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5월 31일
[책과 함께 여는 세상] 독서지도교사와 학부모에게
만화는 나쁜 것인가?
-독서지도교사와 학부모에게-
가깝고도 먼 만화
최근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한해 평균 5.8권의 만화를 읽는다. 연령별로는 20대(22권)가 가장 많고 10대(18.9권)-30대(11.4권)-40대(10.5권)-50대(0.9권) 순으로 만화를 즐겨 본다. 이 조사에 10대 미만과 초반의 초등학생이 별도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 수치는 만화 보기가 일반적임을 알게 한다.
예전 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에는 만화가 유일한 놀이문화였으나 지금은 게임 등과 함께 선택적 놀이의 하나이다. 또한 이전에는 출판만화만이 유일한 만화보기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TV와 스크린, 인터넷과 핸드폰의 액정화면에서도 만화를 보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른 게임이나 오락거리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와 연관되어 보내는 시간이 줄어 든 것은 아니며 아이들에게 여전히 친숙한 놀이문화의 하나이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만화는 아이들에게 유해한 매체라는 어른들의 인식이다.
1845년에 '로돌프 퇴퍼'가 '그림 이야기는 주로 어린이와 하층민을 겨냥한다'라고 말한 의식에서 몇 걸음 나가지 않은 우리의 만화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는 예술을 고급과 저급으로 양분하는 과거의 사회문화적 분류로 대중지향의 만화를 저급한 문화로 몰아붙인 결과이다.
일부 교육적 만화의 순기능이 주목받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만화는 불량한 것으로 더 쉽게 치부되어 있다. 사회적으로도 1970년대에는 '만화 불사르기' 행사가 어린이들을 앞세우고 관제 행사로 진행됐으며 최근까지도 불량 도서 추방 운동이 만화를 주요 대상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리에 만화가 있고, 아이들은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제한이다. 거기에 더해진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의 모호한 개념은 어른들마저 혼란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어른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만화보기를 권장 혹은 지도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차단 대상으로 몰고 가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만화의 두 얼굴-산업과 문화
1995년은 만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한 실사영화(實寫映畵)가 전체 산업 규모 32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처음으로 만화영화가 35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한 첫 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화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재패니메이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사 영화에 삽입된 디지털 애니메이션 등의 촬영 부분까지 포함된 것이다. 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그림1)만이 만화영화가 아니라 [터미네이터 3]에도 만화 촬영이 포함되어 있다.
만화산업의 폭발적 가치 증가로 애니메이션은 차세대 문화 강국을 꿈꾸는 각 나라에서 중요한 산업 방향으로 자리했고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들어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콘텐츠(contents)'와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는 표현에는 '만화'가 중요한 원천으로 거론된다. 정부의 문화정책과 산업 정책에도 만화에 대한 지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러한 산업적인 결과를 향한 것이다.
그러나 만화영화로 변화의 정점을 이루는 만화의 뿌리는 '출판 만화'이다. 만화처럼 다양하게 타 문화예술로 확산되고 발전하는 장르를 찾기란 어렵다. '윈도우 효과(window effect)'로 불리는 만화의 다양한 변화 능력은 만화의 속성에 의해 부여된 장점 중 하나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르가 만화이며 산업적으로도 표현 여건이 가장 수월하다. 이는 창작 표현의 투자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가장 적다는 비교우위를 뜻한다. 동일한 스토리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영화나 연극으로 만드는 것보다 만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저렴해서 상상을 표현하기가 적절하다는 소극적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의 예로 7월 28일에는 방학기 원작의 만화 [다모]가 TV 특집 드라마로 방송된다. 이처럼 만화 원작이 드라마나 영화, 연극으로 변화되는 사례가 흔한 것은 만화의 다양한 스토리 소재 중에서 작품성과 상업성이 검증된 작품을 타 매체로 전환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업적으로 만화를 떠받드는 지금의 상황에서 변환형태인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산업에 치중하는 접근은 올바르지 않다. 발전형의 근간이 되는 출판 만화에 대한 인식부터 고쳐야 올바른 접근 방식이 된다.
