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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점프] 순수미술과 만화

'허걱!'이라고 놀라는 만화
-순수 미술과 만화는 동격(同格)이다-




심심한 원시인이 그린 최초의 그림.

만화의 시작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그대로 표현하거나 그 특징을 잡아 과장해서 그리는 미술적 표현(=線描)이었다. 아마도 어느 원시인이 나른한 오후에 나뭇가지로 땅에 그리는 놀이였을 것이다. 이것이 순수 미술, 혹은 만화의 시작이다. 그러나 수 천년이 흐른 지금 만화와 순수 미술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굳어졌는데 그 차이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걱!'이라는 표현의 사용여부에 있다.
벽화로 남아 있는 초기의 그림예술(그림1)은 주술적(呪術的)인 의미로 이해된다. 사냥하기 전의 의식에 사용됐다고 보는 이유는 벽화에 창을 던져 생긴 자국으로 보이는 것이 남아 있다거나 그 벽화가 흔히 보이는 장소가 아닌 비밀한 장소에 주로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벽화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고 덧그림으로 겹쳐진 경우도 보인다. 주술적인 인식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영혼이 구속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반응은 드물지 않다. 한 예로 화가가 아프리카의 마을에서 소를 그렸더니 원주민들이 '그 소들을 끌고 가면 우리는 무엇으로 삽니까?'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숭배에서 메시지로.

그림은 이후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로 발전해 갔다. 이후에 만화가 인류 최대의 폭발력을 지닌 예술 장르로 변화할 조짐은 '글'이라는 것과의 만남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근대의 미술 사조에서는 문자가 회화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만화의 문자 역할에 비할 바는 아니다. 또한 방법적으로 인쇄라는 기술에 힘입어 대중적인 확산이 가능해 지기도 했다. 만화는 글과 그림, 즉 문학과 회화의 결합체로 표현할 메시지를 대량 인쇄 기술이라는 날개를 달고 시민사회로 등장한 대중(大衆)들에게 그 폭발력을 맘껏 과시할 수 있게 된다. 이후 대량 복제가 하나의 특징이 된 만화는 대중적이며 친근하게 독자들에게 접근하게 됐다.

이 친근함은 웅장한 전시장에 걸려 있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는 것과 달리 어린아이부터 문맹의 어른까지도 아우르는 문화 수용자를 형성하게 했다. 만화는 그래서 만국의 공통언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순수예술과 만화의 메시지 표현 방식에 있다. 즉 순수 예술은 창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자기 안의 세계에서 해체하여 나름대로의 재해석을 통해 표현한다. 이 말은 전시회에서 보는 회화의 제목이 [기억](그림2)이라고 적혀 있다 하더라도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즉 표현의 방법이 창작자의 주관적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직접 전시회에서 봤지만 역시 속물스럽게도 '비싸겠군'이라는 생각이 우선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에 만화는 전하려는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대중적인 기호들로 공유하여 전달한다. 우리는 저 딱따구리(그림3)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무제] 김정진. 1990) 이처럼 만화의 이해는 즉각적이다.

쉽게 말하는 만화

만화의 이해를 돕는 결과물들(그림4)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데 칸의 구별과 말풍선(balloon), 생각구름(thouht cloud), 그리고 감정이나 행동, 심지어 시간의 흐름까지 표현한다. 머리카락 위로 흐르는 땀방울(plewd)도 만화답지만 투명함(dites)이나 행동선(action lines), 냄새나 온기(waftarom)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만화의 강력한 무기이다. 제목의 '허걱!'은 단지 말풍선에 들어가는 하나의 단어이며 놀람을 나타내는 만화적 의성어의 흔한 예일 뿐이다. 의성어 외에도 '으잉!'이나 '쓰윽!'처럼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만화의 보조적 전달 수단은 철저히 대중 지향적이며 그 기호들은 모두에게 약속처럼 이해되어 진다.
주목할 것은 이런 만화적 표현이 실생활에서 청소년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인터넷 언어의 경우에 만화적 표현을 응용한 기호들이 범람하고 있다. 난감하게 웃는 <^^;;> 기호는 참 만화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만화가 대중과 얼마나 친근하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다.

만화는 이대로 멈추지 않아.

창작자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순수 예술과 대중들과의 약속된 기호로 쉽게 표현하는 만화, 이 차이가 만화를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가벼운 대중문화로 깔보게 했다.
여기 두 장의 그림(그림5/6)이 있다. 고의적으로 필자가 선정한 그림이지만 두 그림을 보고 어느 것이 만화이고 어느 것이 회화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언뜻 보기엔 닭이 만화이고 학이 회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짐작했겠지만 그 반대이다. 닭 그림은 순수 미술의 거장 피카소(Pablo Picasso)가 그린 [수탉]이란 목탄 소묘이다. 옆의 학 그림은 만화가 백성민의 [토끼](4권/서울문화사)에 있는 그림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순수 미술의 수탉이 만화의 특징인 과장과 왜곡, 그리고 풍자가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수탉의 우둔함과 뻔뻔함, 공격성 등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서양미술사] E. H. 곰브리치)에 이런 만화적 표현을 이용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웃을 수 있다고 해서 저급하지는 않다. 단지 표현 방식의 차이와 그 목적 때문에 달라진 순수 예술과 만화의 차이는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할 부분이지 폄하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게다가 시각 예술의 일반적인 개념이 '창조적 인간의 조형 행위'인 것을 비추어 보면 오히려 만화의 영역이야말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예술 영역이다. 다만 우리의 지난 과거에서 만화가 소비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상업적인 흐름으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게 됐고 그 그늘에 만화의 예술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한 환경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과 문학 유전자의 결합체인 만화는 종합 예술의 정점에 위치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만화의 미래와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만화가 제대로 자리 잡을 때 '허걱!'이 아니라 '빙긋!'하고 웃어 주고 싶다.(끝)

2002. 8/20
영점프

by 쥬피터 | 2005/05/31 18:21 |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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