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5월 31일
[영점프] 누가 제일 많이 냈어?
누가 제일 많은 책을 냈을까?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바라보기-
문화예술이냐 상품이냐?
만화가의 손으로 그려져 칸에 담긴 글과 그림은 '만화'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보여진다. 더 크게는 대중문화라는 그릇에 담겨진다. 그 그릇엔 만화를 비롯해 소리 형태로 구체화 된 음악과 필름에 투영된 영화, 활자로 된 문학들이 뒤엉켜 있다. 특히 만화매체는 다른 인접문화와의 연계와 변화가 수월해 대중문화의 한 정점이면서 동시에 토양이기도 하다.
대중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대중문화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인식도 점차 격상되어 왔다. 그 결과로 이전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과의 경계는 모호해 지고(그림1-팝 아트 작품)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를 넘어 우성교배를 시도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이 변화에 더하여 문화예술의 근본적인 다양성으로 만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창작품은 표현의 여유를 지니게 됐다. 그것은 예술, 혹은 대중지향적인 두 방향으로의 선택 여유를 의미한다.
만화로 한정한다면.
이런 여유는 대중문화예술이 순수예술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성을 갖게 됐다는 시대 변화를 뜻한다. 동시에 대중을 지향하여 표피적 감성에 치중하는 상품성을 갖게도 됐다. 이러한 차이를 수용자, 즉 독자의 감상 입장에서 본다면 창작품의 감동이 지속적, 혹은 순간적인가의 차이로 나타난다. 창작품은 세월을 초월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거나 보는 순간에만 감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감동'은 감격의 눈물(그림2)처럼 한정적인 뜻이 아니라 '느낌(感)이 움직인다(動)'는 현상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탄이든 동감이든 반감이든 상관없다. 만화 분야에서 이러한 차이를 주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단순한 구분 중 하나는 작품 창작 분량의 많고 적음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다작 작가와 작가주의로 압축되기도 한다.
만화 다작의 현황
2002년의 출판만화를 분석하는 기획에 참여하다가 다작 작가의 순위가 궁금해졌다. 지난 해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한국 작가나 혹은 번역물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차지한 외국 작가는 누구일까? 이 순위를 알기 위해서는 각종 출판만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 'mani', 'toonk', 'kocori' 세 사이트의 자료를 교차 비교하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출판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순위와 작품량에서 만화방용 일일만화 자료는 포함하지 않았다.
-한국 다작작가 베스트 10(그림3)
(1)김성모 89권 - (2)박봉성 87권 - (3)이현세 51권 - (4)박현 48권 - (5)이두호 46권 - (6)한유랑 45권 - (7)황미리 43권 - (8)이상세 37권 - (9)이미라 34권 - (10)김 숙 32권
참고할 사항은 복간작의 경우도 지난 해 출간으로 포함했다. '이두호' 작가의 [만화 임꺽정]과 [객주]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이할 점은 여성 작가의 순위이다. 출판사 작가명인 '한유랑' 등 여성작가 4명의 순위 진입은 대여체제에서 가장 대여 선호도가 높은 작가로 지목됐을 때부터 예상된 결과이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복간작이 아닌 순수 창작물의 다작이다. 90권에 육박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신의 손'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알다시피 전문적인 기업형 출판을 통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작은 당연히 작품성이 떨어지고 서사 구조 또한 고정 캐릭터에 의해 굳어진다. 물론 유통 현장의 대여체제 구조상 신간의 구비를 필요로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참고로 10위 아래로 월 2권 이상 출간한 작가는 4명이 더 있으며, 대본소 만화 출판을 겸하는 작가의 경우 위 순위의 권수 외에 333권을 지난 1년간 출간했다.
-번역본 계약 출판 순위 베스트 10(그림4)
(1)황옥랑/Osamu Tezuka 67권 - (3)Takahashi Rumiko 52권 - (4)Kazuo Koike 45권 - (5) Fujiko F Fujio 38권 - (6)마영성 34권 - (7)BURONSON 32권 - (8)Saito Takao 29권 - (9)Hiroya Oku 28권 - (10)Urasawa Naoki/고룡 27권
외국 만화의 정식 번역본 작가별 집중 출간은 우리 만화의 다작과 같은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해당 작가가 오랫동안 발표한 만화의 애장/복간판이 쏟아져 나오거나 대부분 이전에 출간된 만화가 계약되어 집중 출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토리 작가의 집중현상도 포착이 된다. 게다가 정식 계약만화와 해적판 유통까지 포함한다면 작가당 편수가 증가하는 사례도 쉽게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Adachi Mitsuru'의 경우 정식 계약출판으로는 22권(16위)이지만 해적판 [슬로우 스텝](그림5) 등을 포함하면 37권으로 6위로 상승하기도 한다. 다른 지적이지만 역시 번역물의 특정 국가 집중이 문제가 된다.