그러나 출판만화에 대한 현실 인식은 산업적 접근과 환대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만화는 '불량'한 것으로 법에 명시되어 있고, 국민 만화가라고 불리는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라는 작품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몇 년간 지루한 법정 투쟁에 휘말린 것도 웃지 못할 현실이다. 모 방송국의 도서 권장 프로그램이 만화를 본다는 독자에게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응대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러한 예를 제외하더라도 우리 주변의 가정에서 만화를 보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듣는 소리는 늘 같다. '만화책 안 갖다 버릴거야?'라는 말에는 만화가 아이들에게 나쁜 것, 불필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두 가지의 시각이 공존하는 우리의 왜곡된 상황이 만화를 멍들게 하고 아이들을 멍들게 한다.
만화는 유해한가?
만화가 유해하다거나 무해하다는 논란은 얼마 전 까지도 압도적 유해론이 주류를 이뤘다. 일부 무해론을 펴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저 소수 의견일 뿐이었다. 사회적으로 만화가 나쁘다는 실례를 들어 이슈화되는 일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동생을 목 졸라 죽인 형이나, 이 달 초에 초등학생 몇이 학교 내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 만화를 보고 따라했다는 진술은 '만화 유해론자'들이 즐겨 애용하는 사례들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있었다.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은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하위 대중문화의 폐해나 유해를 주장할 때 거론된다. 1988-1989년에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 범인은 어린아이들만 4명을 살해하고 그 중의 시신 한 구는 가족 앞으로 배달까지 했는데 이 때 사용한 이름이 '이마다 유코'였다. 이 이름은 만화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범인 체포 당시에 그 집에는 수천 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만화들이 발견되어 유해론의 주요 사례로 활용된다.
또한 일본을 경악에 빠트린 옴 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 때에도 만화는 도마에 올랐다. 이 집단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는 포교의 수단으로 만화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교주가 구상한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 자체가 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인기를 얻은 [아키라]나 [미래소년 코난], [우주전함 야마토] 등에 설정된 '아마겟돈', '지진폭탄' 등이 옴 진리교 이념의 기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만화가 나쁘다는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앞의 사건들은 몇 가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의 사회적 일탈을 원인 분석할 때 전문가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만화이다. 즉 만화의 폭력 장면을 클로즈 업해서 보여 주고 이러한 만화를 따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한다. 학생들이 교내 서클로 '일진회'를 결성하였을 때도 당연히 그 근거로 폭력 서클이 등장하는 일본 만화(그림2-[rokudenashi blues])가 소개되는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함의는 사회적으로 진지한 접근을 요구하고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과정에서 만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사회 현상에 꿰어 맞춘 희생물로써의 매도가 우선되었다. 만화를 창작물로 판단하기보다 만화 유통과 주변 환경을 만화라는 매체가 뒤집어 쓴 결과이다. 그 결과로 만화 유해론은 일반론이 되어 버렸다.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들
우리 만화사에서 학술적이거나 문화적인 접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산업적인 접근에 비해 미미한 상황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와 관련한 몇 몇의 연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 트론트 대학 심리학과 '조너선 프리드먼' 교수는 '폭력적 표현이 어린이의 폭력성향을 강화시키거나 범죄율을 높이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퓰리처 상 수상자인 '리하르트 로즈'는 그의 저서 [Why They Kill]에서 '미디어의 의사 폭력을 접하는 것이 사람을 공격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견에는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그런 장면이 사람을 더욱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증거가 존재한다'고 썼다.
또한 유해 만화의 대표적인 대상인 일본 만화와 관련하여 정신과 의사이며 소설가인 후쿠시마 아키라는 그의 저서 [만화와 일본인]에서 '외설물에 대한 노출이 성범죄를 비롯하여 비도덕적 행동을 초래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미국인이며 일본통인 '프레드릭 L. 쇼트'는 미국과 일본의 만화 판매량과 살인 및 강간 사건의 수치 비교를 통해 만화의 범람이 범죄의 범람과 관련이 없거나 정반대의 결과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의 만화 판매량과 살인범의 수를 연도별 비교한 결과(그림3-도표)로도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출처:[이것이 일본만화다] 다섯수레. 1999)
실제 이러한 자료들 외에 만화의 수용자인 어린이에게 만화의 내용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명백한 근거는 지금까지 보고된 자료가 없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작한 것이 아닌 성인용 만화의 특정 장면이나 어린이용 만화 중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본 어른들이 전체 만화를 유해한 매체로 몰고 가는 것은 그릇된 확대 적용이다. 프레드릭의 말을 빌리자면 '[슈퍼맨]을 읽은 수백만의 미국 아이들이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이러한 적용이라면 문화예술 중에 유해하지 않은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시각에서 [영심이]의 작가인 배금택 씨의 재판 에피소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인용 만화인 [반금련뎐]으로도 유명한 이 만화가가 음란죄로 기소되었을 때 한 장의 사진을 재판정에서 자료로 제시했다. 그 사진은 남성의 생식기를 정밀하게 조각한 것이었다. 그 사진만으로는 당연히 음란물에 해당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유명 조각예술인 [생각하는 사람]의 부분 이미지였으며 작가의 주장은 전체에 속한 부분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이처럼 만화는 물론 대중 문화예술은 부분적으로 유해하다고 보이는 것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문화예술이나 만화 전체의 유해함으로 확대 적용될 까닭은 아니다.
