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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점프] 허영만과 한국만화의 위상

허영만으로 투영된 한국 만화의 위상 변화
-영점프 창간 이후를 중심으로-



통권 200호가 말하는 것

1994년 창간된 만화전문 잡지 <영점프>가 이번에 통권 200호(그림1-표지)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만화 잡지로 살아남기란 수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협소한 시장 규모에 겹쳐진 대여 시장이라는 형태에 의하여 이미 위축되어 있고 그나마 성인 만화 잡지는 창작 여건의 미비로 단 한 종도 없는 사태를 기록하고 있다. 잡지의 건강 상태를 말할 때, 작품의 연재 횟수를 하나의 근거 자료로 삼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통권의 의미가 기반이 된다.
지금까지 아쉬운 만화 잡지가 어디 한둘 스러져 갔던가? <보물섬>의 아련한 추억부터 <만화왕국>, <투웬티 세븐>, <빅점프> 등 한국 만화의 출발매체가 되었던 명잡지가 하나 둘 사라진 지금 우리 만화잡지가 더 소중하다. 우리의 글과 우리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지는 만화잡지를 갖는 것은 만화 산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1호에서 200호에 이르기까지 영욕을 함께 한 지난날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호흡이 필요한 때이다.

영점프와 허영만, 그리고 우리 만화 이야기

<영점프> 창간 당시에 연재된 만화 작품 중 하나가 허영만 작가의 [세일즈 맨](그림2-세일즈 맨)이다. 직장인을 그린 만화 중에 대표적인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다. 허 작가를 유독 말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지금 우리 만화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농담처럼 자신이 2인자임을 말해왔다. 이상무나 이현세와 같이 활동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작가의 겸양이기도 하다. 지금의 그가 정점이라는 이유는 그가 가장 성공한 작가라든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기준이 아니다. 우리 만화가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하기를 바라는 열망에 그가 결실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즉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식객](그림3-식객)을 말함이다.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는 원래 만평이라는 시사만화에 한정적이었는데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스포츠 신문 만화 연재 붐은 만화의 신문 지면 진출을 활발하게 했다. 조선일보의 [광수 생각]이나 스포츠 신문의 [타짜], [사랑해]가 있기도 하지만 정통 중앙 일간지에 '코믹 스트립'(연재 만화)이 진출한 것은 진일보한 현상이다. 게다가 신문에만 동시에 세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는 전무한 경우다. 작가의 2인자 겸양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올 해 4월에 중국에 다녀 온 허 작가와 만났을 때(첨부한 관련 인터뷰 참조) 그는 아직도 열정이 있음을 충분히 알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문 산악인을 놀라게 하는 쾌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년 'K2'봉의 베이스 캠프(그림4-캠프에서)를 뒤로하고 올 해 5월의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 7월의 유럽 최고봉 엘브르즈 정상 정복의 소식은 그의 현재 만화계 위치에 비추어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의 행보는 만화계의 중심에 언제나 있었기 때문에 그와 영점프를 함께 보면 우리 만화의 지난 날이 보인다. 허작가가 내년 북극 탐험을 계획하듯 우리 만화의 모험도 계속 되어야 한다.

영점프 창간 당시의 시대상

1990년대의 우리 만화계는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80년대 이후 만화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고 전문 만화잡지 시대로 이전되기도 했다. 성인만화의 움직임도 보였고 만화의 산업적 접근도 조심스럽게 시도된 기간이다. 그러나 1997년을 정점으로 만화는 움츠러들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만화사태로 기억하는 당시의 상황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과거를 잠시 돌아 보자.

<영점프>가 창간 된 그 1994년은 정부가 '만화 산업 진흥의 해'로 선포한 그 해이기도 하다. 만화가 산업으로 인식되어 정부의 정책으로 드러난 해로 기억된다. 그러나 만화 정책으로 우리 만화가 제대로 자리잡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 이듬 해에는 우표에도 만화 시리즈가 발행되어 김용환의 [코주부]와 김수정의 [둘리]가 모델이 되어 이후 시리즈(그림5-만화 우표)로 나왔고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발'도 시작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어엿한 문화의 한 자락을 잡는 듯 했다. 성인 만화시장도 활기를 보여 <빅점프>, <미스터 블루> 등의 잡지가 창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1997년 만화사태를 맞이하면서 어둠의 시기를 맞았다. 만화는 음란하고 폭력적인 문제의 핵심으로 몰렸고 만화가들은 줄줄이 구속되거나 절필을 선언하게 된다. 그 상황의 중심엔 허영만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해당 부서(당시 문화체육부)는 '만화 산업 진흥안'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만화가들은 길거리에서 투쟁하기도 했고 젊은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1990년대 초반의 호황을 바탕으로 이제 일어서려는 만화를 주저 앉히고 말았다. 잠시 나왔던 성인만화잡지는 폐간(그림6-빅점프의 폐간)의 길을 걸었고 설상가상으로 일본 만화의 개방을 대책없이 바라보게 된다. 어차피 들어 올 일본 만화는 다 들어 온 상태에서의 개방이었지만 문제는 양국의 만화 인식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심의 기준이었다. 심의란 결국 창작 소재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일본의 경우는 무제한 급과 같았고 우리 만화는 밴텀 급으로 제한 된 상태로 맞서야 하는 황당한 시합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만화가 멋지게 칼을 휘두를 때 한국 만화는 빗자루를 들어야 하는 것이 심의의 현실이었다. 당시 만화사태에 분개한 허영만은 '찢어지게 가난해도 방 한칸에 남매가 못 자게 했다. 판잣집도 못 그리게 했다. 국군이 전쟁에서 지면 안 되고, 눈썹이 짙어도 안 되고, 눈이 커도 안 되고, 여자가 안경을 입에 물고 있는 걸 그렸는데 섹시하다고 안 된다고 했다.'며 심의의 문제를 개탄했다.(그림7-심의 사례 고우영 무삭제판 삼국지의 경우)
시장 구조는 90년대 후반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여시장으로 점차 옮겨 갔으며 이후 만화계의 최대 쟁점으로 논의되어 왔다. 대여시장 이전의 대본 시장이 그 형태를 달리한 구조로 우리 만화의 숨통을 죄이기 시작했다.

