽이는 살인 묘사처럼.




근거 없는 ‘만화’ 매도는 지성의 빈곤을 드러낼 뿐

만화에는 성폭력도 있고 따뜻한 가정도 있고 진지한 성찰도 있다. 어느 하나가 만화일 수도 없다. 그러니 제발 자기 입에 필요한 부분만 끌어다가 ‘아마도’ 그것을 ‘실천했을 것이다’라고 내뱉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사회적 도적자요 정신적 인도자로 합당한 시각도 아니며 자신을 우러러 보게 하지도 않는다. 단지 만화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인식을 한 번의 자기 판단 없이 그저 받아들이고 때 되면 다시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만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몇 편 읽고 그렇게 매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식의 모자람이며 학자의 그릇된 치우침이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입장에서 발표된 보고서도 그만큼 많으며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려면 긍정적 영향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 박사가 학문적 배경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만화의 부정적 영향과 청소년의 인식 왜곡'이 진리라면 미국의 아이들이 빨간 팬티를 바지 위에 입고 하늘을 날다 추락사하는 것이 매년 보도되어야 하지 않는가?(끝)



<우리만화> 2005년 1월호(통권 20호)



2005. 1. 28.

주 모씨.

by 쥬피터 | 2005/05/31 22:19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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