어린이와 만화를 분리시키는 또 하나의 배경
한국 출판만화 시장은 현재 왜곡된 시장이라는 지적인 일반적인 판단이다. 왜곡의 사항 중 하나는 수용대별로 만화가 고르게 창작되지 않는 현실이 포함되어 있다.
출판만화가 전체 만화산업의 뿌리이듯이 어린이 만화는 만화보기의 시작이다. 이 시작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즐기는 대중문화이다. 즉, 어린 시절에 만화를 접해서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접하고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는 것이 일반적 전개이나 우리 실정은 청소년만화에 집중되어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 출판된 만화는 7,886권이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 이 출판만화의 접점은 80% 정도가 만화방과 대여점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 수용자를 조사한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료에 의하면 만화방의 경우 20대(39.0%)와 30대(36.0%), 대여점은 10대 이하(41.0%)와 20대(35.2%)가 주요 고객이다.
이 조사는 그만큼 청소년 이용이 높으며 만화 창작 또한 이들 주요 대상에 집중되어 있다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어린이용과 성인용 만화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현재 어린이용 만화는 학습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성인만화는 스포츠 신문과 만화방에서 보는 만화가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이러한 왜곡에서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명랑 만화(그림4-고전 만화들)는 단절된 상태이다. 이전부터 명랑 만화로 대변되는 어린이용 만화의 메시지는 '꿈, 우정, 용기' 등 건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만화적 상상력으로 창의력을 높이는데 일조를 해 왔다. 그러한 명랑 만화의 단절로 현재 어린이용 만화는 학습효과를 상승시키는 보조 도구로 전락해 있다. 그 결과로 어린이에게 만화의 한 형태인 학습만화만이 권장되고 원래의 만화매체는 배제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만화가 유해하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어린이가 볼 만한 만화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만화매체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만화가 갖는 근본적인 장점이 부분적으로 왜곡된 우려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과 그림이 결합되어 새로운 매체로 발전한 만화를 그저 학습 이전 단계로 사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만화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창의력'은 열린 사고에서 출발한다. 정형화되고 닫힌 틀에서 발상의 자유로운 전개는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창의력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이루어지고 이를 돕는 것에 만화는 적절한 도구가 된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의 장점은 그저 버리기보다는 이용해야 할 대상이다.
만화의 위력은 그 이해가 학력이나 국적에 무관하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학은 글을 알아야 이해가 되고 같은 언어권이라야 해독이 가능하다. 순수 미술은 작가의 메시지를 동일하게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양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문학은 그림을, 미술은 글을 배제하고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양극단으로 치닫던 두 문화는 이제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고 결합을 시도하는데 그 영역에 만화가 있다. 두 예술의 우성인자(優性因子)만을 취합하고 발전시킨 장르가 만화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성장은 그만의 독특한 시각기호를 무기로 발전했다. 인쇄의 발달과 대중매체의 출현으로 날개를 단 만화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의 영역을 확실히 표시하는 대중문화로 변모했다. 팝 아트의 대표자인 Lichtenstein의 회화(그림5-만화같은 회화)는 그 하나의 예시이며 영화의 만화적 표현방식 차용도 그 증거이다. 순수회화와 만화의 구분은 이제 질문 자체를 무색하게 한다.