이 두 순위를 통합하면 다음과 같다.
(1)김성모 89 - (2)박봉성 87 - (3)황옥랑/Osamu Tezuka 67 - (5)Takahashi Rumiko 52 - (6)이현세 51 - (7)박현 48 - (8)이두호 46 - (9)Kazuo Koike 45 - (10)한유랑 45
위에 나열한 순위는 일본 만화에 잠식당하는 우리 만화가 다작 분야에서는 우위를 점한다는 비아냥이 아니다. 반대로 이 글이 말하려는 목적은 단순하다. 다작의 문제점이 물론 많이 있지만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대중문화인 만화는 두 가지 모양을 지닐 수 있다. 하나는 그것이 작품성에 치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상품성에 치중한 것이라는 이해의 태도이다.
만화 바라보기의 방향들
만화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학습만화이거나 계몽만화의 의미가 강하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의 만화정책에서 성인만화의 지원은 아예 제외되는 근거가 됐다. 지원의 형태가 기업지원과 같아서 어려움이 있다지만 근본적으로 단순하게 판단한다면 성인만화를 성애만화로 본 결과이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만화에 대한 전폭적인 애정이 두드러진다. 다만 그 기준은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모호한 개념인 '좋은 만화'라는 것은 현실에서 일본만화에 근거한 비교기준에 의해서 선별되거나 혹은 그림이나 스토리 실력, 또는 작품성에 치우친 만화에 대부분 부여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만화들이 좋은 만화인 것은 옳다. 그러나 반대의 자리에 나쁜 만화라는 인식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이루는 경계는 작품성의 많고 적음이다.
출판사나 만화잡지의 입장이라면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우선적이다. 그러나 '잡지의 무게를 맞춘다'는 표현처럼 작품성 있는 만화를 연재하기도 한다. 단지 작품성과 대중적 인기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그림6)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대중문화 창작자의 입장
어떤 입장에서든 당당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고 근거가 된다. 만화작가의 입장에서는 대중문화예술 창작자인지 대중문화상품 생산자인지의 구별된 입장 정리가 스스로 필요하다. 전자라면 작품성에 치중하는 것이고 후자라면 상품성에 치중하게 된다. 상품성에 치중하는 하나의 방법이 현 시장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다작이라면 이것은 나쁜 만화가 아니라 또 다른 만화창작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대중문화예술의 한 모양새로 넘겨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입장의 구분은 발전적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그림7) 다작을 하다가 한 작품에 몰두할 수도 있고 다작을 방편으로 삼아 좋은 작품 하나에 매진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만화작가 또한 현실 생활인이기 때문에 불가피할 경우가 많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곡된 한국적 작가주의
다작에 대비되는 작가주의란 애초에 영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화 제작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감독은 작가와 같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러한 말은 예술 창작품에 창작자의 개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단지 영화처럼 여러 스텝들의 종합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것이 감독만의 창작품인가의 논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작가주의가 우리 만화가들에게는 최고의 찬사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굴레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만화가에게 작가주의란 수식어는 다음의 사항을 은연 중에 내포한다. 우선적으로 작품 수가 많으면 안 되며 적은 작품이라도 당시에 유행하는 장르나 화풍과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바람이다.(그림8)
목표는 확고하게
다작작가와 작가주의 작가의 구분은 가능하지만 어느 한 쪽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부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좋은 작품은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탄생된다는 포용적 자세를 희망한다. 그러니 다작 작가가 작가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매도할 까닭이 없어진다. 그 나름대로 만화 창작의 한 형태를 시도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작가주의 작가가 작품 편수를 늘린다고 후퇴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움직임들과 변화의 목표가 창작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담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것이라면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그림9) 다양성은 문화예술의 그릇을 채우는 것이며 작가주의란 평생을 두고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끝)
영점프 5호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바라보기-
문화예술이냐 상품이냐?