200호 현재의 만화 위상

그로부터 8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만화는 어떤 모습일까? 물리적인 시간으로 몸짓이 커진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쉽게도 그에 상응하는 성숙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당시에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일본 만화는 지금 우리 만화 시장의 61%(해적판 만화를 포함하면 80%)를 점유하는 공룡이 됐다. 각종 만화관련 대학의 증가(일본의 4년제 대학의 만화학과는 세이카 대학뿐이다)(그림8-2001 세이카대학 만화학과 시카프 초청전)와 관련 페스티발의 개최는 만화계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30만부를 찍어 가능성을 보인 만화 잡지 시장은 1만부 시대로 추락했고 그나마 잡지의 수도 절반 가량 줄었다. 일부 아동 잡지와 순정 잡지를 제외하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성인만화 잡지는 한 종도 없는 기현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고 있는 오늘이다. 그 결과로 우리 만화가들의 연재 지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실제 작가들이 느끼는 불황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일부 온라인 만화가 활발히 등장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시장 영역으로 보기에는 이르다. 스캔 만화로 불리는 형태는 기존 만화 시장에 매체만 달리한 접근인 셈이다.
이런 어두운 상황에서도 우리 만화의 성숙이 전혀 없지는 않다. 먼저 허 작가의 동아일보 연재가 그렇고 정부 정책에 거는 기대의 증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올 해 (사)민예총의 설문 조사에서 나왔듯이 우선 문화예산이 정부 예산 대비 1% 이상 책정이 되고 그 규모도 1조원 이상이 된 현실이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출판 만화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에는 불만의 소리가 높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잡지 창간에도 수십억을 지원해 주겠다는 발표도 늘어 난 예산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현 정책 여건에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설립도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관심이 높았다.(그림9-진흥원 주최의 세미나) 게다가 최근에는 '출판 및 인쇄 진흥법'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어 보다 많은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만화 출판사의 증가, 성인 만화잡지의 가능성 증가, 청보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등 몇몇 긍정적인 측면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이 출판 만화와 잡지에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 만화가 문화 산업의 토대라는 사실 때문이다. 콘텐츠의 다양한 발전(Window effect)가능성의 뿌리는 만화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21세기에 우리 만화의 중요성은 점차 인식되어 질 수밖에 없다.
허 작가의 [식객]으로 상징되는데 출판 만화의 위상 변화는 만화 영화의 쾌거와 맞물려 상승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앙굴렘에서 [마리 이야기](그림10-마리 이야기)가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의미는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상을 받은 것과 같다. 우리 만화가 목말라 했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중요하다.

우리 만화 잡지의 미래

만화 잡지는 출판 만화의 뿌리이다. 만화 전문 잡지의 성공과 실패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만화가와 잡지만을 생각한다면 허작가의 만화관처럼 먼저 만화 잡지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문제가 되는데 허 작가의 성공에서 잡지 성공의 길이 연결된다. 작가는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본인의 노력과 김세영 작가를 비롯한 스토리 작가와의 협력으로 이루어냈는데 이는 잡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작가의 협력 체계에 의한 작품의 발표와 잡지의 팀제에 의한 작품의 연재에 공통의 성공 법칙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아직 우리 정서에서 만화가의 작품에 다른 이의 입김이 작용하는 건 작가주의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경우로 받아 들여 진다. 흔히 한국의 작가주의는 혼자 고독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왜곡된다. 일본의 좋은 만화를 예로 들 때 혼자 그린 만화보다 팀으로 기획하고 구상하고 그린 만화, 즉 팀제로 탄생한 만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 잡지에 적용하면 무엇이 될까? 결국 작품 기획력이 잡지 기획력이다. 우리 만화에서 부족하다고 늘 지적 받는 기획력의 부재를 만화가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전문 기획자가 만화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 좋은 작품이나 잡지는 혼자의 작품이 아니라 좋은 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번 영점프가 200호 변신이 증면에 그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유지하여 나가는 노력이 우리 만화 잡지의 내일을 보는 작은 시험대이다. 허작가(그림11-작가가 지난 4월에 준 그림)가 북극 탐험을 목표로 하듯이 <영점프>가 만화계라는 팀 구성에서 좋은 잡지로 거듭나길 바란다.(끝)





2002. 10. 21
영점프.

by 쥬피터 | 2005/05/31 18:30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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