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5월 31일
[좋은 아빠] 코 닦으며, 침 바르며 넘기던 그 책장
얼마 전, 격월간 잡지 [좋은 아빠]에서 기획 꼭지인 '추억이 떠오른다'에 만화가게를 담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오랫 만에 60년대, 70년대 어쩌구 하니 거울처럼 내 현재가 비춰진다.
쉽게 말하자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단 거다. 휴~
원제는 ['꺼벙이'가 된 아이]였는데 수정됐다.
원문이라 일부 내용은 책과 다르다.
주 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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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떠오른다 ⎟만화가게
'코 닦으며, 침 바르며 넘기던 그 책장'
어린 날의 기억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되살아나곤 한다. 심지를 갈던 석유난로와 골목을 소독하던 연기의 냄새, 가을 풀벌레 울음과 소여물 끓는 소리, 머리에 난 둥근 기계충 탈모의 매끄러운 감촉이 그렇다. 그 기억의 되살아남 속에 별책 부록과 함께 한 만화잡지들이 있다.
1970년대란 기억에서조차 칼라보다는 흑백 톤으로 남아 있다. 만화책이 그랬고 TV가 그랬다. 196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형들과 달리 나는 만화가게와 흑백 TV를 보면서 마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됐다. 당시의 만화가게는 지금처럼 번듯하기보다는 문방구 한 쪽에 나무 의자를 몇 개 놓고 만화를 보여주는 길 가의 허름한 집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뻔데기 냄새와 풀빵도 구워서 파는 그런 가게였다. 지금의 만화방은 어른들의 공간으로 변했지만 그 때는 열 살 전후의 아이들 공간이었다. 어쩌면 내 나이의 변화에 맞춰 만화가게가 변한 것이라고 억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꺼벙이' 친구와 누렁이 '로뎀'
초등학교를 마친 우리들은 동전 몇 개를 들고 만화가게 유리문을 여는 것이 일과가 됐다. 당시엔 왜 그렇게 코 흘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코 닦으랴 손에 침 바르랴 만화 보랴 옆에 놈 만화도 같이 보랴 혹시 문 열고 들어오는 부모님 있으랴’하고 조용하지만 엄청 분주한 시간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경(三昧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소년중앙>과 <만화왕국>이란 만화잡지가 나왔다. 물론 어른들이 보던 <선데이 서울>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꺼벙이]와 [도깨비 감투], [주먹대장], [심술통], [강가딘], [맹꽁이 서당] 등 우리 또래를 주인공으로 그린 명랑만화들이 있었다. 명랑만화와 함께 형들을 그렇게 뒷산으로 뛰어 다니게 만든 [라이파이]로 시작된 공상과학 만화들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물론 공상과학 만화들은 만화가게는 물론, 60년대에 등장한 TV 만화영화에 더 많이 치우쳐 있다. [로보트 태권 V],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철인 007], [정글대제 레오], [우주소년 아톰], [요괴인간 벰], [로보트 킹], 그리고 [바벨2세]까지 상상의 만화 날개는 넘쳐났다. 지금은 일본 작품이라는 구분이 있지만 당시엔 그저 만화영화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빨간 보자기라도 하나 뒤집어쓰면 지구를 구하는 용사로 변신하곤 했다. 집에 있는 누렁이는 검은 털이 아니어도 ‘로뎀’으로 불렸고 친구 중 한 명은 꼭 ‘꺼벙이’로 불리곤 했다. 이사를 가는 친구 한 녀석이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 듯 전해준 보물지도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뒷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을 표시한 대로 가보니 낙엽 아래 종이 박스가 있었다. 내용을 보니 구슬 200여 개, 딱지 천여 장, 그리고 만화책들. 깊은 우정의 표시가 그 때는 이런 식으로 충분히 전달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키득거리던 어린 시절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 우리 또래들은 가난한 시대를 살아 왔지만, 어쩌면 만화에 한해서 축복받은 세대인지도 모른다. 명랑만화 붐과 만화영화 방송에 묻혀 자랐고 성장기에는 [독고탁], [각시탈] 등의 만화에 열광했다. 학교를 마친 뒤에도 [공포의 외인구단] 등의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으로 만화가게를 찾게 되었으니 그 궤적이 ‘동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아이들이 명랑만화의 추억보다 일본만화영화가 더 가깝고 만화가게의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 비교하면 우린 한국 만화의 성장에 고스란히 함께 있는 유일한 세대처럼 보인다.