문학과 미술이 어우러진 만화는 별다른 해독 능력을 필요치 않는다. 물론 이러한 장점은 대중문화예술의 공통된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래 연구가들은 만화라는 매체를 최대의 미래형 매체라고 분류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만화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시각과 상징을 종합하는 뉴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만화의 위력이 화제가 된 것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다. 어른들도 외우기 힘든 각종 신들의 이름을 어린아이들이 줄줄이 읊어대는 것을 보면서 만화의 학습효과가 뚜렷하게 각인 되었고 출판 만화계에 활황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가시고기]라는 작품으로 아이들의 감성 뿐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까지 자극한 것도 화제가 됐다. 이러한 열풍이 소설로도 가능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만화이기 때문에 쉽게 아이들이 몰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창의력과 감성의 습득은 어린 시절에 결정이 된다. 이 시기에 수용성이 높은 만화를 이용하는 것이 배척의 자세보다 옳은 선택이다.
어른들의 역할
지난 5월, 문화관광부는 '만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중 만화 인식 변화와 법 규제 개선에 대한 입장이 천억이 넘는 지원금보다 만화계의 지지를 더 받고 있다.
구체적인 법 규제 개선 사항 중 저작권, 심의 제도 개선과 함께 청소년보호법에 명시된 '불량만화'라는 문장을 삭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사회 구성원의 상식을 최소한으로 규정하는 것이 법이라는 의미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변화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만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하고 만화전문 교원의 시범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공공 문화시설의 만화 구입 장려로 만화가 당당히 문화의 한 자락으로 인정받아 가고 있다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제 만화가 유해하다거나 피하기만 하면 되는 대상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며 시대 상황이다. 앞으로의 고민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만화를 읽고 보게 할 것인가의 고민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만화 지도 교사가 점차 늘어나고 이에 대한 교사 교육도 실시되어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만화 보기의 지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좋은 만화 보기를 지도하는 방향제시가 연구되어야 하며 계몽되어야 한다.
오늘에 있어서 만화 보기를 배척하는 태도는 만화의 접근 용이성, 매체 자체의 장점, 시각상징어로서 신 매체 중요성 증대 등을 고려하여 변화되어야 할 자세이다.(끝)
2003. 7. 18
[책과 함께 여는 세상] 8월호
주 모씨
-독서지도교사와 학부모에게-
가깝고도 먼 만화
최근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한해 평균 5.8권의 만화를 읽는다. 연령별로는 20대(22권)가 가장 많고 10대(18.9권)-30대(11.4권)-40대(10.5권)-50대(0.9권) 순으로 만화를 즐겨 본다. 이 조사에 10대 미만과 초반의 초등학생이 별도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 수치는 만화 보기가 일반적임을 알게 한다.
예전 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에는 만화가 유일한 놀이문화였으나 지금은 게임 등과 함께 선택적 놀이의 하나이다. 또한 이전에는 출판만화만이 유일한 만화보기의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TV와 스크린, 인터넷과 핸드폰의 액정화면에서도 만화를 보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른 게임이나 오락거리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만화와 연관되어 보내는 시간이 줄어 든 것은 아니며 아이들에게 여전히 친숙한 놀이문화의 하나이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만화는 아이들에게 유해한 매체라는 어른들의 인식이다.
1845년에 '로돌프 퇴퍼'가 '그림 이야기는 주로 어린이와 하층민을 겨냥한다'라고 말한 의식에서 몇 걸음 나가지 않은 우리의 만화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이는 예술을 고급과 저급으로 양분하는 과거의 사회문화적 분류로 대중지향의 만화를 저급한 문화로 몰아붙인 결과이다.
일부 교육적 만화의 순기능이 주목받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만화는 불량한 것으로 더 쉽게 치부되어 있다. 사회적으로도 1970년대에는 '만화 불사르기' 행사가 어린이들을 앞세우고 관제 행사로 진행됐으며 최근까지도 불량 도서 추방 운동이 만화를 주요 대상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리에 만화가 있고, 아이들은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제한이다. 거기에 더해진 좋은 만화와 나쁜 만화의 모호한 개념은 어른들마저 혼란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어른들로 하여금 아이들의 만화보기를 권장 혹은 지도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차단 대상으로 몰고 가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만화의 두 얼굴-산업과 문화
1995년은 만화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문화예술의 한 분야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한 실사영화(實寫映畵)가 전체 산업 규모 32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처음으로 만화영화가 35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한 첫 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화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재패니메이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사 영화에 삽입된 디지털 애니메이션 등의 촬영 부분까지 포함된 것이다. 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그림1)만이 만화영화가 아니라 [터미네이터 3]에도 만화 촬영이 포함되어 있다.
