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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점프] 한국만화에 놀란 일본

[한국 만화의 힘-일본의 놀람]





일본의 한국 만화 보기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은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가장 많이 빌려볼까? 이런 의문에 답하는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의 경우는 대여 1순위가 [묵향]과 같은 환타지 무협소설이라고 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만화책이었다. 즉 '도쿄대생의 애독서 조사'라는 자료는 작년 한 해 동안 학생 1명이 평균 78.2권을 읽었는데 만화가 36.2%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교과서가 24.2%, 소설 18.6%, 교양서 12.4% 순으로 집계했다. 가장 많이 읽는 잡지 '베스트 3'에는 도쿄의 공연소식과 명소 등 잡다한 정보를 실은[도쿄 워커](Tokyo Walker)가 1위를 차지했고, 만화책인 [소년 매거진]과 [소년 점프]가 2위와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런 자료가 말하는 의미는 한국과 일본에서 만화의 차이가 단순히 산업적인 규모의 차이에만 한정되지 않고 만화의 사회적 위치까지 다르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차이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데츠카 오사무'를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며 한국 만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나라도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 주눅들어 한국 만화는 나약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정말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보다 힘이 없을까? 일본은 한국 만화를 정말 의식하지 않을까?



한국 만화에 빠진 일본 교수

지난 5월 한국에서는 한 권의 의미있는 책이 출판됐다. [비전-한국만화를 찾는 일본인들](그림1-표지)이라는 무크지가 그것인데 이 책은 일본의 한류(韓流) 증후군을 분석한 것이다. 만화, 영화, 음악 등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바람을 다루면서 두 번째 장에 [나는 이렇게 한국 만화에 빠졌다]를 집필한 일본인 '사지마 아키코' 교수가 화제가 됐다. 39세의 후쿠오카 여대 교수인 그는 일본 최초로 한국 대중문화 매체를 교재로 사용하는 '만화로 보는 한국문화론'을 지난 학기부터 일주일에 90분씩 강의하고 있다. 강의의 주 교재는 한국의 순정만화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주제가 있는 순정만화를 특히 좋아하는 그는 황미나, 김혜린, 김진, 이빈 등의 작품(그림2-만화교재)을 선택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가 발표한 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일본 만화 평론가의 반응이다. '아마 제 강의자료가 일본 최초의 한국만화 해적판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이 젊은 교수가 일본 만화계에 티눈처럼 걸렸나 보다.



일본 평론가의 호들갑

그의 글이 조선일보 일본어판 홈페이지에 소개된 후 일본의 인터넷에는 사지마 교수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만화가 일본만화보다 낫다니, 일본만화는 읽어보지도 않은 모양'이라는 비아냥이었다. 그러다 나온 반응이 '만화 공영권' 발언이다. 일본의 만화 평론가인 '구레 도모후사(吳智英)'-월간 아사히가 선정한 [日本을 아는 1백권의 책] 공동 저자-가 6월초 마이니치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일본만화는 동아시아 전체를 석권해 만화 공영권을 이루려 하는 참이다.'라고 꼴 같지 않은 소리를 한 것이다. 즉 '한국만화를 찾는 일본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사지마 교수의 한국만화에 대한 의견은 주관적'이라는 공개적 비난까지 나오게 됐다. 그러나 이 글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리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 만화를 좋아하는 일본의 변화에 대한 움찔거림의 소리이며 우리 만화가 일본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면 이런 민감한 반응을 보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만화의 달라진 위상과 희망

비록 일본의 한국 만화 인식이 일부 순정만화에 국한된 것이기는 해도 그 반응은 우리 만화의 위상이 전과 다름을 알게 한다. 일본이 만화 산업의 측면에서 우리보다 20배나 큰 만화 대국이지만 한국 만화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만의 경우를 염려하며 우리 만화가 몰락할지 모른다는 일부의 걱정도 있지만 필자는 다른 미래를 그리고 싶다. 우선 대만과는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만화가의 인적 구조가 우리와 다르다. 대만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만화가 구성이 20대에서 40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일본처럼 20대에서 원로 만화가들까지 다양한 세대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인적 구성이 결집된다면 한국 만화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또한 독자층 또한 1980년대 만화 전성기에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사회에 포진하여 만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기대된다는 점도 희망적인 사회변화이다. 비록 성인만화잡지 하나 없는 현실이지만 이들로 인해 성인들도 만화를 볼 수 있는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아동의 전유물이라고 만화를 무시하는 시선에서 벗어날 희망도 보인다.

게다가 일본 등의 해외에서 호평받는 한국 만화가들은 그 공통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그들의 만화가 외국의 만화, 특히 일본의 만화와는 다르다'라는 분석(그림3-해당 작품 예)이다. 해외 만화 페스티벌에서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 구별이 되지 않는 만화로 보여진다. 역시 가장 세계적인 것은 한국적인 것이라는 역설이 증명되고 이런 만화가들이 활동함으로 희망은 점점 더 구체화된다.

한국 만화의 현재는 순탄치 않다. 하지만 희망조차 없는 상태는 아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지 내재된 역량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만화가 아무런 가능성도 없고 작은 몸체일 지라도 일본의 만화 공영권 어쩌고 하는 흥분이 우리에겐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는다. 그건 한국 만화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몸짓이기 때문이다.(끝)

영점프
2002. 10/9

by 쥬피터 | 2005/05/31 18:27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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