만화가의 손으로 그려져 칸에 담긴 글과 그림은 '만화'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보여진다. 더 크게는 대중문화라는 그릇에 담겨진다. 그 그릇엔 만화를 비롯해 소리 형태로 구체화 된 음악과 필름에 투영된 영화, 활자로 된 문학들이 뒤엉켜 있다. 특히 만화매체는 다른 인접문화와의 연계와 변화가 수월해 대중문화의 한 정점이면서 동시에 토양이기도 하다.
대중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대중문화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인식도 점차 격상되어 왔다. 그 결과로 이전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과의 경계는 모호해 지고(그림1-팝 아트 작품)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를 넘어 우성교배를 시도하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이 변화에 더하여 문화예술의 근본적인 다양성으로 만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창작품은 표현의 여유를 지니게 됐다. 그것은 예술, 혹은 대중지향적인 두 방향으로의 선택 여유를 의미한다.
만화로 한정한다면.
이런 여유는 대중문화예술이 순수예술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성을 갖게 됐다는 시대 변화를 뜻한다. 동시에 대중을 지향하여 표피적 감성에 치중하는 상품성을 갖게도 됐다. 이러한 차이를 수용자, 즉 독자의 감상 입장에서 본다면 창작품의 감동이 지속적, 혹은 순간적인가의 차이로 나타난다. 창작품은 세월을 초월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거나 보는 순간에만 감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감동'은 감격의 눈물(그림2)처럼 한정적인 뜻이 아니라 '느낌(感)이 움직인다(動)'는 현상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탄이든 동감이든 반감이든 상관없다. 만화 분야에서 이러한 차이를 주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단순한 구분 중 하나는 작품 창작 분량의 많고 적음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다작 작가와 작가주의로 압축되기도 한다.
만화 다작의 현황
2002년의 출판만화를 분석하는 기획에 참여하다가 다작 작가의 순위가 궁금해졌다. 지난 해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한국 작가나 혹은 번역물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차지한 외국 작가는 누구일까? 이 순위를 알기 위해서는 각종 출판만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 'mani', 'toonk', 'kocori' 세 사이트의 자료를 교차 비교하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출판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순위와 작품량에서 만화방용 일일만화 자료는 포함하지 않았다.
-한국 다작작가 베스트 10(그림3)
(1)김성모 89권 - (2)박봉성 87권 - (3)이현세 51권 - (4)박현 48권 - (5)이두호 46권 - (6)한유랑 45권 - (7)황미리 43권 - (8)이상세 37권 - (9)이미라 34권 - (10)김 숙 32권
참고할 사항은 복간작의 경우도 지난 해 출간으로 포함했다. '이두호' 작가의 [만화 임꺽정]과 [객주]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이할 점은 여성 작가의 순위이다. 출판사 작가명인 '한유랑' 등 여성작가 4명의 순위 진입은 대여체제에서 가장 대여 선호도가 높은 작가로 지목됐을 때부터 예상된 결과이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복간작이 아닌 순수 창작물의 다작이다. 90권에 육박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신의 손'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알다시피 전문적인 기업형 출판을 통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작은 당연히 작품성이 떨어지고 서사 구조 또한 고정 캐릭터에 의해 굳어진다. 물론 유통 현장의 대여체제 구조상 신간의 구비를 필요로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참고로 10위 아래로 월 2권 이상 출간한 작가는 4명이 더 있으며, 대본소 만화 출판을 겸하는 작가의 경우 위 순위의 권수 외에 333권을 지난 1년간 출간했다.
-번역본 계약 출판 순위 베스트 10(그림4)
(1)황옥랑/Osamu Tezuka 67권 - (3)Takahashi Rumiko 52권 - (4)Kazuo Koike 45권 - (5) Fujiko F Fujio 38권 - (6)마영성 34권 - (7)BURONSON 32권 - (8)Saito Takao 29권 - (9)Hiroya Oku 28권 - (10)Urasawa Naoki/고룡 27권
외국 만화의 정식 번역본 작가별 집중 출간은 우리 만화의 다작과 같은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해당 작가가 오랫동안 발표한 만화의 애장/복간판이 쏟아져 나오거나 대부분 이전에 출간된 만화가 계약되어 집중 출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토리 작가의 집중현상도 포착이 된다. 게다가 정식 계약만화와 해적판 유통까지 포함한다면 작가당 편수가 증가하는 사례도 쉽게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Adachi Mitsuru'의 경우 정식 계약출판으로는 22권(16위)이지만 해적판 [슬로우 스텝](그림5) 등을 포함하면 37권으로 6위로 상승하기도 한다. 다른 지적이지만 역시 번역물의 특정 국가 집중이 문제가 된다.