만화산업의 폭발적 가치 증가로 애니메이션은 차세대 문화 강국을 꿈꾸는 각 나라에서 중요한 산업 방향으로 자리했고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들어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콘텐츠(contents)'와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는 표현에는 '만화'가 중요한 원천으로 거론된다. 정부의 문화정책과 산업 정책에도 만화에 대한 지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러한 산업적인 결과를 향한 것이다.
그러나 만화영화로 변화의 정점을 이루는 만화의 뿌리는 '출판 만화'이다. 만화처럼 다양하게 타 문화예술로 확산되고 발전하는 장르를 찾기란 어렵다. '윈도우 효과(window effect)'로 불리는 만화의 다양한 변화 능력은 만화의 속성에 의해 부여된 장점 중 하나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르가 만화이며 산업적으로도 표현 여건이 가장 수월하다. 이는 창작 표현의 투자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가장 적다는 비교우위를 뜻한다. 동일한 스토리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때 영화나 연극으로 만드는 것보다 만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저렴해서 상상을 표현하기가 적절하다는 소극적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의 예로 7월 28일에는 방학기 원작의 만화 [다모]가 TV 특집 드라마로 방송된다. 이처럼 만화 원작이 드라마나 영화, 연극으로 변화되는 사례가 흔한 것은 만화의 다양한 스토리 소재 중에서 작품성과 상업성이 검증된 작품을 타 매체로 전환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업적으로 만화를 떠받드는 지금의 상황에서 변환형태인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산업에 치중하는 접근은 올바르지 않다. 발전형의 근간이 되는 출판 만화에 대한 인식부터 고쳐야 올바른 접근 방식이 된다.
그러나 출판만화에 대한 현실 인식은 산업적 접근과 환대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만화는 '불량'한 것으로 법에 명시되어 있고, 국민 만화가라고 불리는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라는 작품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몇 년간 지루한 법정 투쟁에 휘말린 것도 웃지 못할 현실이다. 모 방송국의 도서 권장 프로그램이 만화를 본다는 독자에게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응대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러한 예를 제외하더라도 우리 주변의 가정에서 만화를 보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듣는 소리는 늘 같다. '만화책 안 갖다 버릴거야?'라는 말에는 만화가 아이들에게 나쁜 것, 불필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두 가지의 시각이 공존하는 우리의 왜곡된 상황이 만화를 멍들게 하고 아이들을 멍들게 한다.
만화는 유해한가?
만화가 유해하다거나 무해하다는 논란은 얼마 전 까지도 압도적 유해론이 주류를 이뤘다. 일부 무해론을 펴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저 소수 의견일 뿐이었다. 사회적으로 만화가 나쁘다는 실례를 들어 이슈화되는 일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동생을 목 졸라 죽인 형이나, 이 달 초에 초등학생 몇이 학교 내에서 성행위를 한 것이 만화를 보고 따라했다는 진술은 '만화 유해론자'들이 즐겨 애용하는 사례들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있었다.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은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 하위 대중문화의 폐해나 유해를 주장할 때 거론된다. 1988-1989년에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 범인은 어린아이들만 4명을 살해하고 그 중의 시신 한 구는 가족 앞으로 배달까지 했는데 이 때 사용한 이름이 '이마다 유코'였다. 이 이름은 만화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범인 체포 당시에 그 집에는 수천 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만화들이 발견되어 유해론의 주요 사례로 활용된다.