만화 외적인 삶에서는 그리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어서 우린 어설프지만 세상을 향해 부르짖고 길거리에서 함성을 외치다 스무 살 좋은 시절을 보냈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사회인이 되고 그렇게 기성세대로 스며들어 갔다. 이제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하는 나이에 들어 그 아이들을 통해 예전의 자신을 그리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아졌다. 그 낯설지 않음에 역시 만화가 또 다가온다.
만화는 그저 한 때의 추억이었을까? 초등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만화가게 주인이 되겠다는 아이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박재동 화백이 그랬듯이 만화가게 주인은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그 매력에 빠졌던 아이들 중에 나도 있었다. 386세대는 옆을 돌아보기 보다는 앞만 바라보고 온 시간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삶을 돌아 볼 나이가 되었을 때 회한이 많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 돌아본 자신은 알맹이 없는 몸 같았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자신에 대한 반감처럼 시작된 이 물음은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는 몸짓으로 진전됐다. 그것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차린 지금의 만화방이다.
만화잡지 중에 유독 아쉬웠던 <만화광장>을 간판으로 한 지 벌써 6년이 되어 간다. 철저하게 준비해 온 장래의 희망은 아니었으니 그저 한때의 꿈이었다는 표현이 옳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자기의 꿈을 이룬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이런 꿈을 담아 책을 하나 냈더니 신문기자들의 질문이 한결 같았다. “왜 만화가게를 차리게 됐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였다. “좋아하니까요.”
좋은 추억의 재경험은 삶의 활력이 된다. 최근 복고 분위기에 힘입어 복간되는 만화책들이 많다. 서점에서 팔리는 이 만화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의 승차권을 받은 것과 같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키득’거리며 웃었던 어릴 적 자신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에 함께 하시길 권유한다.(끝)
주 모씨
[격월간 좋은 아빠] 2004년 5/6호
오랫 만에 60년대, 70년대 어쩌구 하니 거울처럼 내 현재가 비춰진다.
쉽게 말하자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단 거다. 휴~
원제는 ['꺼벙이'가 된 아이]였는데 수정됐다.
원문이라 일부 내용은 책과 다르다.
주 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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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떠오른다 ⎟만화가게
'코 닦으며, 침 바르며 넘기던 그 책장'
어린 날의 기억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되살아나곤 한다. 심지를 갈던 석유난로와 골목을 소독하던 연기의 냄새, 가을 풀벌레 울음과 소여물 끓는 소리, 머리에 난 둥근 기계충 탈모의 매끄러운 감촉이 그렇다. 그 기억의 되살아남 속에 별책 부록과 함께 한 만화잡지들이 있다. 1970년대란 기억에서조차 칼라보다는 흑백 톤으로 남아 있다. 만화책이 그랬고 TV가 그랬다. 196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형들과 달리 나는 만화가게와 흑백 TV를 보면서 마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됐다. 당시의 만화가게는 지금처럼 번듯하기보다는 문방구 한 쪽에 나무 의자를 몇 개 놓고 만화를 보여주는 길 가의 허름한 집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뻔데기 냄새와 풀빵도 구워서 파는 그런 가게였다. 지금의 만화방은 어른들의 공간으로 변했지만 그 때는 열 살 전후의 아이들 공간이었다. 어쩌면 내 나이의 변화에 맞춰 만화가게가 변한 것이라고 억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꺼벙이' 친구와 누렁이 '로뎀'