이 두 순위를 통합하면 다음과 같다.
(1)김성모 89 - (2)박봉성 87 - (3)황옥랑/Osamu Tezuka 67 - (5)Takahashi Rumiko 52 - (6)이현세 51 - (7)박현 48 - (8)이두호 46 - (9)Kazuo Koike 45 - (10)한유랑 45
위에 나열한 순위는 일본 만화에 잠식당하는 우리 만화가 다작 분야에서는 우위를 점한다는 비아냥이 아니다. 반대로 이 글이 말하려는 목적은 단순하다. 다작의 문제점이 물론 많이 있지만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대중문화인 만화는 두 가지 모양을 지닐 수 있다. 하나는 그것이 작품성에 치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상품성에 치중한 것이라는 이해의 태도이다.
만화 바라보기의 방향들
만화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학습만화이거나 계몽만화의 의미가 강하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의 만화정책에서 성인만화의 지원은 아예 제외되는 근거가 됐다. 지원의 형태가 기업지원과 같아서 어려움이 있다지만 근본적으로 단순하게 판단한다면 성인만화를 성애만화로 본 결과이다.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만화에 대한 전폭적인 애정이 두드러진다. 다만 그 기준은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모호한 개념인 '좋은 만화'라는 것은 현실에서 일본만화에 근거한 비교기준에 의해서 선별되거나 혹은 그림이나 스토리 실력, 또는 작품성에 치우친 만화에 대부분 부여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만화들이 좋은 만화인 것은 옳다. 그러나 반대의 자리에 나쁜 만화라는 인식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이루는 경계는 작품성의 많고 적음이다.
출판사나 만화잡지의 입장이라면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우선적이다. 그러나 '잡지의 무게를 맞춘다'는 표현처럼 작품성 있는 만화를 연재하기도 한다. 단지 작품성과 대중적 인기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그림6)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대중문화 창작자의 입장
어떤 입장에서든 당당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고 근거가 된다. 만화작가의 입장에서는 대중문화예술 창작자인지 대중문화상품 생산자인지의 구별된 입장 정리가 스스로 필요하다. 전자라면 작품성에 치중하는 것이고 후자라면 상품성에 치중하게 된다. 상품성에 치중하는 하나의 방법이 현 시장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다작이라면 이것은 나쁜 만화가 아니라 또 다른 만화창작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대중문화예술의 한 모양새로 넘겨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이러한 입장의 구분은 발전적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그림7) 다작을 하다가 한 작품에 몰두할 수도 있고 다작을 방편으로 삼아 좋은 작품 하나에 매진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만화작가 또한 현실 생활인이기 때문에 불가피할 경우가 많음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곡된 한국적 작가주의
다작에 대비되는 작가주의란 애초에 영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화 제작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감독은 작가와 같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러한 말은 예술 창작품에 창작자의 개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단지 영화처럼 여러 스텝들의 종합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것이 감독만의 창작품인가의 논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작가주의가 우리 만화가들에게는 최고의 찬사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굴레로 작용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만화가에게 작가주의란 수식어는 다음의 사항을 은연 중에 내포한다. 우선적으로 작품 수가 많으면 안 되며 적은 작품이라도 당시에 유행하는 장르나 화풍과는 뭔가 다른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바람이다.(그림8)
목표는 확고하게
다작작가와 작가주의 작가의 구분은 가능하지만 어느 한 쪽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외부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좋은 작품은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탄생된다는 포용적 자세를 희망한다. 그러니 다작 작가가 작가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매도할 까닭이 없어진다. 그 나름대로 만화 창작의 한 형태를 시도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작가주의 작가가 작품 편수를 늘린다고 후퇴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움직임들과 변화의 목표가 창작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담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것이라면 변화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그림9) 다양성은 문화예술의 그릇을 채우는 것이며 작가주의란 평생을 두고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끝)
영점프 5호
# by | 2005/05/31 18:42 | 칼럼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