또한 일본을 경악에 빠트린 옴 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 때에도 만화는 도마에 올랐다. 이 집단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는 포교의 수단으로 만화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교주가 구상한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 자체가 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인기를 얻은 [아키라]나 [미래소년 코난], [우주전함 야마토] 등에 설정된 '아마겟돈', '지진폭탄' 등이 옴 진리교 이념의 기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만화가 나쁘다는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앞의 사건들은 몇 가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의 사회적 일탈을 원인 분석할 때 전문가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만화이다. 즉 만화의 폭력 장면을 클로즈 업해서 보여 주고 이러한 만화를 따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한다. 학생들이 교내 서클로 '일진회'를 결성하였을 때도 당연히 그 근거로 폭력 서클이 등장하는 일본 만화(그림2-[rokudenashi blues])가 소개되는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함의는 사회적으로 진지한 접근을 요구하고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 과정에서 만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사회 현상에 꿰어 맞춘 희생물로써의 매도가 우선되었다. 만화를 창작물로 판단하기보다 만화 유통과 주변 환경을 만화라는 매체가 뒤집어 쓴 결과이다. 그 결과로 만화 유해론은 일반론이 되어 버렸다.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들
우리 만화사에서 학술적이거나 문화적인 접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산업적인 접근에 비해 미미한 상황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와 관련한 몇 몇의 연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 트론트 대학 심리학과 '조너선 프리드먼' 교수는 '폭력적 표현이 어린이의 폭력성향을 강화시키거나 범죄율을 높이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퓰리처 상 수상자인 '리하르트 로즈'는 그의 저서 [Why They Kill]에서 '미디어의 의사 폭력을 접하는 것이 사람을 공격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견에는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그런 장면이 사람을 더욱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는 증거가 존재한다'고 썼다.
또한 유해 만화의 대표적인 대상인 일본 만화와 관련하여 정신과 의사이며 소설가인 후쿠시마 아키라는 그의 저서 [만화와 일본인]에서 '외설물에 대한 노출이 성범죄를 비롯하여 비도덕적 행동을 초래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미국인이며 일본통인 '프레드릭 L. 쇼트'는 미국과 일본의 만화 판매량과 살인 및 강간 사건의 수치 비교를 통해 만화의 범람이 범죄의 범람과 관련이 없거나 정반대의 결과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의 만화 판매량과 살인범의 수를 연도별 비교한 결과(그림3-도표)로도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출처:[이것이 일본만화다] 다섯수레. 1999)
실제 이러한 자료들 외에 만화의 수용자인 어린이에게 만화의 내용이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명백한 근거는 지금까지 보고된 자료가 없다.
그럼에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작한 것이 아닌 성인용 만화의 특정 장면이나 어린이용 만화 중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본 어른들이 전체 만화를 유해한 매체로 몰고 가는 것은 그릇된 확대 적용이다. 프레드릭의 말을 빌리자면 '[슈퍼맨]을 읽은 수백만의 미국 아이들이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이러한 적용이라면 문화예술 중에 유해하지 않은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시각에서 [영심이]의 작가인 배금택 씨의 재판 에피소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인용 만화인 [반금련뎐]으로도 유명한 이 만화가가 음란죄로 기소되었을 때 한 장의 사진을 재판정에서 자료로 제시했다. 그 사진은 남성의 생식기를 정밀하게 조각한 것이었다. 그 사진만으로는 당연히 음란물에 해당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유명 조각예술인 [생각하는 사람]의 부분 이미지였으며 작가의 주장은 전체에 속한 부분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이처럼 만화는 물론 대중 문화예술은 부분적으로 유해하다고 보이는 것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문화예술이나 만화 전체의 유해함으로 확대 적용될 까닭은 아니다.
어린이와 만화를 분리시키는 또 하나의 배경
한국 출판만화 시장은 현재 왜곡된 시장이라는 지적인 일반적인 판단이다. 왜곡의 사항 중 하나는 수용대별로 만화가 고르게 창작되지 않는 현실이 포함되어 있다.
출판만화가 전체 만화산업의 뿌리이듯이 어린이 만화는 만화보기의 시작이다. 이 시작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즐기는 대중문화이다. 즉, 어린 시절에 만화를 접해서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접하고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는 것이 일반적 전개이나 우리 실정은 청소년만화에 집중되어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 출판된 만화는 7,886권이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 이 출판만화의 접점은 80% 정도가 만화방과 대여점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 수용자를 조사한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료에 의하면 만화방의 경우 20대(39.0%)와 30대(36.0%), 대여점은 10대 이하(41.0%)와 20대(35.2%)가 주요 고객이다.