초등학교를 마친 우리들은 동전 몇 개를 들고 만화가게 유리문을 여는 것이 일과가 됐다. 당시엔 왜 그렇게 코 흘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코 닦으랴 손에 침 바르랴 만화 보랴 옆에 놈 만화도 같이 보랴 혹시 문 열고 들어오는 부모님 있으랴’하고 조용하지만 엄청 분주한 시간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경(三昧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소년중앙>과 <만화왕국>이란 만화잡지가 나왔다. 물론 어른들이 보던 <선데이 서울>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꺼벙이]와 [도깨비 감투], [주먹대장], [심술통], [강가딘], [맹꽁이 서당] 등 우리 또래를 주인공으로 그린 명랑만화들이 있었다. 명랑만화와 함께 형들을 그렇게 뒷산으로 뛰어 다니게 만든 [라이파이]로 시작된 공상과학 만화들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물론 공상과학 만화들은 만화가게는 물론, 60년대에 등장한 TV 만화영화에 더 많이 치우쳐 있다. [로보트 태권 V],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철인 007], [정글대제 레오], [우주소년 아톰], [요괴인간 벰], [로보트 킹], 그리고 [바벨2세]까지 상상의 만화 날개는 넘쳐났다. 지금은 일본 작품이라는 구분이 있지만 당시엔 그저 만화영화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빨간 보자기라도 하나 뒤집어쓰면 지구를 구하는 용사로 변신하곤 했다. 집에 있는 누렁이는 검은 털이 아니어도 ‘로뎀’으로 불렸고 친구 중 한 명은 꼭 ‘꺼벙이’로 불리곤 했다. 이사를 가는 친구 한 녀석이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 듯 전해준 보물지도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뒷산 큰 나무를 기준으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을 표시한 대로 가보니 낙엽 아래 종이 박스가 있었다. 내용을 보니 구슬 200여 개, 딱지 천여 장, 그리고 만화책들. 깊은 우정의 표시가 그 때는 이런 식으로 충분히 전달됐다.
타임머신을 타고 키득거리던 어린 시절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 우리 또래들은 가난한 시대를 살아 왔지만, 어쩌면 만화에 한해서 축복받은 세대인지도 모른다. 명랑만화 붐과 만화영화 방송에 묻혀 자랐고 성장기에는 [독고탁], [각시탈] 등의 만화에 열광했다. 학교를 마친 뒤에도 [공포의 외인구단] 등의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으로 만화가게를 찾게 되었으니 그 궤적이 ‘동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아이들이 명랑만화의 추억보다 일본만화영화가 더 가깝고 만화가게의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 비교하면 우린 한국 만화의 성장에 고스란히 함께 있는 유일한 세대처럼 보인다.
만화 외적인 삶에서는 그리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어서 우린 어설프지만 세상을 향해 부르짖고 길거리에서 함성을 외치다 스무 살 좋은 시절을 보냈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사회인이 되고 그렇게 기성세대로 스며들어 갔다. 이제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하는 나이에 들어 그 아이들을 통해 예전의 자신을 그리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아졌다. 그 낯설지 않음에 역시 만화가 또 다가온다.
만화는 그저 한 때의 추억이었을까? 초등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만화가게 주인이 되겠다는 아이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박재동 화백이 그랬듯이 만화가게 주인은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그 매력에 빠졌던 아이들 중에 나도 있었다. 386세대는 옆을 돌아보기 보다는 앞만 바라보고 온 시간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삶을 돌아 볼 나이가 되었을 때 회한이 많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 돌아본 자신은 알맹이 없는 몸 같았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자신에 대한 반감처럼 시작된 이 물음은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는 몸짓으로 진전됐다. 그것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차린 지금의 만화방이다.
만화잡지 중에 유독 아쉬웠던 <만화광장>을 간판으로 한 지 벌써 6년이 되어 간다. 철저하게 준비해 온 장래의 희망은 아니었으니 그저 한때의 꿈이었다는 표현이 옳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자기의 꿈을 이룬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이런 꿈을 담아 책을 하나 냈더니 신문기자들의 질문이 한결 같았다. “왜 만화가게를 차리게 됐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하나였다. “좋아하니까요.”
좋은 추억의 재경험은 삶의 활력이 된다. 최근 복고 분위기에 힘입어 복간되는 만화책들이 많다. 서점에서 팔리는 이 만화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의 승차권을 받은 것과 같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키득’거리며 웃었던 어릴 적 자신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에 함께 하시길 권유한다.(끝)
주 모씨
[격월간 좋은 아빠] 2004년 5/6호
# by | 2005/05/31 20:13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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