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2월 02일
법보다 주먹? 아니 어깨동무.
열렬하거나 미지근하거나에 관계없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이후의 동행에서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부부라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소한 다툼은 대략 하나의 원인으로 묶을 수가 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은 내가 상대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망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도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대화 중에 말을 자르고 "됐어!"라고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속으로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에이 씨!'라고 웅얼거리는 것이다.
이런 왜곡으로 인해 사소한 것으로 몇 일씩 냉전을 하다가 속을 토해낸다고 맞붙게 되었을 때 흔히 말하는 토론보다는 자의적 기준으로 대화의 결론을 내리는 잘못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대화에 성숙하지 못한 동행은 앙금을 쌓아가게 된다.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어려운데 내가 아닌 그를 사소한 표정이나 목소리의 변화로 그 원인이나 배경을 읽어 내기란 지난한 일이다. 그저 '오호라, 지금 화났다는 거지?' 또는 '삐졌나?' 정도로 상황 인식을 한다면 모를까?
친밀하다는 사회적 부부 관계 구분에서도 이러한데 상이한 두 집단이 동행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부관계와 달리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토론이 좀 더 보완점이야 되겠지만 반대로 현재 몸 담고 있는 세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작가와 법조인의 만남이다.
늘상 지켜보자니 대화의 간격이 크다. 작가는 정서를 말하고 법조인은 법을 말한다. 작가는 작가 입장에서 말하고 법조인은 일반원칙을 뒤흔들 수 없다.
부부의 다툼 같은 것은 없지만 대화가 공전하는 것은 비슷하다. 서로를 잘 안다는 전제로 발생되는 공전과 서로를 잘 몰라서 일어나는 공전으로 결과는 같다.
저작권자나 창작자라는 범주에서 '만화작가'만을 따로 구별하여 법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참으로 제한적이다. 출판물에 속해 있는 현행법에서 만화를 따로 구별하여 법을 만들기도 무척 제한적이다.
그래서 수많은 염원과 정서적 분노를 법이 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고리타분한 소리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아니라 법조인의 조언이기도 하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2010. 2. 2. 화.
주 모씨.
부부든 친밀한 사이든, 오래됐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지레짐작으로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실수로 연결되기 쉽다,
# by | 2010/02/02 10:45 | 중얼중얼 잡설 | 트랙백 | 덧글(2)