이 조사는 그만큼 청소년 이용이 높으며 만화 창작 또한 이들 주요 대상에 집중되어 있다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어린이용과 성인용 만화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현재 어린이용 만화는 학습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성인만화는 스포츠 신문과 만화방에서 보는 만화가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이러한 왜곡에서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명랑 만화(그림4-고전 만화들)는 단절된 상태이다. 이전부터 명랑 만화로 대변되는 어린이용 만화의 메시지는 '꿈, 우정, 용기' 등 건전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만화적 상상력으로 창의력을 높이는데 일조를 해 왔다. 그러한 명랑 만화의 단절로 현재 어린이용 만화는 학습효과를 상승시키는 보조 도구로 전락해 있다. 그 결과로 어린이에게 만화의 한 형태인 학습만화만이 권장되고 원래의 만화매체는 배제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만화가 유해하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어린이가 볼 만한 만화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만화매체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만화가 갖는 근본적인 장점이 부분적으로 왜곡된 우려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과 그림이 결합되어 새로운 매체로 발전한 만화를 그저 학습 이전 단계로 사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만화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창의력'은 열린 사고에서 출발한다. 정형화되고 닫힌 틀에서 발상의 자유로운 전개는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창의력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이루어지고 이를 돕는 것에 만화는 적절한 도구가 된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의 장점은 그저 버리기보다는 이용해야 할 대상이다.
만화의 위력은 그 이해가 학력이나 국적에 무관하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문학은 글을 알아야 이해가 되고 같은 언어권이라야 해독이 가능하다. 순수 미술은 작가의 메시지를 동일하게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양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문학은 그림을, 미술은 글을 배제하고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양극단으로 치닫던 두 문화는 이제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고 결합을 시도하는데 그 영역에 만화가 있다. 두 예술의 우성인자(優性因子)만을 취합하고 발전시킨 장르가 만화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성장은 그만의 독특한 시각기호를 무기로 발전했다. 인쇄의 발달과 대중매체의 출현으로 날개를 단 만화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의 영역을 확실히 표시하는 대중문화로 변모했다. 팝 아트의 대표자인 Lichtenstein의 회화(그림5-만화같은 회화)는 그 하나의 예시이며 영화의 만화적 표현방식 차용도 그 증거이다. 순수회화와 만화의 구분은 이제 질문 자체를 무색하게 한다.
문학과 미술이 어우러진 만화는 별다른 해독 능력을 필요치 않는다. 물론 이러한 장점은 대중문화예술의 공통된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래 연구가들은 만화라는 매체를 최대의 미래형 매체라고 분류한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만화의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시각과 상징을 종합하는 뉴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만화의 위력이 화제가 된 것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다. 어른들도 외우기 힘든 각종 신들의 이름을 어린아이들이 줄줄이 읊어대는 것을 보면서 만화의 학습효과가 뚜렷하게 각인 되었고 출판 만화계에 활황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가시고기]라는 작품으로 아이들의 감성 뿐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까지 자극한 것도 화제가 됐다. 이러한 열풍이 소설로도 가능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만화이기 때문에 쉽게 아이들이 몰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창의력과 감성의 습득은 어린 시절에 결정이 된다. 이 시기에 수용성이 높은 만화를 이용하는 것이 배척의 자세보다 옳은 선택이다.
어른들의 역할
지난 5월, 문화관광부는 '만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중 만화 인식 변화와 법 규제 개선에 대한 입장이 천억이 넘는 지원금보다 만화계의 지지를 더 받고 있다.
구체적인 법 규제 개선 사항 중 저작권, 심의 제도 개선과 함께 청소년보호법에 명시된 '불량만화'라는 문장을 삭제할 것이라는 내용이 발표됐다. 사회 구성원의 상식을 최소한으로 규정하는 것이 법이라는 의미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변화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만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하고 만화전문 교원의 시범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공공 문화시설의 만화 구입 장려로 만화가 당당히 문화의 한 자락으로 인정받아 가고 있다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제 만화가 유해하다거나 피하기만 하면 되는 대상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며 시대 상황이다. 앞으로의 고민은 어떻게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만화를 읽고 보게 할 것인가의 고민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병행되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만화 지도 교사가 점차 늘어나고 이에 대한 교사 교육도 실시되어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만화 보기의 지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좋은 만화 보기를 지도하는 방향제시가 연구되어야 하며 계몽되어야 한다.
오늘에 있어서 만화 보기를 배척하는 태도는 만화의 접근 용이성, 매체 자체의 장점, 시각상징어로서 신 매체 중요성 증대 등을 고려하여 변화되어야 할 자세이다.(끝)
2003. 7. 18
[책과 함께 여는 세상] 8월호
주 모씨
# by | 2005/05/31 18:58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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